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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2. 2020

개인미디어의 공공성

이 SNS가 누구 것으로 보이니?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병장을 달고 휴가를 나와 당시에 한창 주류의 플랫폼이던 블로그를 개설했다. 이따금 기회가 될 때 에세이를 한 두 개 올렸고 제대 뒤에는 친한 대학 선배와 동기 서너명이 드나드는 사적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내 셀카, 술 취하고 쓴 장난같은 글, 순전히 웃길 목적으로 올린 글 투성이였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뉴스를 링크해서 올린 포스팅이 어느 영향력 있는 유저 분의 추천을 처음 받았고, 뉴스 자체가 워낙 감동적인 내용이다보니 그게 사이트 메인에 가버렸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고 나서는, 내가 평소에 관심 있게 보아 온 이슈나 살아가는 문제에 관한 소소한 글들이 한번씩 메인에 올라가 수천명씩의 방문자가 생겨났다. 블로그를 SNS로 인지하지 못하던 시절인지라 내 셀카나 사생활도 넘쳐나던 블로그에 매일 천명씩 고정으로 방문자들이 생겨나니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사적 공간이 아니구나, 하는.

 

 그 뒤로 과거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블로그에 공적인 고민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그에 호응하고 공감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나의 시민으로서의 공적 역할이라고 받아들였다. 아직 한창 어린 나이의 고민들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일들로 블로그를 채우며 나 자신보다 타인과의 대화를 위해 글을 올렸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오늘, 브런치라는 공간은 나에게 여전히 공적인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이를테면 나는 수업에 대한 경험을 풀어보기 위해 꽤 열심히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호응이 너무 없어 지금은 보류하고 있다. 처음 브런치를 개설하고 계획한 글도, 가까운 친구들이 지금 학령기 자녀를 두고 있어 그들과 대화하면서 뭔가 돕고 싶다는 마음에 쓴 자녀교육에 대한 시리즈다. 그것은 갈피를 못잡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바깥양반과의 신혼일기는 부부간의 사생활만을 그리고 있는 대단히 사적인 글들인데, 이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유의미한 개별성이 발견됨으로써 공공성을 띠게 된 케이스다. 본래의 나의 목적은 공적이지 않았으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 글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좋은 일이다.


 개인미디어가 공공성을 갖추어나가는 과정에 관하여 나의 사례를 돌이켜보건데 그것은 글쓴이 개인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의 글에 대한 공공의 관심이 상호작용을 해온 결과물이다. 완벽한 사인도 공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발언하면 그의 발언은 곧 공적인 것이 되고, 공적인 책무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도 개인미디어를 얼마든지 사적인 것으로 써먹을 수 있다.


 오늘, 공적인 문제를 지극히 사적으로 대하는 기자를 한 사람 보았다. 보아하니 충분히 공적인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미디어를 활용하려던 것 같은데, 감정과 논리, 사견과 사실을 구분할 소양이 없는 개인의 미디어가 과연 공적인 것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별로 궁금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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