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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9. 2020

메주 냄새 집간장

모든 간장요리에서 나는 시골의 맛

 이따금 내가, 음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면 우리 바깥양반은 잘 알아채지 못한다. 비위가 약하고 편식을 하는 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고 그것이 맛이 있으면 잘 먹어준다. 또 나처럼 바깥양반도 비염이 있는데, 싫어하는 음식은 아예 손을 대지 않기에 먹어봐야만 아는 그 음식의 향이 어떤지를 잘 모른다. 이를 테면 마라탕을 싫어하지만 그 특유의 향은 정작 잘 모른다. 맛과 향의 경험이 상당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 덕에, 바깥양반은 내가 만든 음식에서 나는 냄새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반대로 나는 비위가 강하고 실험정신이 넘치는 대다가 결정적으로 냄새를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레시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 멋대로 조리한다. 그래서 이상한 음식도 꽤 자주 나온다. 바깥양반은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지만. 그래서 내가 이상한 음식이나 마구 한다는 것은 아니고, 집간장. 집간장이 오늘의 고민이다.


 아버지가 안정적으로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아들 딸이 각자 앞가림을 할 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평생의 노동에서 해방되셨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엄마로서의 삶에서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원체 엄마도 독립된 인격체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 요상한 도전을 하기 시작하셨다. 어릴 때 딱 한번 메주 쑤기를 시도한 적 있었는데, 어디서 메주를 구해 오시더니 그걸로 간장을 띄우시질 않나, 고추장을 만드시질 않나. 시골 사람답게 “내 손으로” 가족들의 먹거리를 제조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손수 띄운 집간장을 냉장고에 두고 쓴다. 고추장은 두어번 하시더니 요즘은 하지 않는다. 고춧가루는 시골에서 빻아오신다. 직접 만든 집된장도 있긴 한데, 내가 찌개 말고는 된장을 쓰질 못하니 소비가 잘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집간장이라는 게, 엄청 짜고 게다가 메주 냄새가 꽤 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또 얼마나 대책이 없는 자인가. 마트에 늘어서 있는 양조간장 왜간장 진간장 국간장 맛간장 그 많은 간장들을 두고 엄마가 만든 집간장만 쓴다. 그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원체 요리를 제 멋대로 하는 데다 “근데 다들 이렇게 먹고 살았잖아.” 라는 판단이 미감보다 먼저 작동한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지. 생필품인 간장이 공산품으로 공급되면서 다양한 간장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고작 수십년의 변화상이지. 조상님들이 라떼 드실 적엔 천년은 족히 넘게 다들 집간장 하나로 사철 드셨을걸?


 물론, 미각적으론, 상당히 멍청한 판단이다. 3일간 친가-처가-우리집을 돌며 명절을 쇠고 드디어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셨는데 그 중에는 이번에도 “그냥 네가 해먹어라.”면서 주신 소고기도 끼어 있었다. 그냥 구워먹을 건 아니고 양념을 재워야 한다. 그걸 또 집 앞 슈퍼에 가면 1500원이면 양념장 팔지. 그러나 이틀을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와 빨래를 하고 짐을 풀자마자 양념장을 사 올 생각은 싹 달아났다. 대충 레시피를 검색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사과도 통으로 하나 갈고, 양파즙에 집간장, 올리브유, 허브솔트.


 그러니 당연히...메주향 솔솔 나는 불고기가 만들어지지. 태어나서 단 하루도 시골집에서 지내본 적이 없는 바깥양반은 청국장도 먹지 않기에 이 쿰쿰한 맛이 뭔지도 잘 모른다. 엄마가 직접 녹두를 갈아서 만든 녹두전 반죽을 받아서(물론 이번에도 “네가 부쳐먹어라.”) 빈대떡도 부치고 해서, 바깥양반은 별 의구심 없이 식사를 뇸뇸 맛있게 드셨다. 그러나 나는, 세상 진기한 메주향 쇠고기 요리를 먹으며 혼자 웃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평소에도, 각종 국물 요리에 집간장을 쓰는데(아니 다른 간장을 사다놓지도 않았으니까.) 사실 이게 좀 떫다. 미역국에는 반드시 간장이 들어가고, 그래서 반드시 미역국이 좀 떫다. 아니나 다를까 쿰쿰한 냄새는 여전하다. 오뎅국을 하면 간장을 조금 희석해서 찍어먹을 수 있게 하는데, 짜다. 볶음밥에 이따금 넣으면, 정말로 한두방울만 넣어야 한다. 진하디 진하게 검다.


 어리석은 듯하지만 생활의 편리를 스스로 기피하는 방식은 은근한 가취가 있다. 그냥 이대로 산다. 서너가지의 간장을 마트에서 사오는 사람은 그것이 그의 방식이요, 티티한 진한 집간장을 쓰는 것도 그저 나의 방식일 따름. 엄마는 엄마대로의 방식을 사는 것이고, 그걸 굳이 외면하는 편리도 순리는 아닐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나름의 삶. 저마다의 삶.


 이번 명절엔 들르지 않았지만 대전 시골집의 담벼락은 200 넘는 비바람을 맞다가 이제 형체없이 무너져내리는데  집을 지키는 다섯째큰집은 미련이 크지 않아 무너지면 무너지는대로 둔다. 아마도 나의 대에 시골집은 사라질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노년에 기거하시던 태안의 시골집은(태안 마애삼존불이 있는  밑자락에 있다) 버려진지 수년이 되었다. 엄마의 집간장을 묵지 않고 그나마 맑을  맛볼  있는 것도 고작 십수년이나 될까. 사라지는 것들을 아까워해야 하는 것은 사라진 다음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순간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하루 하루의 무너짐을 모두 지켜보는 감정과, 사라진 다음에야 아쉬워하는 감정은 다를 테니까.


 불고기도 미역국도 무국도 매운탕도 모조리 메주향으로 길들이고야 마는 집간장의 맛도 지금 마음껏 맛을 봐두지 않으면 나는 엄마가 늙어서 만든  맛으로 밖에 기억하지 못할지 모르지. 바깥양반과 길게 호주여행을 와서 시드니 공항에 앉아 정처없이 글을 쓴다. 돌아가서  끼니는 집된장이다. 감자와 조개를 넣고 팔팔 끓여  쓰고 떫은 시골맛을 견뎌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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