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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으로 기른 아이

아빠는 대학원생

by 공존

"아빠 무릎에"


동백이는 아빠 무릎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기 때부터 밥을 먹을 때 내 무릎에 앉혀버릇하여 그렇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식탁 높이에 맞춰진 아기의자에서 아기 동백이는 빠져나오려고 번번이 애를 썼고, 아빠 무릎에 앉혀서 밥을 주면 얌전히 있었다. 한 자리에 앉혀 밥을 먹이는 일의 고단함은 모든 유아 기르는 댁들이 아는 일. 나는 그냥 곰처럼 고달픈 건 잘 참아내는 사람이라, 세살 버릇이 다섯살이 되도록 버티어내고 있다. 카페에 가서도, 식당에 가서도 그렇다.


대강 동백이의 선호는 이렇다. 일 순위는 아기의자다. 그런데 그 이유가 웃기다. 원래부터 아기의자에 앉혀놓으면 빠져나오겠다고 용을 쓰던 아이이므로, 아기의자가 편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생겨나면서 아기 흉내를 내는 것을 좋아하면서 하는 장난질이다. 40개월이 넘은 닷살 유아이므로 아기의자에 앉을 나이가 아님에도, "응애" 하고 아기 흉내를 내며 앉겠다 한다. 그러면 밥 먹는 잠시 간은 좀 얌전해진다.


아기의자와 비슷한 순위로 아빠 무릎에 앉겠다고 한다. 아기의자가 있을 경우에는 확률은 반반, 아기의자가 없으면 무조건 아빠 무릎에 와 앉는다. 특히 카페에 오면 제 엄마는 거의 관심도 없고 아빠 무릎에 앉아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본다. 이것이 아내가 좋아하는 카페 나들이에 있어서 나의 크나큰 고뇌다. 카페란 기호이고, 필수적인 생활의 요소는 아니다. 우리는 제빵소처럼 카페에서 밥을 해결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저 아내가 카페를 좋아라 가는 것인데, 가면 카페에서 있는 내내 100센티가 넘어 이제 무겁기까지 한 아이를 몇십분이나 무릎에 앉히고 팔딱거리는 것을 견뎌주어야 한다. 이게 쉽지가 않다.

나는 또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므로, 아이를 끼고는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억지로라도 책을 편다. 그러면 동백이는 단숨에 날 공격하기 시작한다. 책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얼른 가방에 책을 밀어넣어야 한다. 책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런 롤모델을 아이가 지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노력이지만 시기상조라고 해야할까.


여러모로, 무릎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퍽 힘들다. 어릴 때부터 업둥아기로 키우지 말고 똑부러지게 의자에 앉는 교육을 시켰다면 좋았겠지만은, 동백이가 태어난 그 순간에도 나는 병원에서 줌으로 학회에 참석중이던 대학원생이었던 관계로, 육아의 모든 기간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퇴근 후 저녁에 아이를 먹이는 일에는 일분 일초도 낭비하기 어려웠다. 빠르게 아이를 정좌시켜 식사를 마치려면 내 품이 제일 편안했다. 가뜩이나 아빠의 팔베개에서 잠들다가 아기 침대로 옮겨지던 갓난아이 시절을 보낸 아이라 아빠의 체취가 안심이 되고, 지금도 아빠 옆에서 잠드는 아이이니, 모든 일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아이에게 있어서도 자기가 편하고 안정감이 드는 환경에서 뭐든 집중이 잘 될 것이라. 동백이는 다른 일은 자기 책상에서 하더라도, 책을 읽는 것은 아빠 무릎이 편한듯 군다. 그나마 아이와의 분리가 가능해지는 집안 공간에서, 책을 읽을 땐 내 품에 파고든다. 책 몇권을 읽는 것은 길지 않은 시간이라, 집에서는 그럴 때 조금정도 무릎에 앉혀주면 된다. 집에서 밥 먹을 땐 세번에 한번쯤은 자기 의자가 아니라 아빠 무릎에 앉겠다고 하는데,그 경우에는 좁은 동백이 의자에 엄마가 골반을 끼운다. 그게 퍽 웃기다.


"몇년 안남았다."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고, 나도 뼈저리게 느끼는 말이다. 꿈꾸는 것은, 아이와 카페에 가서 마주 앉아, 각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는 각자의 길로 나뉘어지는 미래로 속절없이 향하게 된다. 지금이 좋을 때지. 무릎 위의 무게를 내가 그리워하게 될 테지. 이런 생각도 하곤 한다만은.


그러나 무릎 위에서 내려온다고 끝나지는 않을 터이고, 각자의 길이 달라진다고, 멀어진다고 끝도 아닐 것이고. 그렇게 또 그렇게, 커나가고, 나는 돌보아야할 테지.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 훨훨 날아갈 때가, 오긴 오려나.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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