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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01. 2020

고기국수가 어려워서 고기가 부족한 건 아닌지 고민해봤다

아 너는 다 비법이 있구나

“옛다.”


 이번의 미션은 돼지 안심, 살코기였다. 엄마는 여러가지로 고기를 끊어다가 챙겨가라 하여 내게 주시는데 돼지 안심은 그 중에도 강적. 비계가 거의 없고 퍽퍽하여 찌개를 끓여도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돈까스를 하기엔 일이 커지는 부위다.


 돈까스라 하면 두번이나 만들어 먹었다.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두툼한 일본식 돈까스를 흉내내기 위해 고기를 다듬지도 않고 두툼하게 허브솔트와 올리브유에 재웠다가 하나씩 꺼내서 즉석으로 튀김옷을 만들어 튀겼는데...깔끔하게 실패. 두툼하게 튀기는 방법을 몰라 겉만 바싹 튀겨진 핏빛고기를 만나야했다. 나중에 멘보샤를 만들어먹었을 때서야 60도의 저온에서도 튀김을 할 수 있단 것을 알았는데 그때 내가 조리법을 찾아보았다면 내 안심들은 살아날 수 있었을까. 늘 후회는 뒤늦은 법.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진 두툼한 살들아...


 찌개거리도 튀김도 아니라면 볶음이 있다. 꽤나 간단하고 재미있다. 완전히 해동된 살코기를 깍둑썰어 그대로 튀김가루와 물 아주 약간. 계란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후추가루와 굴소스를 약간 넣어 버무린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큼직하게 썬 대파를 들들 볶은 다음 고기를 굴려 굴려가며 충분히 볶으면, 겉은 바삭하고 육즙도 꽤나 풍부한 15분 돼지고기강정이 완성된다. 이것도 신혼 때 꽤 즐겨먹던 요리인데 전체적으로 기름진 음식을 많이 안하게 되면서 요즘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 육수내기. 당연히 돼지고기 하면 비계! 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삼겹살 부위로 육수를 내어 고기국수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실패. 삼겹살은 수육을 위한 부위지 육수를 위한 부위가 아니다. 살코기에선 육수가 나오지만 비계에선 기름이 나온다. 살코기는 육수의 맛을 더하고 기름은 그 맛을 감춘다. 그런 기본적인 요령을 모르고 그저 삼겹살 수육만 바라보고 육수를 내어 국수를 말았으니 그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창원 사는 친구가 있어 돼지국밥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또 따라가서 원조라는 돼지국밥을 먹어본 일이 있는데 육수가 뽀얗지도 않고 기름기가 많지도 않다. 나는 1일 1국밥이 가능한 프로국밥러이기 때문에 여러 돼지육수를 맛봤는데 경험이 쌓일수록 뼈육수가 아니라 고기로 낸 육수가 내 입맛에 맞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먹어본 고기국수들도 대체로 뽀얀 육수보단 맑은 육수가 맛있었다.


 그래. 안심의 결론은 육수고 육수의 결론은 살코기다. 기름이 적을수록 좋다. 그렇다면...돼지 안심이 최고야!


 그래서 이번엔 고기국수를 했다. 신중하게 양을

조절했다. 200그램씩 소분해 얼려놓은 것을 두덩이 꺼냈다. 1인분에 200그램 정도 살코기는 되어야 육수를 내었을 때 충분한 밀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간장과 소금, 후추를 넣고 작은 냄비에 두덩이를 30분 정도 푹 끓여냈다.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 불을 끄고 맛을 보니 오호, 꽤 괜찮다. 의도한 농도의 진한 고기육수다.


 고기국밥집은 보통 수육을 따로 판다. 수육은 육수를 내기 위해 쓰는 고기를 따로 낸 것이다. 그 말인즉슨 국밥 한그릇에 담겨진 고기와 국물의 비율로는

절대로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1인분에 200그램이라면 가정에선 100그램은 국물과 함께, 100그램은 수육으로 먹는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수육으로 비싸고 비계가 많은 항정이나 삼겹살 부위를 내는 식당은, 육수를 내기 위한 고기에 더하여 수육 전용의 고기를 함께 삶아서 취급하는 곳이다. 무조건 충분한 살코기가 있어야 식당에서 파는 국밥에 근접한 육수가 나온다.  


 아침. 머리를 말리는 바깥양반을 뒤로하고 훌훌 국수를 삶아내고 육수를 데웠다. 친근한 맛을 위해 다시다를 약간 넣고 파를 쫑쫑 썬다. 그리고 고기를 꺼내 썰었다. 다시 봐도 퍽퍽하기만한 살이다. 최대한 얇게 썰었다. 모양이 이쁜 고기는 바깥양반 그릇에, 울퉁불퉁한 고기는 내 접시에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육수를 각기 접시에 부어 파를 얹어 낸다. 완성이다. 달고 진하고 후추의 아련한 향이 상큼하다. 초가을의 아침공기에 차가워진 온 몸을 꽉 채우는 고기의 향이다. 이번에야 말로 제주도 부럽지 않은 고기국수다.


“어떠냐 바깥양반.”

“지난번 껀 YO는 아닌데 이번엔 YO야.”

“물론이지. 난 프로니까.”

“YO.”


 그 뒤로 몇번 국을 끓이거나 할 때마다, 무조건 국물은 적게 재료를 많이 쓰는 방향으로 조리법이 맞춰져간다. 이번 육개장도 그렇다. 국물이 건강에 좋은 건 또 아니니까. 국밥은 집밖에서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집에선 고기 많이, 국물은 적게. 한끼에 한번, 5000원도 안되는 등심이나 안심 덩어리면 세상 맛난 고기국수가 두그릇, 내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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