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은 시어머니께 좋다고 하셨어 바깥양반은 시어머니께 좋다고 하셨어
"주말엔 꽃게탕 해줄게."
"꽃게탕은- 나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게 맛있었어."
"아 그거야 뭐..."
태안. 대하와, 꽃게와, 쭈꾸미의 고장인 태안. 그 태안에서 나고 자란 꽃게탕은, 사실 엄마는 식당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할만큼 맛있다. 게다가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것이니, 꽃게탕이 아니라 해물탕이라고 보아야 옳을만큼, 엄마가 정상 들여 끓여주신 적이 있는데 바깥양반은 그걸 기억하고 있다. 일요일 밤에 집에까지 가서 아직 온기가 있는 그놈을 차로 실어다 왔더랬지. 상등품을 사서 끓였으니 살이 꽉 차 있고 달았다. 그런 꽃게탕을 이야기하면, 내가 갑자기 확 기가 좀 죽는데. 어쩔 수 없지. 흐음.
이 대화가 있던 무렵, 나는 주말에 꽃게탕을 끓이려던 참이었다. 얼마 전에 엄마가, 이모가 태안에서 보내셨다며 꽃게를 한봉다리 주신 때문. 그걸 받아다 와서 꽃게 손질도 귀찮고 또 한번 하면 일이라, 미루고 있던 참이다. 개학과 개강으로 한동안 바쁘게 살았다. 이젠 딸아이가 아빠 엄마와 겸상이라 애가 먹을 것을 고려하며 밥을 차려야 한다. 그러다보니, 꽃게탕처럼 품이 가는데다 아이가 먹지 못할 매운 음식을 할 일도 없다.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식탁은, 그런 것이랄까.
어쨌든 결심한 일이다. 꽃게를 꺼내 간단히 짧은 해동을 거친 뒤 손질을 시작한다. 비로소 검은 봉지에서 꺼내 꽃게를 보니 다리가 한두개씩 빠져 상품가치가 떨어진 파치들이다. 그래도 크기는 꽤 크다. 솔로 살살 닦아가며 대강 손질한다. 꽃게의 털이 제법 더럽다. 생물이 아닌 언 게라서 마뜩하게 손질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뭐. 벌써 내가 몇년 경력이던가. 다섯마리다. 제법 많다. 그래도 슥슥 해나간다. 프로주부!
국물은 무를 넉넉히 썰어 미리 끓여뒀는데, 그리고 야채를 제법 신경을 썼다. 쑥갓을 사지 못한 것 빼고는,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팽이버섯을 정상적으로 뺀 것 빼고는, 거금을 들여 홍고추도 사, 필요한 것은 다 넣는다.
이렇게 해도 바깥양반에게 칭찬을 듣진 못하겠지. 애초에, 엄마가 끓이는 꽃게탕과는 뭔가 차이가 크다. 번번이 그렇다. 미역국만 해도, 소고기 육수를 잘 뽑아내지 못하는 나와 엄마 사이엔 상당히 맛의 차이가 있다. 뭔가 미역국도 무국도, 엄마가 끓인 것이 더 깊고 진한 맛이다. 비결이 뭘까. 조미료만은 아닐 텐데. 불 조절 차이일까, 미리 핏물을 빼는 것의 차이일까. 그 정체란 뭘까. 알고 싶지만 묻진 못하겠다. 묻는다고 해서 상세한 레시피가 날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에도 "어머니 께 더 맛있어"라는, 바깥양반의 평가를 난 받아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을 알면서도, 쭈꾸미도 대하도 넣지 않은 꽃게탕을 심심하게 바라본다. 짜게 먹으면 안된단다. 국물이 적당히 맹탕같으면서도, 간을 더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저것 섞을 것 없이 알뜰하게 먹자. 대하와 쭈꾸미를 사지 않은 이유다. 차분하게 몇가지 선택지들을 쳐내면서도, 마음속으론 엄마의 그 꽃게탕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운다. 아, 좀만 어떻게 하면 따라잡을 것 같은데 말이다. 꽃게탕처럼, 레시피가 뻔한 음식은 말이지.
"맛있냐."
"응."
따님은 밥을 먹지 않겠다 침대에 누워서 영상만 보고 계시고. 우리가 먼저 앉아 저녁을 먹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집에서 푹 쉬었다. 아기도 바깥양반도 감기에 고생이다. 그런 하루에, 따끈한 꽃게탕이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어딘가 심심한. 소란스러우면서도 단촐한 밥상이다. 내가 한것보다 차라리 엄마에게 한번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낫다 싶으면서도, 이제 나이들어가는 당신께 그게 좋기만한 청탁인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차라리 내가 그렇게 끓여다줄까. 굳이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이 수선스럽게, 꽃게 국물을 뜨는 숟가락처럼 오가며, 오늘도 나는 산더미처럼 꽃게껍질을 까내서는 내 밥그릇 옆에 쌓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