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미담, or 오가는 덕담

오예 오예 도심소요다

by 공존

토요일의 햇살은 어김없이 총총했고, 바깥양반은 재택근무의 피로함을 달래러 나를 재우쳐 근교로 향했다. 강이 흐르고, 카페가 늘어서 있고, 그러나 길은 막히는. 코로나 덕분에 다들 집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주말의 곳곳은 붐비고 막힌다. 고작 집에서 한시간 거리의 강변 카페거리도 그랬다. 막힌다. 막혀. 아아 갑갑해. 아오 왜 이리 막히냐. 하고, 짜증이 나서 그만,


앞 차가 휭 달리다가 멈췄을 때 엑셀을 휭 밟고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니까 그것은...막히는 길에서 한 30분이나 거북이 걸음마를 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었다니까. 왜 내가- 이 주말에- 굳이 이 막히는 길로 들어와서는. 말이야.


그래서 끼기긱-하고, 앞차 바로 코 앞에서 멈추고 나서 1초나 지났을까. "퉁" 하고, 그만, 뒷차가 내 차를 받았다. 이런이런. 상대방 100프로 과실이다. 충격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충돌에 피식 웃으며 바깥양반을 달랬다.


"아 미친!"

"야야...침착해. 멀쩡하잖아. 기다려봐."


차에서 내려 차 트렁크 문을 확인했다. 역시나, 멀쩡하다. 그런데 나와 추돌한 뒷차의 차주님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명함을 건네며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꼭 연락 주세요.”

"아? 아아 네. 아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뭐...멀쩡하니까 걱정 마세요."

"아 그래도 꼭 연락 주십시오."


나보다 여덟살 쯤 많아보이는 차주님이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는 황망하여 얼른 차에 타시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차를 달렸다. 우리 덕에 안그래도 체증인 길이 더 막히니까. 한 10분쯤을 더 막히는 길을 타고 달리고 달리고 나서 카페에 도착했다. 바깥양반은 먼저 내리라고 하고 나는 차에 남아 명함에 남은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사고 차주입니다~ 아까 많이 놀라셨겠어요. 걱정 마시고 남은 주말 잘 보내셔요ㅎㅎ 뒷문 조금 휜 거랑 남바 등? 하나정도 말곤 뭐 나올 것이 없네요. 그보단 선생님 차량에 흔적이 눈에 확 들어와 걱정입니다. 그럼 또 연락 드릴게요-"


차에서 내려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있는데,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답문이 왔다.


"네 알겠습니다. 귀한 주말 망쳐드린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바깥양반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라 바로 답문을 보내고 있지 못했는데, 또 한 20분 지나니 한통 문자가 더 왔다.


"깜빡 잊었습니다. 차량번호 알려주십시오 보험회사 등록해두겠습니다."


어라...이런 경우가 있나? 좋은 분을 만난 기분이다. 짧은 내 운전 경력에 이렇게 배려심 있는 분들 다 만나보네. 나는 토도독 답문을 보냈다.


"네 제 차량번호는 00 가 0000입니다. 푹 쉬셔요-."


그 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30분도 안되어 문자 여러통, 그리고 보험상담원의 전화가 와서 사고 경위를 확인하고 보험처리에 대한 안내를 했다. 나는 일요일에 고등어를 가지러! 집에 다녀오느라 차를 정비회사에 입고하지 못했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서 교무실에서 바삐 이리저리 밀린 일을 처리하려니 또 문자가 도착했다. 그 차주님이다.


"혹시나 싶어 문자 드립니다. 당장은 몰라도 시간이 지났는데 두분 몸아픈데는 없는지 궁금하네요. 보험회사 연락이 가지 않았나요?"


어랏. 정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네. 워낙 가벼운 추돌이었던 데다가 나나 바깥양반이나 굳이 실비보험 얼마 타먹겠다고 병원에 가는 수고를 할 성미들이 아닌지라. 드러누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답문을 보냈다.


"아뇨 대인은 전혀 염려 마셔요ㅎㅎ 일부러 문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토요일은 늦었고 어젠 일요일이고 해서 부모님을 좀 뵙고 오느라 입고를 못했습니다. 오늘 퇴근길에 입고하려구요. 보험 문자도 잘 받았습니다. 빠르게 처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좋은 분을 만났다. 사고 당시도 차에서 내려 트렁크문을 훓어보는 내게 먼저 허리를 숙이며 명함을 내민 분이라, 공연히 보험처리로 고민을 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던 내 문자에 차주님이 답했다.


"네 아무쪼록 죄송합니다. 행복한 일만 있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좋은 한주 되셔요!"


(아아니 인사 안하셔도 되는데...)


나도 답문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 일사천리로 보험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제휴된 공업사와 연결해주었고, 공업사에서는 차를 픽업해갔다. 내가 낸 사고였으면 정비할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의 문제인데 차를 끌고가서 풀정비를 해주다니. 렌트는 하지 않았다. 월요일 빼곤 재택근무였다. 그리고 목요일에 차가 나왔다. 조금 밀려 들어간 부분을 펴고 도색하는 비용이 100만원 가량 나왔다.


사고 당시 내 차보다 상대 차주님의 차량이 더 많이 긁혔었고 사실 정비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고인데 너무 배려심 있는 태도를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까, 내게 과분한 일을 겪었다. 마침 다음날 정비기간 동안의 교통비가 보험사에서 입금이 되었다.


당하고만 살 순 없지. 2만원 가량 기프티콘을 구매해 문자를 썼다.


“선생님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에 어제 차를 잘 수령했습니다. 선생님 차도 잘 정비되었길 바라면서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렌트차 사용을 하지 않아 보험사에서 교통비가 조금 나왔으니 이정도 기프티콘이 과하진 않을듯합니다) 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감사의 마음으로 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셔요!”


약간 고민을 하며 문자를 보내고 나니 뿌듯했다. 미담으로 남겨도 될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다. 렌트비로 공돈이 생겼으니 이 정도 인사는 드려야지.


이렇게 이야기가 끝날까 싶었는데, 답문이 왔다.


“많이 놀랐습니다. 너무 마음이 깊으십니다.주신거니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저도 잘모르지만 모바일 상품권 보내드립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앗. 이건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내가 보낸 상품권보다 만원이나 비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저녁에 바깥양반에게 보여주니 바깥양반은 “둘이 버디무비 찍어?” 라며 피식 웃다가도, 전체 대화를 꽤 진지하게 읽어보곤 좋은 일 했다고 말한다.


그래애-. 무슨 버디무비에서나 나올법한 일이고 나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후의와 호의의 교차에 놀라고 뿌듯했다. 세상에 이런분도 있구나. 이런 기분 좋은 순간도 오가는구나.


운전경력이 조금 늘면서 사고를 내기보단 당하는 축이 되었다. 마지막 세번의 사고가 모두 내가 당한 케이스다. 재밌는 건 심지어 두번째 사고는 나이드신 어르신이라 사고 인지를 못하고 가버린 반뺑소니 사태였다. 그 앞 사고는 공업사에 차를 맡겼는데, 잠깐 정비사분께서 차를 골목에 빼놨더니 그걸 와서 받았다. 불법주차된 차였기 때문에 상대방이 굉장히 불쾌해했다. 정비사분이 난감해해서 그날의 사고는 보험사의 몇가지 요청을 따랐다. 얼굴을 붉힐만한, 경우의 수를 따지자면 보다 흔한 그런 일들.


그래서 이 글은 고이 묵혀뒀다가 자식이 스무살 때쯤 되면 꼭 보여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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