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나라에서 아시아의 고립을 느낀 소소한 이야기
호주 여행이 거의 끝나간다.
이민자들이 온통 뒤섞인 다민족국가인 여기서 며칠 지내보면서 느낀 것은, 서구인들의 삶의 선택지가 참으로 넓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와 피자로 이름난 식당 몇군데를 가 보니 강한 이탈리아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진퉁” 이탈리아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었다. 주인부터 젊은 직원들까지 모두 그렇다. 특히 멜버른에서 들른 커피숍은 이탈리아인이 본토의 에스프레소 문화를 최초로 호주에 안착시킨 곳이다. 메뉴부터 온통 이탈리아어다. 식당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국어로 대화하고 있고, 손님들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눈다. 손님도 점원들도 성인이 되어서 훌렁훌렁 건너들 오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찾아서.
이 글을 처음 쓸 당시 옆자리에 앉은 두 아가씨들은 영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이탈리안인가? 확실히 영어는 아니다. 이탈리안 식당이니 이탈리안들이겠지. 서구인들이 세계 곳곳에 발을 뻗었고 많은 나라들은 독립과 민주화를 거쳐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호주도 그 중 하나다. 이민자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자리잡을 수 있으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히 안정된 복지국가다.
호주에 살고 있는 사촌형과 시드니에 건너온 첫날 만났다. 한살 터울인 그는 정말,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중학생 때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 나에겐 작은 이모되시는 분께선 식당 일로 자녀를 어렵게 부양하셨다. 시골의 이모집은 지은지 수십년 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이었다. 그나마 "읍내"라서 덜 시골스럽게 자란 이다. 우린 어릴 때 방학이면 시골에서 모두 함께 자랐다.
아, 진짜 소소한 개인적인 추억인데 까마득히 옛날 둘이서 한살 차이다보니 누가 형인지 박치기로 가린 적이 있었다. 승패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와 이모들, 다른 사촌들도 모두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소동이라 결과는 뻔했을 것이다.
형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방문했다가 운이 닿아 그대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10명의 직원을 아래에 둔 주방장이 되었다. 내가 쉐프 호칭을 쓰니 무슨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거 아니라고 하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11명 짜리 주방이면 영화 <아메리칸 쉐프> 정도의 분위기는 나올 테지. 그정도로 유명한 쉐프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하루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 듣기 좋았다.
그러나 사촌형의 케이스는 본인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유학 및 이주를 쉽게 결심하기 어려운 아시아인인 우리는...삶의 선택지가 너무나 좁다. 당장 한반도조차 분단되어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이주지는 미국, 호주 등 영미권이다. 그러나 영미권은 경제적 격차,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존재한다. 같은 인종, 같은 문화권인 아시아에는 선호되는 이주지가 없다. 그나마 요즘 젊은 사람들이 베트남쯤은 환영하는 정도. 친가 쪽의 사촌형은 태국의 부호의 딸과 결혼해서 태국으로 건너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결혼 당시 큰아버지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었다. 우리의 인식이 이정도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의 정치체제나 다문화정책은 상당히 엉망이고, 우리 자신도 폐쇄적 민족주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 3국 외의 다른 아시아국가들은 빈부격차와 빈곤, 독재와 내전까지 실로 다양한 문제를 품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면에서 한국보다 나은 나라가 전혀 없다. 이런 배경이니 부모의 좁디 좁은 삶의 지평과 인식이 아동에게 전염된다. 서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인식의 지평에서 아시아의 아동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성장한다.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아시아의 비극을 우리 미래세대에 대물림하지 않는 길을 위해 아시아 민주주의를 이야기해보자...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뜨악한 취급을 받는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진전된 나라, 민주주의의 혜택으로 <기생충> 같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나라에서 정작 사회에 대하여 논하고 인간의 삶의 질을 즉각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 나태한 것일까.
우리 스스로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해방에 대하여 논의할 때, 아시아의 독재와 자본의 압제는 감소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 이외의 많은 아시아 국가들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삶의 공간으로 검토해볼만한 선택지로 만든 터인데. 의미없는 일, 바보 같은 일, 허무한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아시아국가들이 사회적 진전을 이루고 우리가 그들과 공존할 경로가 많아진다면, 우리의 폐쇄적 민족주의 역시 완화될 수 있다. 서로를 위하여 더 나은 길인 것이다.
우리의 폐쇄적 민족주의는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아시아의 비극적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일지 모른다. 배타적인 민족성이 내재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시아 국가들과 교류하고 소통을 할 여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방이 적이었고 경쟁상대였다. 부모 세대도 자식 세대도 함께 갇혀 살았다. 통일조차 입밖에 내기 어려운 시대가 지금 이 순간까지 대물림되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원어민 교사 제도로 전국의 학교에 원어민교사들이 채용되었다. 그들의 국적은 실로 다양했다. 미국, 호주, 남아공 등등. 영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한국에서의 낯선 삶을 유지해나갔다. 물론 한국인들도 해외에서 교포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이주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일반적인 감수성과 그들의 것은 크게 달랐다. 영어라는 글로벌 역량 하나, 그리고 서구인이라는 정체성으로 그들은 전 지구적 판도를 삶의 영억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에 갇힌 채로 중국, 일본과는 서로를 혐오하고, 동남아는 평가절하하며, 우리보다 잘 사는 서구권의 나라는 동경과 함께 벽을 느끼고 산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젊은 이탈리안 여성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적지 않은 아쉬움이 밀려온다. 저런 자유를, 아시아인들은 누릴 수 있을까? 저런 사회를 아시아인들은 함께 만들 수 있을까? 저런 미래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당장의 빈곤을 어찌 극복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 민주적 정치와 문화라도.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그래서 아이들이 더 넓은 판도에서 상상하며 생활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그런 민주적 실천과 어떤 대화의 기회라도, 우리는 가져볼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교육에서 민주주의를 논의하는 것은 언제나 일상화된 과제이고, 민주주의와 민주적 교육이 곧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내 공부의 주제다.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