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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5. 2020

존버와 에스프레소 사이

참을 수 있는 사람, 낭비할 수 없는 사람

1.

 존버가 답이었다. 관계망으로보다는 글을 쓰는 목적으로 거의 SNS 플랫폼을 사용해 왔기에 나는 다른 브런치에 방문을 하는 일이 드물고, 그래서 나의 브런치를 방문하는 분들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싸이월드 때도 일촌파도타기가 아니라 게시판에 내 에세이 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니, 내가 암만 열심히 글을 쓴들 셀러브리티들과 출간작가들이 수두룩한 브런치에서 100명 구독자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관심과 소외감을 어깨에 하나씩...아니, 등 뒤로 하고 하루하루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완결하기 위해 글을 썼다.


 열심히 쓰기 시작한지 5,6개월쯤 되니 갈피가 잡혔다. 학습의 자발성은 브런치에 가입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의 주된 관심사의 하나였지만 그것을 다른 이들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영 풀리지 않았다. 엄마가 바쁜 삶에 하릴없이 나를 방목하시다가 나이를 드시고 영 빚기 귀찮아진 만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바깥양반과 호주 카페에 앉아서 마신 환상적인 커피 한잔을 마시고 든 고민을 하루 이틀 묵혀, 멜버른의 강가에서 폰으로 쓴 글이 실마리가 되었다. 120개의 글을 쓰는 동안 모인 구독자들과, 2개의 글로 모은 구독자의 수가 대략 대동소이하다. 그저 존버의 마음으로 하루 하루 글을 쓴 끝에 방향과 갈피가 툭 튀어나왔다. 의도한 바도 기대한 바도 아니고 그저 우연의 결과다. 그래서 교육 이야기를 나눌 여력이 조금 생겼고, 바깥양반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소재를 제공해준다.


 존버가, 답이었다.


+1.

 그 환상적인 커피의 정체는 Campos. 호주의 가장 유명한 커피 프랜차이즈라고 들었는데, 커피 맛이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잘 형성되어 있다. 산미, 너티함, 쓴맛, 바디감, 캐러멜과 플로럴까지 아로마조차 꽉 채워져있는 원두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원두부터 깠다. 호주에서 먹은 관습대로 오랜만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동해서 커피를 빠르게 추출했다.


 한동안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았다. 예가체프와 케냐 원두를 접하면서 드립으로 주로 마셨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니, 고압으로 쪼르르 밀려나오는 검은 원액이 탐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어렵게 인내심을 발휘해서 2초 남짓의 추출시간에서 머신을 정지시켰다. 조금만 길게 추출하면 쓴 맛이 난다. 호주에서 이미 원두의 풍성한 맛에 대해 글까지 썼고 그 글이 여러 독자들에게 읽힌 판에 내가 그 맛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원두를 사느라 쓴 돈, 그리고 고작 500그램의 원두로 추출할 수 있는 분량을 생각하면 예전의 나라면 분명 쓴맛 탁한맛이 올라올 때까지 커피머신이 진동하며 압을 뿜어내도록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맛은,


 역시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환상적이다. 아까워하지 않은 보답이 있다. 에스프레소를 먼저 한입, 그리고 물을 1:1로, 그리고 1:2로 조금씩 늘려가며 교무실에서 마시다가 교실에까지 가져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극히 짧은 시간에 커피의 정수만을 추출하고 불필요한 맛을 버린, 용기의 보답이다.


-1.

 그런데 오늘 점심식사를 한 뒤 아무렇게나 잠깐 들른 카페에서 나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름에 원두를 내세운 카페인데 퍽 쓰다. 기분좋게 쓴 맛이 아니라 단순히 이것은 오래 추출해서 나는 잡스러운 쓴맛이다. 원두를 아끼려고 오래 추출해서 양을 늘린 것이다.


 맛을 중시해야 하고, 충분히 추출시간을 줄임으로서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음을 카페 사장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도 이해하고 있는 문제이니까. 그러나 커피 추출시간을 늘리는 것은, 보통의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스타벅스 등의 거대기업의 공세 앞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돌파구 중 하나다. 먼저 생존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카페 문화는 커피의 질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인테리어와 입지,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생활수준 등이 고르게 평가된다. 애초에 기호품인 탓이다. 그러니까, 커피의 맛이 희생되고 훼손될 수 있는 여건이 일반적인 카페에 충분히 마련되어 있고 내가 느낀 쓴 맛은 그저...


 존버를 택할 수 없는 사람의 에스프레소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현실이라는 점이다.


=1.

 나는 존버했다. 6개월 간 120개가 넘는 글을 썼으니 한달에 얼추 20개의 글. 일기를 쓰듯 다양한 글을 쓴 셈이다. 그리고 완성되지 않을만한 글은 브런치에 쓰지 않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글은 기승전결이 대체로 갖추어져 있다. 존버의 요건 중 하나는 충분한 투자이고 존버의 댓가는 투자의 결과다. 그러므로, 글 두 편으로 얻어낸 성과는 6개월의 충분한 투자와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쓴맛이 나기 전에 추출을 멈춘 에스프레소처럼, 돈이 있어야 가능한 사치도 부렸다. 방학 동안에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가며 호주의 도시를 거닐며 커피를 마시고 아이디어를 추출해내, 거리에서 숙성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글을 완성시켰다. 커피를 교육에 비유한 아이디어나, 한가하게 만두나 빚고 그 건으로 글을 쓸 여유가 있는 것이나, 지금의 풍요가 지금의 글을 완성시키는 토대다. 물론 다른 여러 가치를 포기하고 대충대충 누리고 있는 사소한 사치지만.


 존버를 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러나, 존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경쾌하게 잘라낸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지만 쓴맛이 섞여들도록 방치하면서라도 버티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존버는 길수록 좋고 에스프레소 추출은 짧을수록 좋지만, 그 사이의 어느곳으로도 갈피가 잡아지지 않는 집과 길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지탱해야 하는 성격의 삶이든 사방이 막힌 혼자만의 것이든, 하루하루의 삶은 마찬가지로 고되다. 가르칠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도 더 더 배우고 공부해야 생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든 말이다.


 어떤 이에게 존버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꿈이다. 글밥을 먹고 사는 것은 나에게도 꿈이지만 나는 이미 나의 밥통을 차고 있다. 나에게 글은 취미로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다. 같은 시공간에, 글밥이 평생의 꿈인 이도 있다. 존버를 기회비용으로 치르고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일구는 이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아니, 대학생들이 알바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꿈을 포기한 노동은 얼마나 흔한가. 그들을 뒤로 하고 미련 없이 에스프레소 추출을 잘라내고 그 풍미를 만끽하는 나는 과연 내 몫의 사치를 정당히 누리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불안함 속에 거리를 누비고, 나는 문득 나의 정당한 글노동의 시간들에조차, 그리고 고작 한장의 커피에조차 떳떳할 수 있는지 반문해보았다. 답은 없고, 답이 없어서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깥양반은 여행을 마치고 원두를 세 봉투나 더 사오셨다. 나는 오늘 실직한 동료교사에게 저녁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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