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대상이 아니라, 공부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흥미가, 본질이다.
"그래서 <공부 도파민> 작가씨, 너는 공부 도파민을 느껴?"
"어. 최근에도."
최근에 저는 실제로 공부 도파민을 느꼈습니다. 대학원애서 지도교수님과 함께한 수업에서였습니다. 글을 쓰는 이 시점은 종강을 한 뒤이고, 제가 이 공부 도파민을 느낀 건 바로 2주전, 15주 차 수업, 기말고사 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곧 기말 레포트를 내야 되는 타이밍이었습니다.
기말레포트를 위해 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에서 자료를 찾아다녔는데, 그게 잘 나오질 않았습니다. 좋은 논문의 주제는 꽁꽁 감춰져있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품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1984년에 의대 정원이 2860명이었고 2025년 현재 3058명입니다. 왜요? 1984년에는 지금보다 전체 대학 정원이 절반 정도였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84년도 저때쯤에 대학 정원을 많이 늘려주죠. 대학 정원은 두 배가 되었는데 현재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불과 10%도 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 이걸 밝혀야 되는데 이거 어떻게 밝히지? 이게 되게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달 정도는 많이 좀 찾아보았는데 기말 과제를 내야할 시점까지도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근데 찾다 찾다가, 깜짝 놀랄만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쓸만한,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매우 매우 중요한 데이터였습니다. 평일 저녁 한 7시 반쯤이었어요. 도파민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신나가지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교수님! 오늘 발표한 연구 주제에 대해서 사료를 찾았습니다. 한참 찾아 헤맸는데 여기 있는 이 데이터를 활용하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원래는 이런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 카톡을 보낸 상대방은 서울대 교수님이시고, 정년이 10년 정도 남으신 중견급이시고, 연구에 있어서는 눈높이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제가 저런 걸 신나서 보냈을 때 저는 이제 한 달쯤 있으면 교수님께 이제 카톡이 오겠죠.
"그 연구는 잘 돼가요?" 이렇게요.
그러나 저한테 이 사건은 굉장히 생생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기말 과제를 하자고 생각하고 한 달 정도를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못 찾았고, 이걸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냥 제가 찾다 찾다가 마치 우연히 사막에서 금광을 캐듯이 너무나 대단한 데이터를 발견한 거였고, 그러니까 이 데이터 같은 경우에는 한국 의사교육의 역사에 있어서 60년짜리의 블랙박스였던 거예요.
이제 기말과제를 마치고 크리스마스도 지났습니다. 곧 겨울방학입니다. 저는 60년치 데이터를 가지고, 알아보기 어려운 한자가 그득한 문서들을 보면서 제가 찾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게 제 혼자서 방학 과제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 이 논문들을 잘 이어가면은 정말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저의 바로 최근의 이 경험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공부는 원래부터 즐거움이다.> 이러한 깨우침의 순간, 혹은 어떠한 공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저는 몹시 생생하게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러한 즐거움의 감정은 앞으로 이어질 길고 긴 배움의 인내의 시간을 달콤한 것으로 바꿉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도, 의대 정원이 늘어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아주 티끌만한 단서라도 발견된다면, 그 이익을 누릴 분도 계시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앞으로 제게 닥칠, 스스로 불러온 고난의 시간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름 전쯤에 느낀 생생한 도파민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한번 공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공부 도파민에 대해서 오해가 있습니다. 이게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즐거운 공부가 말이 돼?" 그러실 수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고등학교 공부 아니면은 중학교 공부라고 했을 때 힘들거든요. 아침, 새벽부터 학교에 가서 밤 늦게까지 11시 12시까지 야자하고 그렇게 갔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들이 어떻게 즐거움일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시죠.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수업을 전달해야 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공부를 최대한 즐겁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제가 몇 년 전에 했던 수업 재구성 과정인데요. 제 원칙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문장은 그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요령으로 문장을 제시하고 영작하는 거를 1년 내내 했었습니다. 영작한 걸 고쳐주고 마이쭈를 줬어요. 그리고 말하죠.
"틀려야 된다. 오히려 너희들이 다 맞는 문장만 쓰고 가면 내가 고쳐주지 못하잖니 오히려 누군가가 와서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틀려줘야 내가 모두에게 수업을 한다."
예를 들어 이제 중학생부터는 잘 많이 안 하는 실수이긴 한데 고등학교까지 와도 be동사를 무조건 문장에 집어넣는 아이들이 있어요. 진행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칠판 앞으로 나와서 그 문장을 써줬을 때 제가 지적을 해주고 고쳐주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아이들이 모두가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 칠판에 붙어 가지고 즐겁게 영작을 하게 되거든요. 단어로 게임도 시켜주고, 2학기에 10월쯤 되었을 때는 1년 동안의 자율적인 영작이 무르익어서 거의 아이들이 한 반에 한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는 아이들이 생각한 것을 술술 쓸 수 있는 단계가 되었어요.
이렇게 하기까지는 마이쭈를 매일매일 들고 다니는 것은, 또 그렇잖아요. 요즘에도 고등학교에서 추파주스라거나 마이쭈를 들고 다니는 교사가 있으면 이상하게 봅니다. 하지만 저는 교직 15년 차인 지금도 마이쭈를 항상 들고 다닙니다. 아이들한테 계속 줍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도 주고 잘했을 때도 주고 이러면서 아이들이 계속 공부를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에게 있어서 수업은 항상 지루하고 회색빛의 것으로 남습니다.
중고등학생에게 공부 도파민이 더 중요하다는 것 강조하면서 서론이 길었으니까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도파민.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이 도파민이라 함은 이 성취감과 보상감,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하며 학습 속도 정확도 인내 작업의 완성 속도, 완성 속도라고 함은 이제 배우는 것 속도 와 별개로 최종적인 성과물을 내는 속도를 말하는 거겠죠. 여기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호르몬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그럼 이제 우리의 관심은 이것이죠.
"아이가 공부해서 도파민을 느끼고 공부를 오래 하도록 하는 그 본질은 무엇이냐, 아이의 특성일까 아니면 공부 내용이 재미있어야 할까?"
이러한 관점들을 가지고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하는데요, 이렇게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그런데 한번 이렇게 보시면 어떨까요? 이 공부와 나 사이에 놓인 것. "인터레스트" 즉. 흥미 라고 하는 개념이 있죠. 실제 어원을 보시면 인터레스트(interest)는 "사이에 놓여 있는 것" 즉 우리가 대상에게 느끼는 흥미. 흥미가 곧 대상과 아이, 대상과 우리와의 연결 관계인 것입니다.
흥미는 대상을 만나고 생겨나눈 즉각적인 심리적 반응입니다. 무언가를 보자마자, "아, 신기하다"라고 느끼면 거기에 다가가서 만져보고, 속도 들여다보고 하겠죠. 그렇게 대상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집니다. 제가 의사교육에 대해서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40년간 쥐꼬리만큼 늘어난 의대 정원과 60년간의 의대 교육의 역사의 방대한 데이터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므로 흥미, 혹은 도파민은 배움에 이르는 필수적인 요인이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아이는 흥미를 품고 세상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도파민 즉 흥미 인터레스트 그리고 이 인터레스트가 의미하는 아이와 공부와의 관계가 즉 배움의 열쇠입니다. 흥미는 공부와 우리 아이들을 이어주는 연결 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쓴 저의 뇌피셜은 아니고 매우매우 유명한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의 이론입니다. 듀이는 아이가 태어나서 눈앞에 있는 물건들을 감각할 때 촉감할 때, 혹은 입에 집어넣을 때 이때 느끼는 흥미를 바로 고유한 학습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때 혹은 나이를 먹었을 때까지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을 느끼고 흥미를 느꼈을 때 거기에 다가가 배움을 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움은 관계에서 싹트는 흥미에서 시작합니다. 이 관계는 깊어지고 넓어지며 확장합니다. 더 많은 흥미를 지닌 아이는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의 흥밋거리에서 충분히 즐거움을 얻었다면, 더 깊은 곳에 보다 많은 흥밋거리를 만나, 더 큰 배움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흥미의 관계망, 도파민의 경로를 활성화할 때 아이들의 학습 주도성도 크게 커집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죠. 배움의 본질은 흥미를 품고 다가서는 것인데, 거의 모든 현실의 교육 환경에서는 흥미보다는 끈기와 경쟁심을 자극하려 애를 씁니다. 재미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오래 버텨 많이 외우고 시험 때 실수를 안하면 칭찬을 받지요. 당연히 아이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효율이 감소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아이를 책상에 앉히고자 학군의 효과를 얻어보려 하고 학원비 지출을 늘립니다.
이런 공부, 과연 오래 갈까요?
이러한 공부 도파민에 대한 두번째 오해가 있죠. 흥미 좋다 이거야. 그런데, 너무 다방면에 좀 잘난 아이가 있을 것이고 이럴 때 좀 집중력이 틀어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꼭지에서 다시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브런치북의 글들은 저의 책, <공부 도파민>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심화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이 재미있으셨다면, 아래 책도 한번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공부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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