고교학점제 디스토피아 (5) 교사라는 주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를 못하는데 왜 교사를 길러내질 못하니

by 공존

이 글은 2025년 적용을 앞두고 있는 고교학점제로 인하여 우리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검토하고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교학점제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현재 고등학교 1,2학년까지, 2020년도에는 고등학교 1~3학년 전체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체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학생 개인별로 자율선택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선 고등학교에선 적지 않은 혼란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남은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어떤 문제점들이 학교에선 발생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많은 교육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은 교사다. 고교학점제든 학생부종합전형이든 수능이든 우리 교육은 교사라는 변인을 배제하지 못한다. 모든 학생들이 수능 1등급이 가능한 재원들로 채워진 학교라고 할지라도 높은 교사와 수업의 질을 기대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을수록 교사의 질 역시 높을 것이라 기대된다. 사실상 수업의 비중이 높지 않은 수능 중심의 고3 교실에서도 그러하다. 그나마 수능이 교사변인이 조금 덜한 정도이지만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교사 변인은 절대적이다. 암기지식 보다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수업 구성 능력과 생활기록부를 개별화시켜서 작성해줄 수 있는 교사들은 중하지만 흔치 않다. 학생들은 어떤 담임과 어떤 교과담당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차원이 다른 교육경험과 생활기록부를 갖게 된다. 결국, 교사는 교육의 핵심요소다.


1. 고교학점제 환경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고교학점제에서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큰 변화가 예측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하게 됨으로써 교과와 교사별로 수업의 편차가 발생한다. 간단한 예로 반드시 일반고 학생들이 이수하게 되어 있는 제2외국어 과목에서, 과거에는 독일어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많고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적었다. 일본어는 항상 선호되었다. 그러나 학생 선택이 강화되면서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현저히 줄고, 독일어 교사들은 영어로 교과를 전환했다. 근래에서는 중국어가 강세인데,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간에도 편차가 발생하여, 중국어 교사와 일본어 교사의 수업시수가 불균형한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일이 모든 교과에서 발생하게 된다. 국영수 과목에서도 고등학교 3년간 학기당 3~4시간만을 배정하게 되어있고, 추가로 국영수 선택과목을 따로 택하여 듣는다. 사회/과학 과목은 원래부터 선택제였는데 특히 사회과목에서 학생들의 선택에 따른 교사의 수업 환경이 크게 바뀐다. 어떤 교사는 안정적으로 학기당 1개의 과목만을 수업할 수 있게 되는가 하면, 어떤 교사는 3개 과목의 수업을 해야 한다. 과학과목은 2, 3학년에 배정할 과목들이 I, II로 세트화되어 있어서 그나마 디자인과 예측이 가능한데, 사회과목은 그처럼 계열화되어 있지 않다. 2학년 과목과 관련없는 과목들이 3학년에 일부 새로이 개설된다. 학생들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종잡기 쉽지 않다. 학교에서 사회과목에 학생들의 선택을 가이드해주는 정도의 대책이 있을 뿐이다.


교사가 감당할 수업의 부담은 커지는데, 평가방법은 변화되고,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평가 역시 교사별로 천지차이다. 어떤 교사는 수행평가를 학기당 3가지 정도, 다양한 기법으로 진행하여 학생들을 다면 평가한다. 어떤 교사는 그냥 암기지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행평가를 몇차례 하고, 중간/기말 고사 역시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러한 교사들은 학생 선택에 따라 천천히 비선호되고, 도태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교사들이 고교학점제 환경에서도 그대로 교사로 서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는 교육목표, 교육과정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수업과 평가를 그에 따라 창의적으로 재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그에 따라 산출된 활동경과를 생기부에 작성하는 교사와, 과거의 암기지식 중심의 수업과 평가를 답습하며 차별성 없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교사들이 뒤섞여있다. 학생은 피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교육청은 이 모든 교사들이 학교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후임교사는 언제나 약자다. 교육과정의 안정성은 교육혁신에 우선한다. 공립에서 특히 많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지역에서 교과 연구회와 공개수업을 선도하는 우수교원이 지역이동으로 타 학교에 부임했는데, 교과에 이미 정착되어 있는 관습들이 있고 그에 따라 새학기의 교육과정과 평가방안이 이미 확정된 상태라는 것이다. 아무리 원 지역에서 이름난 훌륭한 교사여도, 새 지역에서는 그냥 교과의 막내다. 전임교사들이 만들어놓은 교육과정과 평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평가계획, 시험문제를 받아안고 피눈물과 함께 그것을 삼켜야 한다. 이 학교에서 몇년 버티며 다른 교사들이 전출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결정권을 갖게 되었을 때야 자신의 능력을 수업 속에서 발휘할 수 있다. 공립이 이러할진데, 사립학교에서도 불문가지다. 관리자와 선배교사들의 압력은 교사의 창의성을 항상 억압한다.


"전문직"이면서 "공직"이라는 교사의 특수성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교육은 공적 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교사가 어떤 수업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일정히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직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교사의 역량에 따라 교육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고교학점제 환경에서 우수한 교사의 수업은 각광받으며 학생들의 신청이 쏠리게 될 것이지만, 그 교사 역시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과중한 수업부담을 견디긴 어렵다. 대체교사가 동일한 수준의 수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두 교사가 같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대체교사의 수업에 대한 평가가 좋게 나올 수 없다. 결국 이 또한 교사들 간의,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 갈등의 불씨가 된다.


2. 교사변인의 문제와 원인


모든 학생이 같은 수업을 듣고, 평가를 똑같이 하고, 한 줄로 성적이 나오던 시대에는 교사들의 전문성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수업에서 교사의 전문성이 상당히 많이 노출된다. 무엇보다도 수업의 선택권이 학생에게 있으니, 과목선택 결과에 따라 비선호 과목과 그 교사가 즉각 "선별"된다. 최악의 경우 해당 교사는 과목을 교체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자신이 미리 준비한 교과목을 포기하고 새 과목의 새 수업 계획 및 평가계획을 모두 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교사양성기관은 이런 상황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어떤 지침을 마련하고 있을까? 학교 현장은 어떨까? 교사들이 고교학점제에서 과목 자율선택에 노출되고, 개개인의 수업의 질이 즉각 학생선택에 반영되는 체제에 대하여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답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당장 교사대는 모두 임용고사 합격이 지상과제이며, 그마저도 지금 인구감소로 인해 더욱 위기를 맞고 있다. 선발인원이 자꾸 줄고, 학과 선호도도 자연스레 낮아지니 더더욱 임용합격에 골몰하게 된다. 학교는 어떨까?


불행히도 학교현장에서는 상술한 "교사의 수업 여건 변화"에 과도한 이목이 쏠려있다. 고교학점제 도입을 앞두고 평가방안, 교과목 개설방안, 학교별 교육철학과 교육목표(수능인지, 학종인지, 진로인지)에 대한 협의를 했어야 할 시간들이 대체로 "다음 학년도 과목선택 세팅"에 할애되었다. 교사들은 고교학점제가 무엇인지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왜 이 정책이 도입되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도 쉽게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부정이 잇따르고, 되도록 최소한의 변화에 머무르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 교사들도 많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 그 철학보다는 학생선택제라는 외형적 체제에 못박혀 있으니, 그 이후의 논의가 쉽지 않다. 학생의 선택권에 따라 개설된 교과목들의 수업을 맡으라고 한들 적극성과 주체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 웬만한 고등학교에서 학급당 30명을 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다. 미디어환경 변화, 학생인권 발전, 학부모의 민원 증가로 교사들이 학생들을 "통제"할 수단은 거의 전무하고, 각종 비행을 저질러도 겨우겨우 대처하고 있는 마당이다. 학부모와 전화를 하다가 수업을 늦게 들어가고, 학생과 상담하느라 수행평가 채점할 시간을 놓치는 일이 일상인 교사들에게 수업을 개선하고 정책적 변화에 적응하라는 요구를 한들 쉽게 동의를 구할 순 없다.


무엇보다도 교사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다. 교사이고 공직자이고 공무원이고 철밥통이라고 해서 그 직종의 평균 이상의 직무역량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반드시 유형 무형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으로 학교 현장에 성과급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교사 간 갈등을 야기하는 측면이 크다. 교원성과급은 적절한 인센티브가 아니다. 또한 교장-교감-수석교사-교사. 4개의 직급이 존재하는 교직에서 너무나 희소한 관리자 및 수석교사직은 적절한 인센티브로 작용하지 못한다. 결국 젊은 시기에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가 쉽게 번아웃되고 무력감과 정체감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현장에 그득하다. 이런 교사들이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어느정도 직무에서 효능감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들, 고교학점제 수준의 거대한 정책변화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 정책변화를 위한 마중물들은 마련될 수 있을까


고교학점제를 2022년에서 2025년으로 유예하긴 했으나, 3년은 학교가 바뀌기에는 전혀 긴 시간이 아니다. 교육환경이 변화하지 않으면 교사의 노동의 본질도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학생들과 학부모의 이목에 노출되어, 새학기에 새로운 수업을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그 수업의 성과가 충분히 검증되기도 전해 다음해의 수업 계획을 요청받는다.(고교학점제에 따른 다음 학년도 과목선택을 학생들은 매년 5~6월에 처음 하게 된다. 한창 1학기 수업이 바쁜 시기다.) 그야말로 교육부의 "특단의 조치" 없이는 교사라는 교육주체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그렇지 못하면, 만약 그렇지 못하면 교단에서 도태되는 교사들과, 과잉수업으로 고통받는 "좋은 수업을 하는" 교사들로 인한 문제가 곧 수두룩하게 발생할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부터 교사들 간에 교육의 본질에 관한 깊이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이것이 알파요 오메가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다. 우리 교육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리에게 "협의", "소통", "상호존중", "연구" 등의 가치를 일깨워주지 못했다. 학교 체제가 완전히 뒤집어질지 모르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교사들의 변화는 그 또한 심대한 본질적 성찰부터 시작되어야 할 터인데, 교사들 자신이 평생 암기교육 중심의, 비민주적 교육과정 속에서 성장하였고 마찬가지의 선발과정을 통해 교사가 되었으니 어떻게 자연히 스스로 성찰하고 상호이해에 기반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교육부는 2015년 개정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교과를 도입했다. 우리 교육의 철학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교과지만 정작 이 교과가 현장에서 쓸모있게 활용되고 있지는 못하다. 이 교과를 활용할 능력을 갖춘 교원도 없고, 그들을 받아줄 학교도 없고, 그 수업을 온전히 들을 학생과 학부모도 없다. 교사가 도태되기 전에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도태될 판이다.


지금도 너무나 늦었다. 그러나 결국엔 가야 할 길이다. 교사라는 주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철학 수준의 정책진단과 조치가 필요하다. 학교별로 각자도생하여 제도에 적응하고 교사들이 수업을 이끌어가라는 현재 수준의 정책처방으로는 결국 교사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도태되는 교사들이 발생하고, 결국은 또 적응하여 새 교육에 도달은 하겠지만, 그 사이 정체되는 한 두해라도, 부적응한 교사의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1년 2년이 허투루 흐르도록 두어서도 안되지 않은가. 교사들의 헌신과 자발성을 이끌어내고, 수업연구를 위한 여건을 마련해줄 수 있는 조치들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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