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 생일상 연대기

한 해도 빠트리진 않았다.

by 공존
2023년엔 글도 올렸고.

"작년에 안해주지 않았어?"

"그랬었던 것 같은데..."


생일 상을 차리는 나에게 2026년에도 여전히 바깥양반이신, 그녀는 와서 말한다. 작년에, 내가 생일상을 안했었나. 그러면 생일상 없이 반찬을 뭘 해줬었지. 흐음. 작년에 너무 바빴을 거다. 아이를 두고 생일상을 차리는 대작업도 어려웠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복닥복닥 요리를 계속했다.


모처럼, 아이도 늦게까지 잔다. 어제 열심히 놀더라니.

이번에 장은 이렇게. 도라지와 고사리를 아침에 손질하기 어려울 것 같아 국내산으로 손질포장된 걸 샀다. 지금 내 오른손 엄지손톱이 검게 착색된 부분이 있는데...재작년에 머위를 손질할 때 착색된 게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맛은 있었는데, 고생해서 남은 게 손톱에 착색된 머위의 껍질색이라니...그래선 안되지.


아, 그나저나 마트에 캐나다산 LA갈비가 100g에 2500원 이내 가격에 판다. 바깥양반이 고기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LA 갈비를 좋아하시니, 앞으로 종종 이 마트에 가서 사는 걸로.

집에 와서 후루룩 삼색나물을 한다. 도라지를 열어보니, 조금 더 얇게 따서 손질을 할 필요는 있지만, 문제는 그럴 시간이 없다. 후딱 삼색전에 삼색나물에...미역국도 아직 안한 참이다. 아이가 미역국을 좋아해서 자주 끓여주느라, 지난주에 똑떨어진 것이다. 좀 미리 장을 봐올걸. 그래 헐레벌떡 고사리도 지지고 남해섬초로 시금치 나물도 만들고.


바깥양반의 식성은 굉장히 특이한데, 나물은 싫어하지만 나물비빕밥은 뚝딱 해치운다. 생김치는 안먹으면서 김치볶음밥은 또 잘 먹는다. 요약하면, 초딩입맛이다. 그걸 다 받아줄 요량이 아닌 나는 알아서 너 먹거라 하고 나만 그 김치를 잘만 먹는다. 이번에 김장을 12월 중순, 좀 늦게 한 편인데 해남에서 올라온 배추라서 그렇다고 한다. 아주 추워지길 기다렸다가 수확한 배추라고. 그래서 굳이 저 해남에서 한겨울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해 절여진 배추는, 지난주에 처음 까서 먹기 시작했는데 그게 참 달고 맛있다. 신기해.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슈슈슉 나물에 이어 삼색전까지 완성.

초록 애호박에 하얀 생선전, 그리고 새송이를 간장에 잠시 담가 색을 내서 부쳤다. 원래는 새송이도 흰색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구색을 갖추었다. 김치를 다져서 전을 해도 됐을 것 같긴 하지만, 아이가 아직 어리니 삼색전에 김치전이 섞여 올라갔을 경우에 다른 전들을 안먹을까봐서 뺐다.


이렇게 하니 양이 퍽 많다. 다 먹을 수 있을까 싶기도하지만, 남으면 뭐 비비거나 볶거나 만두나 만들어먹는 일이지.


그 사이에 미역국도 잘 익어간다. 미역국은 새해 첫날에 바깥양반이 떡국을 먹고싶다 해서 아롱사태로 우린 육수가 있다. 떡국을 끓이고 남은 육수를 뒀다가 아이 한번 간단히 국물 만들어 먹이고, 바깥양반 생일 미역국으로 모든 육수를 합치는 것으로 결정.


"아빠 뭐해?"

"일어났어? 쉬 했어?"

"응 했어."

"아빠 엄마 생일상 차려."

"생일사앙?"

"응 작년에 동백이도 케익 불었어."

"케익 케익!"


밥도 취사를 눌러놨고, 복닥거리는 사이에 아이도 늦잠을 자고 깼다. 주말에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이 늘 아침의 관건이다. 9시에는 밥상이 차려져야 한다. 아이가 배고파한다. 그런데 나도 늦게 자거나 하는 일이 많다보니, 아이와 같이 침대붙이로 놀다가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9시가 되면 아이가 먼저 과자를 까먹는다. 그렇게 되면, 아침밥은 반 밖에 먹질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 주말 아침은 9시에 식사 시작이 우리집의 지침인데...오늘은 아이가 피곤한지 늦잠을 잔 참이다. 10시 다되어서 아침을 먹을 것 같은데 당장은 배고프다는 말도 않고 엄마 품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미역국 또 간장 넣었어?"

"...원래 넣는 거야."

"원래 오빠가 한 미역국이 더 좋은데 간장 넣으면 별로야."

"...알았다 다음엔 간장 안넣을게."


바빠 죽겠는데. 밥을 푸고 국을 떠 식탁에 올리자 바깥양반이 와서 미역국을 보더니 말한다. 아니 애초에 이번엔 육수 자체가 짙게 뽑히기도 했고, 원래 간장 한 숟가락은 액을 막는 의미로도 붓는 것인데 말이다. 원래 나는 좀 올드한 레시피로 만드는 편이라, 옛날 간장의 그윽한 맛이 좋아 그리하곤 하는데, 아이도 그렇고 바깥양반도 그렇고, 식당에서 파는 그런 깔끔한 맛이 좋은가보다. 또 바깥양반은 자기 친정에서 먹어온 게 있을 것이고.

"잠깐 잠깐. LA 갈비. 아 탔다."


탔다. 오늘 생일상의 킥인 LA갈비가. 두툼한 갈빗살이, 탔다. 냉동LA 갈비를 구워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렇다. 중불에 천천히 구웠어야 하는데 밥 뜨고 국 푸는 사이에 겉면만 타버렸다. 그래도 겨우 그렇게 생일 상은 완성.


"세시간...좀 안걸렸네. 너 폰 좀 줘봐."

"응 여기."

"...흐음...봐. 작년도 했었네!"


식탁에 앉아선 밥을 먹으며, 나는 아내의 폰에서 작년의 생일상, 재작년의 생일상을 찾아보았다. 작년은 나물 없이 삼색전을 햄 등으로 흉내만 한 소찬에 미역국 하나였다. 그 전 해엔 아침 생일상에 케익도 나름 잘. 그리고 재작년엔 브런치에 글까지 올렸더랬다.


그래. 한 해도 빠트리진 않았구나 그래도.


"너는 내 생일상은 언제 이렇게 차려줄 거니."

"몰라 하겠지."

"흐음...애호박 전 잘먹네? 안먹잖아 부침개는."

"전은 좋아해."


이상한 녀석. 애호박을 채쳐서 호박전을 해주면 싫어하는데 호박전유어로 명태전과 같이 붙여주니까 잘 먹는다. 아이도 쇠고기는 못씹어서 뱉어내더라도, 명태전에 미역국으로 아침을 배불리 먹었다.


"흐으으으- 하암...나 좀 쉬어도 돼?"

"빨래도 돌렸고 설거지도...뒤에 봐바."

"좀 더 누워있고 싶은데."


올해로 바깥양반은 마흔. 마흔살 생일상을 받아 만족할만큼 식사를 하시고, 기지개를 길게 켠 다음, 방으로 들어가 잠을 더 주무셨다. 사실 감기를 한 3주 가까이 앓고 있고 기침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잔다. 그리하여 나에겐, 아이를 돌보며 한두시간쯤 더 집안일을 해야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런 아내의 생일이, 올해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렇게, 이어지겠지. 아이는 커가고, 우리는 늙어가긴 하겠지만 이제.


그래도, 이렇게 한 해 한 해, 이어가고 있는 건 참 뜨순 일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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