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묵은깍두기조림을 먹다니

가봤도다 골목식당 백반집

by 공존
보통은 글이 우선이라 사진을 글 위에 올리지 않는 편.

바깥양반도 나도 집밥을 좋아한다. 바깥양반은 외출을 너무 좋아하는 것일뿐, 외출을 했더라도 저녁은 집에서 차려먹자고 하면 대체로 동의한다. 굳이 외출까지 한 마당에 집에 와서 저녁을 차려먹다니, 되게 알뜰하거나 성실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아직 신혼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인 탓이다. 신혼 극 초반보단 덜하지만 처가에서나 우리집에서나 만만치않게 식재료가 집으로 들어온다. 내가 이틀 전 손질했던 고등어들처럼.


별로 상관은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집은 대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집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절까지 집에서 소를 키웠고 나무를 하고 꼴을 베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성한 삼림을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산에 올라 장작을 해 왔어야 하니까. 그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밥상에서, 특히 사촌형님들께, 각별하게 교육을 받았다. “밥풀 하나만 남겨도 우리 할아버지 살아계셨그면 양~ 밥상 뒤집어지는 거지.”


그러니, 상 위의 음식도 냉장고의 음식도 허투루 대하질 못하는게다. 농사짓던 집안이니 밥풀이

밥풀로 보이질 않고 잔반이 잔반으로 보이질 않는다. 찌개를 끓였으면 먹어치워야. 고기를 구웠으면 모두 먹어야. 내가 살이 더 찌더라도 엄마가 보낸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 차려먹어야 한다. 푸지게 푸지게. 물론 주부마다의 그런 사정을 누구나 갖고 있겠지만서도.

그러고 나서 이제, 반찬 이야기를 하려니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모두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시니 당연히 나물이며 밑반찬을 두루 먹으며 자랐다. 어린 나이에 나물 맛을 알 턱이 있나. 시골집에 며칠 자러 갔는데 반찬이 달랑 고구마줄기를 된장에 무친 거 하나였다. 원래 그렇게 간소하게 먹던 집안이라서 처음 시집 와서 엄마가 조금 놀랐다고 한다. 된장찌개에 쌈채소에 된장 하나 두고 빙 둘러앉아서 밥을 삼켜야 했으니. 항상 넉넉하게 차려드시던 엄마가 어렵게 밥술을 뜨는 것을 보고 엄마를 잘 챙기던 넷째 큰어머니께서 다독여주기도 하셨다고. 나도 시골집에서 고구마줄기 나물을 보고 처음엔 놀랐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뛰어다닌 시장기 덕에 누나와 함께 밥공기를 씩씩하게 싹싹 비웠다.


살림이 어렵던 시절에 우리 집안의 전통과 엄마의 음식 솜씨로 만들어진 내 입맛은 퍽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누나는 입이 짧아서 나만큼 밥상에 착착 앉지는 않았지만, 나는 있으면 있는대로 차려먹고 없으면 없는대로 뭐든지 먹었다. 살림이 어려우니, 아버지의 입맛은 어린시절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드시던대로 된장찌개 하나 두고 밥을 비우는 걸 요즘도 하신다. 그 이상은 뭘 차려드려도 드시지 않는다. 그 탓에 결혼하기 전에도 밑반찬을 먹어 없애는 게 내 일이었다.


그건 그마나 집 사정이 나아졌을 때의 일이고, 정말로 집이 어렵던 시절에는 정말로 찌개 하나에 김치로 밥을 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내가 아무리 집밥을 열심히 먹어도 우리가 모두 풀떼기만 찾지는 않았으니 결국 김치는 해마다 일정량이 남았다. 그리고 힘겨운 살림에 있는 김치를 버릴 수도 없고 굳이 장을 봐 와서 상을 차릴 일도 아니니 엄마는 김치를 갖고 여러가지 음식을 차리셨다. 묵은지를 헹궈서 푹 삶아내거나, 거기에 멸치를 넣어 국물을 내거나, 총각김치로 찌개를 끓이거나, 된장찌개에 쉰 깍두기를 넣거나 말이다.


나는 그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서 국물만 후룩후룩 먹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꽤 애를 써서 엄마의 요리를 아버지처럼 즐기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된장찌개 속에서 총각김치를 탁 집어, 반쯤 익은 알타리무를 아작. 생전 처음 맛보는 생경한 식감에, 된장에 녹아든 김치의 시큼함도 영 어색했지만 이것이 내 밥상이고 엄마의 요리다. 아작아작 하나라도 더 집어먹기 위해 애썼다. 물론, 멸치볶음 하나만 있어도 밥공기를 세개씩 비우던 나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힘들던 시절을 같이 버텼다.


공릉동에 있는 백반집 경복식당이 <골목식당>에 출연해 근래 보기 드문 훈훈함을 보여주어 바깥양반과 들렀다. 6천원 백반 두개에 2천원짜리 제육도 두개 시켰다. 총합이 16,000원. 제육과 고등어조림을 맛보고 그 맛도 맛이지만 요리의 관점에서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 나는 볶음이든 조림이든 국물이 생기는 걸 싫어해서 자작해지도록 만드는 편이다. 그런데 경복식당의 제육과 꽁치조림은, 국물이 충분히 우러나왔으면서 맛이 부드럽고 시원하다. 내 식견이 좁았다. 양배추와 무에서 즙이 충분히 우러나와 국물이 흥건하니 밥이 잘로 넘어갔다. 앞으론 이런 모습을 배워야겠다.

쇠고기미역국도 정말로 집에서 만든듯한 오래 끓인 맛. 화려하지 않은 다른 반찬들도 모두 성실하게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놀란 것은, 바로 저 왼쪽 반찬들 중 네번째, 묵은지조림. 세상에. 내가 묵은지조림을 다시 맛보게 될 줄이야.


묵은 깍두기를 된장과 멸치로 낸 국물에 적당히 익혀서 절반만 익은 식감도 그대로에, 그 시큼한 맛이 된장과 어우러져 한 입 딱 먹는 순간 군침이 확 돈다. 바깥양반은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고도 젓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연신 묵은깍두기를 낼름낼름 먹으며 입안에 퍼지는 그 옛 입맛에 추억에 흠뻑 빠져든다.


세상에. 다시 이걸 먹어볼 줄이야.


사장님께 웃으며 이야기하니 다들 좋아하는 메뉴라며 나랑 같은 반응이란다. 국물까지 한 숟갈 떠먹어본다. 짭쪼름함과 신맛이 동시에 밥을 부른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어릴때처럼 밥을 더 먹진 못하지만, 흐뭇하게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는다. 엄마가 만든 깍두기찌개, 총각김치찌개.


가게가 워낙 작고 반찬을 하나하나 맛보다보니 손님들이 오래 눌러앉지 않음에도 식사시간이 길고 테이블 회전이 더디다. 한참을 걸려서 식사를 했고, 그러나 16,000원을 위해 두시간 가까이 기다린 그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다. 그 맛. 힘든 시절을 관통했던 그 입맛. 아니 뭐 또, 하는 집이야 또 있겠지. 묵은지로 찌개 만드는 거야 전국 공통 레시피일 테니까. 다만, 그날의 식사는 정말로 집밥 같았던 한상차림에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서울바닥에서 맛보기 힘든 옛날 반찬을 맛봐서 정말로 놀랍고도 즐거웠다.


집에서 저걸 만들었다간...바깥양반은 손도 대지 않고 내가 혼자 먹어야하겠지. 아니 그것까진 괜찮아도 막상 엄마가 한 게 아니라 내가 한 것이니 맛의 문제도 아니다. 엄마가 다시 깍두기나 총각김치로 찌개를 끓일 일도 없을 것 같긴 하다. 힘든 시절의 기억이니까. 그러니, 생각나면 한번 또 가볼까싶다. 줄을 서서 꽤 기다리긴 하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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