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풀가동!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을 보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1년간 야간 자기주도학습 반 아이들을 전담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입학내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발로였죠. 그래서 열댓명의 아이들을 하나의 교실에 모아놓고 매일 밤,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아이를 20명이나 모아놓으니 당연히 제법 여러가지 유형의 아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효과적이지 못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지켜볼 기회도 생겼지요. 어떤 한 아이는 책상에 잘 앉아, 딴짓도 거의하지 않고, 나름 꾸준히 공부를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정말로 진전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책을 펴놓고 가만히 읽고만 있는 것이었죠. 수능 문제도 풀어봐라, 다른 책도 읽어봐라 여러가지를 설명해주었지만 말을 듣지 않았죠.
이런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부모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는 시험성적이죠. 어린이집에서, 학원에서, 학교에서, 컨설팅에서 아이에 대해 이런말 저런말을 해주어도 그것이 어떤 객관적인 지표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수치로 드러나는 성적, 이왕이면 상대평가로 몇명 중 몇등 정도. 이렇게 알려주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런 성적조차도, 아이들마다 투자한 시간, 공부 방법, 공부 환경, 그날의 컨디션과 운까지 여러가지가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객관적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만은 하므로 우리는 여전히, 이 성적표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 성적표에서 좋은 결과를 매 차례 확인하고자, "더 많이" 혹은 "더 일찍" 공부하는 습관을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부여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선행학습의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더 많이, 더 일찍부터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아이들의 학습 시간을 단지 양적으로 늘리는 것일 뿐입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이들이 실제로 '학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로 알지 못하죠.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머릿속을 알지 못한채로 성적만 받아보며 공부의 '양'만 늘리는 습관은 우리의,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관점을, 크게 뒤흔들고 있습니다.
수업/문제풀이/자기주도학습 - 학습/적용/전환
수업을 듣고 문제풀이를 하는 것은 정보를 받아들여 학습하고, 적용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전환을 위한 이전 단계입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과 그리고 문제풀이를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과정이지만,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뇌가 활성화되지 못합니다. 교사가 여러가지 재미난 학습활동을 수업에 담아 학생들의 주의력을 끌어올리도록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긴 시간을 수업을 듣는 것은 아이들의 사고가 충분히 발산되기 어렵습니다. 문제풀이 역시 그렇지요. '생각하는 황소'처럼 아이들이 백방으로 문제에 접근하면서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면, 대체로 암기하거나 이해한 것을 토대로 지식을 적용해보고 틀릴 경우, 답안지를 통해 해당 지식을 다시 학습하는 비교적 단순한 활동입니다. 뇌가 작용하는 방향이 편향됩니다.
그러나 성적은 수업과 문제풀이에 기반하여 평가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세번째 영역인 자기주도학습, 즉 지식의 측면에서 '전환'의 단계에 대해선, 우리들은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관심하고, 아이들이 책상에 홀로 앉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지, 그렇지 않고 '안전빵'으로 풀던 문제 또 풀면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학습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면, 자기주도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전환'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새로 배운 지식을 전환해야만, 자기만의 지식체계에 통합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것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두뇌가 풀가동되는 수준으로 학습이 이루어져야만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최단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이 발휘될 수 있죠.
아이가 혼자 책상에 앉아, 두뇌풀가동 상태로 공부에 몰입하기 위해선 몇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선은 이전 단계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보고 전환하는 경험이 풍부하게 이루어져야합니다. 앞서 고등사고력의 발달 과정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낀 대상에 다가가 탐구하고, 그로부터 대상과 함께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며, 거대한 관계망 사이 각각의 대상을 넘나들며, 그 속의 의미를 탐구하는 고등사고력 수준으로 뇌가 활성화되는 경험. 이 경험의 반복이 곧 두뇌풀가동의 기반이 됩니다.
두뇌풀가동의 준비가 된 아이들의 하루는 눈을 뜸과 동시에 시작합니다. 연구를 위해 만난 아이들 중, 우수한 학생들에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뭘 가장 먼저 하니?'라고 물었는데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들은 의외로 적었습니다.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세수를 한다고 대답했죠.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유튜브나 게임을 하는 아이들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고, 그런 아이들이 자기주도학습을 잘합니다. 어젯밤에 잠들기전까지 자기 머릿속을 떠다니던 수십가지의 이야깃거리들, 공부거리들이 있으니 누워서 핸드폰을 볼 여유따윈 없는 것이죠. 보던 책을 마저 읽거나 끝내지 못한 문제집을 끝내야합니다. 빠르게 뇌가 활성화되고 부지런히 일어나는 아이들이 두뇌풀가동에 이르고,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을 잘합니다.
과제를 주고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아이들은 단어와 단어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문장과 문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반면, 우수한 아이들은 조리있게 언어를 정련하며 논리적으로 문단을 구분,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자연스럽게 작성하고, 맞춤법까지 틀리지 않습니다. 두뇌풀가동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보이는 것이죠. 종종 논술을 강조드리는 것은, 아이들의 고등사고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두뇌풀가동의 상태는 그 자체로 도파민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탐구하던 것에 각성과 흥분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문제를 풀고, 왜 틀렸는지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잘할지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두뇌풀가동 상태로 아이들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일상에서의 학습과 적용, 전환의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하지만, 이것이 아이들의 자발성만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빼어난 요리사가 훌륭한 요리를 먹는다면, 한 젓가락만 먹더라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며 갖가지 판단을 하게 되겠죠. 이런 것처럼 일상에서의 자극에 대해 충분히 의미있는 반응이 이루어지고, 그 사이 부모의 적절한 조력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하는 게임에, 아이가 보는 영상에 자꾸 말을 붙이고 관심을 기울이며, 아이가 학습하고 있는 컨텐츠를 어떻게 적용해볼까, 어떻게 전환해볼까 하는 노력을 함께 해야죠. 이런 노력에는 시간과 돈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은, 어차피 아이들의 공부 도파민을 발달시키지 않고서는 나중에 사교육비가 더 깨지게 됩니다. 이왕이면 아이들의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을 때 충분히 다져두어야죠.
자기주도학습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학습과정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공부의 양과 성적표의 결과 말고 공부하는 이 순간의 아이의 모습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의 책상, 아이의 학업경과를 꾸준히 지켜보며,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이 두뇌풀가동의 상태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문제풀이라는 활동과 정답을 맞추는 비율에 집중하기보다, 하나에 깊이 탐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부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3, 4시간이나 혼자서 문제풀이를 해야하는 '생각하는 황소'와 같은 공부를, 집에서 하지 말란 법 있나요?
<공부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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