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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6. 2020

데이터 무제한 패러독스

풍요가 키우고 있는 비이성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고 서서히 잠에 젖어들무렵 폰이 울렸다. 호주 시간으로 자정이 넘있고 한국 시간으로도 밤 10시가 넘었는데 누굴까. 폰을 열어보니 데이터 로밍 안내 메세지였다. 13일 호주 여행 일정 동안 전화나 문자가 불통이 되는 해외유심 사용은 이번엔 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업무가 있어 해외로밍을 신청해 두었다. 30일 간 4기가의 데이터 플랜이었다. 여행이 3일 정도 남은 밤, 2기가의 데이터가 소진되었고 2기가를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바깥양반은 호주에 와서 1개월 64기가의 데이터플랜을 2만원 남짓한 가격에 구매해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비하여 4기사의 압박을 느끼며 와이파이를 쫓아다니고, 바깥양반의 폰의 데이터를 틈틈히 얻어서 쓰고 있다. 아이폰을 쓴지 8,9년이 되어가는데, 실로 오랜만에 겪는 데이터의 압박이었다. 

 

 그 압박을 견디며 거의 매일 글을 썼다. 다른 문화, 다른 세계를 겪으며 드는 생각을 하루하루 정리해 문헌으로 남겼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지런을 떨며 글을 쓴 덕에 최근에는 글의 완성도와 글쓰는 속도가 크게 좋아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폰으로도 쓰고 타블렛으로도 쓰고, 누워서도 쓰고 걸으면서도 썼다. 이를 테면 <제 멋대로 자란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는 멜버른 강가의 카페에서 맥주를 하나 놓고 폰으로 후다닥 쓴 글이다. 내가 그 글을 쓰는 내내 바깥양반은 이 화창한 날씨에 폰으로 글만 쓰고 있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데이터를 아껴도 앱이 사용하는 백그라운드 데이터라거나, 카톡의 데이터 소모량, 페이스북의 데이터 소모량이 과거에 비해 워낙 커져있어서 정말로 텍스트만으로 인터넷을 사용했는데도 열흘에 2기가나 사용한 것이다. 1개월 4기가짜리 데이터 플랜이었으므로, 내 호주여행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나는 지금 상당한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여기 이 브런치만 해도 사진을 먼저 원본으로 업로드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서버에서 저장, 다운로드 시에 제공하는 사진이 꽤나 고용량으로 생각된다. 글을 하나 올리고 사진을 몇장 넣으면 20Mb가 훅 하고 사라져버린다. 무시무시한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라이킷해준 다른 작가들의 브런치를 답방하고 라이킷을 몇번 누르고 온 것만으로도 100Mb 쯤은 소진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쓰면서 아무런 불편이나 압박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던 것에 비하면 제한된 데이터는 오랜만에 느끼는 새로운 체험이다. 그리고 기술의 혜택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 한달 500Mb로도 스마트폰 사용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의 무선인터넷 기술 수준에 발맞추어 모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도 저용량 사용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당장 카톡만 해도 당시는 사진을 압축해서 전송했다. 화질이 좋지 못했지만 그게 당연했다.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은 텍스트 중심으로 짜여져있었다. 인터넷 보급 초기처럼 가벼운 세상이었다. 


 3G에서 4G로 그리고 LTE로 데이터 기술이 발전되면서 무선데이터 사용은 크게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모든 어플리케이션과 온라인 사이트, 플랫폼들이 각양각색의 화려한 시각효과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선 동영상 자동재생과 미리보기를 하고 있다. 그냥 스크롤만 해서 창에 띄워두는 것만으로 제멋대로 데이터를 잡아먹는다. 데이터 무제한 시대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제한 데이터의 환경과 문화는 우리의 삶을 크게 발전시켰다. 당장, 홍콩의 민주화시위는 과거의 국지적 혁명운동과는 크게 다른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중국정부가 막아도 끝없이 영상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비록 국제사회의 제한된 역량으로 홍콩 민중의 희생을 막아내진 못했지만, 송환법을 폐기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홍콩 총선거에서 반중파가 압승하는 등의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궈냈다. 데이터통신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없었다면 홍콩도 80년의 광주처럼 되었을 것이란 말이 많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일까? 스마트폰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서 "1950년대 인간들은 트럭만한 전자계산기로 달에 로켓을 쏘아올렸는데 2010년대 인간들은 새나 날리고 있다."라는 우스개가 횡행했다. 이 말을 데이터통신 기술 버전으로 비틀어본다면, "1940년대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등에 지고 총알 사이를 뛰어다녔는데 2010년대 사람들은 무제한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기기로 남이 밥을 먹는 영상이나 보고 있다."라는 말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의미있게 쓰여지고 있을까? 하는 삐딱한 생각.


 물론, 나는 대중문화와 서브컬쳐의 폭넓은 발전이 사회 전반의 진보를 이끈다는 확신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틀기와 무관하게 데이터통신 발전이 만들어낸 신산업과 다양한 가치의 창출을 무척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먹방과 게임방송 등으로 누구나 "생업"이 가능한 세상은 실로 놀라운 역사의 진전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의 의식과 행위양식에서의 발전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역사의 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빚어낸 인간들은 중세시대의 야만에서 벗어난 눈부신 과학기술과 생활양식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전 지구를 살육의 장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데이터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한편으론 어두운 그림자를 여럿 드리우고 있다. 포르노산업이 대표적이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포르노배우들의 땀자국까지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실시간으로 모든 개인정보가 암호화되어 흐른다. 사생활은 적극적인 정체성형성의 도구로 SNS에 축적되고 있다. 결정저긍로, 텍스트가 아닌 시각화된 정보가 커뮤니케이션의 주류가 되고 있다. 문자 해독보다 이미지 해독이 우선되는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너무나 많다. 인스타그램이 대표적이다. 셀카는 필터링 기술을 정교화했다. 이미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는 페이크뉴스라는 뉴트렌드를 파생시켰다. 이쯤되면, 정말로 1940년대의 데이터기술이 갖는 의미와 2010년대의 데이터기술이 갖는 의미가 정말로 판이하게 다르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현대인은 갈수록 많은 물질적 풍요를 강제받고 있다. PC가 필수였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과 무제한 데이터가 필수가 되고 있다. 가정마다 와이파이가 필수였는데 이젠 무제한데이터가 기본이다. 무제한 데이터라는 풍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새로운 사회부조리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잘 드러내는 사례일 수도 있겠고, 반대로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는 방법의 비이성을 고스란히 밝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답이 쉽사리 가려지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통제와 절제 없는 기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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