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잇 알겠습니다
"...웬. 누나라니."
"아 마누라 말 들어야지. 말 잘들어라!"
"아니 나이 먹었단 소리 듣고 싶어졌어?"
사람이 안하던 일을 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고 수상한 일이 생긴다는 조짐이다. 생일 선물이라고 바깥양반이 준비한 케이크와 토퍼를 보고 나는 굉장한 의아함과 의구심을 느꼈다. 세상 어느 여자가 나이 먹는 걸 좋아한다고, 누나라고 부르라니, 영 안하던 짓이다. 우리 바깥양반으로 말하자면, 소녀 시절의 외모와 성품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애쓰는, 그런 열정을 지닌 사람이란 말이다. 자기를 애기라고 불러주면 좋아할망정, 누나라고 부르라니. 누나가 준비했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네 살이나 차이가 나서 평소에도 그닥 남편을 하대하지 않는 바깥양반이니 말이지.
오늘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생일인데, 자꾸 나보고 생일 식사를 사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 법이 어디있냐며 바깥양반 용돈에서 오늘 저녁 식사는 나보고 사라고 말을 해도, 수시로, 바깥양반은 내게 식사 비용을 부담하라며 수작을 걸었다.
오기로 한 것은 아웃백. 이 점에 있어서도 나는 불만이 있었다. 주말이라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을 온 참이었는데, 나는 이왕이면 좀 멀리 나왔으니, 양평이라도 가서 레스토랑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바깥양반에게 제안을 했고, 그것을 바깥양반은 고심 끝에 거절했다. 아니 왜? 평소라면 당연히 아웃백보다는 다른 레스토랑을 선호할 바깥양반이, 구태여 집 근처에 있는 아웃백을 가자고 한 것이다.
"아니 왜 굳이 아웃백을...이해가 안되네."
"공룡 디저트랑 인형 사주고 싶어 동백이한테."
"생일은 나인데?"
"응 2만원 인형 고를 수 있다니까 그것 좀 오빠가 사줘."
"뭐? 밥도 내가 사고?"
"응."
이게 뭐냔 말이다. 생일에, 미역국 등 생일상은 보류. 식당은, 왜 굳이 아웃백에, 밥값은 생일 당사자인 남편보고 내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이리저리 해서, 케이크를 사서 아웃백을 가긴 했는데, 가서도 여엉 껄쩍지근하게, 바깥양반은 돈은 아끼자며 나에게 이것저것 할인을 알아보게 하고...
"...아오 열받아."
"응? 왜?"
"아니 이게 내 생일이냐. 생일이냐고오-."
이런 솔직한 심경이, 하루 종일 푸대접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빠 생일 축하해애애 사랑해애애."
그러므로, 생일 케이크에 불을 켜고 노래를 두번이나(우리 딸은 촛불 켜고 노래 부르고 초를 부는 것을 좋아한다. 여느 아동과 마찬가지로.) 부르고 촛불을 끄는 동안, 내 기분은 여엉 좋지가 않았다. 아웃백도 필요없고 맞춤케이크고 뭐고 필요없고 그냥, 부부가 서로 잘 이해하고 아끼고...그런 생일이면 좋은 게 아닌가?
"자. 선물."
"뭐여."
"남편 생일인데 사달라는데 사줘야지."
"뭔데."
헐.
"아니...사지 말라니까?"
그...것은, 닌텐도 스위치2였다. 아니, 몇개월 전에 내가 그냥 농담으로 "이거 사주면 5년치로 칠게-."했던 물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는 플레이스테이션5를 받았었더랬지. 그래서 5년치 몰아주기 선물이면 되겠다며 농담으로 말을 했고, 심지어 한달 전에는, 이런 대화도 있었더랬다.
"닌텐도 사려면 당첨 되어야한다는데?"
"어 사지마. 농담이야. 게임 할 시간도 없고."
"응."
그러니까, 농담으로 한 말에. 굳이 살 필요가 없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도 한 것을, 바깥양반이 응모를 하더니 당첨이 되어서는, 이렇게 사가지고 온 것이다.
"마리오카트 포함된 버전이라 68만원이다. 당첨 안되면 안사줄라고했는데 한번에 딱! 당첨 되서 내가."
"하...참 내."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영문 모르던 상황에 대해서 알았다. 정말 뿌듯했던 모양인지, 평소 같으면 절대 안하던 짓을 한 거구나.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쓴 거구나. 너 답지 않게."
"그러니까 오늘 밥을 사야겠냐 안사야겠냐."
"나 원 참."
...그래 이런 부분에서의 의문까지.
내 생일은, 그렇게 되었다. 농담으로 던진 말에 바깥양반이 그 어렵다는(아는 사람들은 다수가 떨어졌고, 이런 거 당첨 잘 되는 친한 형만 딱 붙어서 샀다.) 닌텐도 스위치2 구매에 응모했고, 럭키비키하게 당첨되었다. 그래서 나는...잘 나가는 최신형 게임기들을, 출시 때마다 따박따박 구매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을 5년 주기로 반복하게 되었다. 평소에 "선물 뭐 받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단 한 글자. "책"이라고 대답하는 삶인데도 말이다.
농담으로 한 말에 철썩같이 게임기를 사준 바깥양반께, 감사해야...하겠지? 그래서 생일 이래로 네 살 어린 누나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재밌다. 뭔 말을 하고 있으면 "알았어 누나!"하고 우렁차게 말하는 것도.
다음에 같이 사람 많은 곳에서 꼭 우렁차게 외쳐봐야겠다.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