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300명이라는 이정표에 대해
어릴 때의 나는 내성적이고 겁이 많아서, 하고픈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잘 꺼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대개 머릿속으로 그 일을 되새기고 되삼키면서 하루 이틀 그 상황을 돌이켜 상대방에게 항변하는 상상을 했다. 특히 누나와 다투거나 엄마에게 혼이 나거나 하면 그랬다. 철 없을 때였으니 내가 잘못을 한 경우들이 많았을 터다. 그러나 내 잘못을 알아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집안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입장이니 누나와 엄마처럼 마음껏 하고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투었든 혼이 났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그렇게 삭였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말 수가 적었다. 아기 때 워낙 울지 않아서 엄마나 아빠는 얘가 숨은 쉬나 한번씩 살필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말을 더듬었다. 초등학교 2,3학년을 지나서야 조금 또박 또박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의 어린 시절을 종합해 보자면 상당히 덜 떨어진 아이로 보기에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 말 수는 적지. 입을 연다고 수가 안나오는 것이 말을 더듬지. 그러다 보니 혼이 나거나 누나랑 싸우거나 할 때는, 한 두 마디 말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더듬다가 입을 다물어버리고는, 하루 이틀 혼자서 꿍 하니 심통 부리는 티 나지.
그런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이불킥을 종종 한다. 부끄럽고 민망하다. 자다가 벌떡벌떡 잘못한 게 떠오르면 괴로워서 견디기가 어렵다. 특히 교사 2년차 때 그랬는데, 1년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수업을 발전시켜 나가면서는, 전년도에 제대로 수업을 못했던 것이 몸서리치게 창피했다. 그런 괴로움을 어디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오며 가며 되새기다가 차츰 차츰 수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난 여전히 내 수업이 부끄럽고 조바하다. 교사로서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오래 고민한다. 입 밖으로 내기 전에 이미 열이틀은 묵히고 고민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모난 돌은 실제로 돌을 맞는다. 남들과 다른 나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선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보통, 잠자코 충분히 생각을 곱씹어본 다음에 글로 옮긴다. 많이 다툴 때도 있지만, 나는 그때에는 이미 머릿속으로 수차례나 말다툼을 마치고 난 뒤라서 잘 물러서진 않게 된다. 이를 테면 지금도 2016 강남역 살인사건 문제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진 하키 남북 단일팀 논쟁, 수능과 학종의 문제에 대해서 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시켜보고 고민하며 혼자 논쟁을 거친 뒤에 말을 꺼낸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비결인, 다상량은 나의 겁 많고 말을 더듬던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집은 서점이었다. 12살에 부모님의 서점 경영이 어려워지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늘 "책을 끼고" 살았다. 대전에서 도매서점을 하던 집이라 서점이라기보단 창고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나는 책 더미 위에서 놀았다. 정말로 그랬다. 어른 머리 높이까지 쌓여있는 책을, 여섯살 짜리가 어떻게 어떻게 다른 책을 밟고 올라갔다. 그냥 숨을 쉬듯 책을 읽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쯤이었나보다. 당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논리야 놀자> 3권을 부모님이 집에 가져다 놓으셨는데, 하루만에 다 읽었다. 그런 일이 노상이었다. 부모님은 게임기 같은 건 사주지 않으셨고 대신에 책은 마음껏 읽도록 하셨고, 나중에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도 그러셨다. 하기사 책만큼 경제적인 취미가 어딨을까.
활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뭔가를 읽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운전할 때도 무조건 말이 귀에 걸려야 한다.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음악은 틀지 않고 팟캐스트나 내내 틀어대니 바깥양반이 곤욕을 치르곤 한다.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팟캐스트를 틀어둔다. 바깥양반은 밥 먹을 때조차 내 덕에 괴롭다. 학교에서도 교실을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반드시 폰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나를 보고 "뭘 그리 보냐."는 말을 자주 한다. 뭘 하긴. 그냥 게시판 유머글 봅니다. 아이들은 내가 야동을 보는 줄 알고 수근대는 모양이다.
글쓰기의 두번째 비결 다독이라고 하면 다독이지만 그렇다고 이 다독의 습관이 아직 학문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구파가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는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내가 갖고 있는 탓이다. 고3 올라갈 무렵 때까지 만화가가 꿈이었다. 그리고 용케 대학을 갔으니 대학에 가선 신나게 놀았다. 공부머리가 아닌 탓이다. 엉뚱한 책만 읽어대다가 나중에 교사가 되는 과정에선 좀 어려움을 겪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도,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열심히 학교 일이나 하고 살았다. 학교 일이라고 하면, 좀 어깨 으쓱할 정도로 잘 한 편이지만. 그러니까 나는 아직 공부로는 거리가 멀고. 어쨌든, 많이 읽긴 했다. 내가 읽고 싶은 대로.
마지막 세번째는 다작일 텐데 그것은 어느날 불현듯 내게 찾아왔다. 늘상 그렇듯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한창 싸이월드에 빠져서 열심히 도토리를 주고받을 때 그걸 멀뚱히 지켜보다가 1년 정도 늦게 싸이월드에 가입했다. 그리고 바쁘게 대학 생활을 하다가, 어느 2월의 눈 오는 자정을 넘긴 밤에, 학교에서 걸어서 집으로 걸어가다가 1시간의 그 감흥을 싸이월드에 적었다. 이미 글쓰는 재주는 퍽 있어서, 과제로든 동아리활동으로든 글은 제법 쓴 편이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목소리를 글로 옮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다른 무엇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나 자신을 드러내는 나의 글. 나의 목소리. 그 후로 줄곧 싸이월드에, 그리고 블로그로 옮겨서 20대의 여러 날들의 고민을 하나 하나 적어내려갔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얼마 전에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다 모아보니 A4로 300페이지가 나왔다. 치기 어리고 풋내 나는 당시의 글들을 지금 보면 여러 감정이 드는데, 누구에게 보여줄 수준들은 되지 않으니 나중에 자식이 어른이 되면 면 한권 책으로 엮어서 보라고 줄 생각이다. 그 전에 보여줬다간 뭐,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상당히 흔들릴지 모르겠고.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글쓰기의 비결인 다작과 다독, 다상량을 평생 했다. 그리고 서른 여덟이 되고 나서는 내가 20대에 겪었던 고민인 전문성이 채워져간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 심도있는 논의가 가능하고, 일반인 남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가정적이다. 이 "가정적이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한가지 재미난 사연이 있어서 잠깐 언급을 하자면, 스무살 때였던가. "가정적이다"라는 개념을 접하고서 나는 그것이 그저, 집에 붙어있길 좋아하고 집안일을 거들길 잘한다는 소리인 줄로나 알았다. 스무살 어린 아이가 뭘 알까. 그래서 하루는 과 술자리에서 여자 동기와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가 별 생각 없이 "나는 가정적이라서..."라는 말을 꺼냈다가 친구가 픽 웃으며 핀잔을 준 일이 있다. "너는 뭔 셀프 칭찬을 하니?"라는.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정적이라는 것은 그냥 나의 성격 중 하나다. 잘난 것도 칭찬을 받을 일도 아니다. 다만 다른 이들이 즐겁게 읽는 모양이라 그것은 재미나다고 생각하고 있다.
브런치에는 이런 나의 자유분방한 성품을 담아낸 글도 있고, 보기 드물게 가정적인 중년 남성의 살림살이에 대한 글도 있다. 진보적인 시민으로서의 문제의식을 담아낸 글도, 수업과 학생 인권 그리고 교육 민주주의 등 교사로서의 다양한 고민을 담은 글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다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지지 않은, 나 자신을 위한 나의 글들이었다. 사실 나는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 관심이 없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관한 글. 날 스스로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글이었다. 나를 채우고 있는 이런 다양한 정체성과 글들을 어느날 대면하고 닉네임을 "공존"이라고 지었는데, 사회문제로 격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닉네임은 공존인데 타인과의 공존을 모르시네요." 소리를 몇번 들었다. 아뇨. 남들과의 공존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 마지막으로, 글쓰는 이로서는 깐깐하고 완고하다. 완결된 글이 아니면 함부로 글을 쓰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어느 정도 구상을 마치고 한번에 후루룩 쓰는 편이지만 그 글들은 문단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하나의 글은 서론과 본론 결론까지 반드시 그 글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낸 뒤에 마침표가 찍혀야 한다. 그를 통해 개개가 하나의 "글"의 단위로서 완결되어야 하고 그런 고집은 날 적지 않게 괴롭힌다. 글을 쓰기 위해서 투여해야 하는 노력이 적지 않아서, 만약에 몸을 세개 쯤으로 나눈다면 하나는 반드시 글쓰기 전용으로 제작을 하고 싶을 정도.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어렵다. 그나마 신혼일기를 쓸 때나 좀 마음이 편하다.
구독자가 300명이 되었다. 대개는 밥짓는 이야기를 보고 찾아주신 분들일 터이고, 어느 정도는 교육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주신 분들일 것이다. 이따금, 다른 다양한 글들에 대해서 공감해주시는 분들일 테다. 감사한 일. 기념할 일. 좋은 일이니, 이쯤에서 하나 이정표를 남겨둔다. 나는 읽어왔노라, 혼자서 싸웠노라, 글쓰기라는 싸움에서 하루하루 이겨냈노라. 부끄러움 가득한 삶을 이겨내고 그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들이 나에게 오늘 300의 보석이 되었다. 감사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