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으아아아 마누라 도시락 싸다가 손가락 베었다아아

아보카도 젠장

by 공존

으씨. 피가 제법 났었네. 부상 4시간만에 손가락에서 반창고를 떼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젠장 맞을 아보카도녀석. 후숙을 일주일을 넘게 시켰는데도, 손가락까지 베어가면서 잘라놨더니 도시락엔 넣지도 못했다. 하나에 2천원짜리 아보카도를 그냥, 만원어치를 사서는, 도시락을 싼다고 하고는, 어제 딱 한번 넣어줬네. 환경의 적이다. 원망할 테다 아보카도, 몰아내자 아보카도. 물만 드릅게 많이 먹는 아보카도 녀석


"한달만 도시락 먹어볼까?"

"...재료값만 줘. 내가 해줄게."


6월 한달간 우리 아내분, 아니 여전히 바깥양반인 그녀는 도시락을 먹어볼까 이렇게 생각을 하셨다. 회사 식당이 너무 맛있어 과식을 하게 되니 말이다. 봄철부터 약간 몸이 쑤셔 운동도 통 못한 참이다. 리프레시도 할 겸, 한달만 회사 식당을 끊고 도시락을 먹는다 하셨다. 내가 도시락을 싸준다니, 그러나, 바깥양반께서는 처음엔 거부하셨다. 아침에 애 챙기랴 바쁜데 뭘 그러냐며. 아침마다 빵집에나 들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나.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사서 가려니 뭐보다도 돈 계산이 안나온다. 돈도 아끼고 고루고루 좋은 취지로 도시락을 하는 건데 아침마다 빵집에 들러야 하고, 그렇게 가성비 생각하며 어렵사리 고른 샌드위치는, 비싸고 허기진다. 전혀 답이 안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2주쯤 버티다가 코스트코에서 콥샐러드와 리코타 샐러드를 샀다. 그러니, 이건 먹더니 좋더란다. 그래서 다음에 또 콥샐러드 사러 가자는 것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코스트코 콥샐러드는 비싸. 이틀 치에 18000원이야. 가성비 너무 떨어져."

"아 그게 맛있는데."

"돈 줘. 내가 만들게."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프로주부, 이몸이 만드는 콥샐러드. 이 점에서 나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뒷걸음질을 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첫날엔, 그래서 3만원 정도 재료를 샀다. 만원어치 아보카도와 방울토마토 등등. 샐러드 드레싱? 집에 있던 올리브유와 발사믹식초. 크루통은 꼭 넣어야 맛있다. 식빵 자른다. 버터에 볶는다. 오븐에 180도로 20분 굽는다. 완성. 감자 샐러드. 감자 삶는다. 베이컨과 양파 볶는다. 계란 삶는다. 믹스. 식초를 넉넉히 넣어 상큼하게.


저녁에, 운동을 하고 나서 밤 11시가 될 무렵에 밑준비를 해둔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선 부리나케, 아침을 차림과 동시에 바깥양반을 위한 도시락을 싼다. 후다닥 콘 넣고 크루통 넣고 이제 여기에 아보카도만...


"아오!"

"응?"

"아 씨 아보카도 이 새ㄲ..."

"뭐야 조심하지."


아보카도. 아보카도 아보카도. 마음에 안든다 아보카도.


그러나, 이렇게 나는 아내를 2주간 먹였다. 그것도 재료를 두루 섞어서. 닭가슴살을 삶아서도 주고 구워서도 주고 튀겨서도 주었다. 파푸리카도 넣어주고 치커리도 넣어주고. 질리지 않게 섞어주면서.


"아 그래도 일주일 내내 먹으니까, 월화는 엄청 맛있는데 목금 되면 질려."

"그래서 드레싱도 바꿔줘야돼. 샐러드 도시락은 유지력이 생명이야. 지루하지 않게 다양하게 해야해."


남편표 케이준 샐러드, 양배추를 조금 줄여서 양을 조절하니 바깥양반은 잘 드셨다. 이렇게 2주가 흘렀다. 2주간은 매일 아침을 싸주었으니, 괜찮은 행복이다.

"7월엔?"

"그냥 식당에서 먹으려구- 아침에 너무 바쁘고..."

"...흐응."


그리고 이렇게, 아마도 서너번 정도의 아침만 남았다. 이런. 어제는 리코타 치즈도 15000원어치나 샀는데. 그렇게 한 계절이 끝나간다. 장마가 온다. 방학도 오고. 6월의 마지막날 전엔, 아보카도 흉터도 사라지려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제로부터 시작하는 피자 쿠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