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시골길의 비릿함마저, 이 재첩국이라면

마침 지금이 재첩국 먹을 시기

by 공존

"야 아들 먹고 국물만 줘."

"...알았어."


재첩국 사발을, 엄마가 우르르 내 것에 붓더니 빈 것을 내미신다. 재첩 그거 뭐 얼마나 귀한 음식일라구, 생각은 하지만 다 큰 자식에게 엄마 노릇하고 싶어하시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나는 무거워진 내 사발을 조심히 들어서 엄마에게 붓는다.


"어 열한명이네? 외숙모, 며느리는?"

"아 와이프 주말엔 늦잠 자요. 재첩국 나중에 또 내려와서 먹이죠 뭐."

"아 그래그래 얼른 먹자. 야 여기 좋네. 좋다 고모."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맞은편 자리에 앉으시며, 우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고종사촌 누님이 묻는 말에 내가 받았다. 아내는 아직 자는 시간, 그리고 나는 기분 좋게 새벽 빗소리를 즐기며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버지의 전화에 불려나왔다. 여기는 하동. 재첩국으로 유명하다는 식당.


지난주에 아버지가 전화를 하시더니, 고종사촌 누님들이, 나와는 4촌지간이지만 그 댁의 막내 누나가 환갑이 정말 코앞인데, 자매들끼리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모은 돈으로 하동에 놀러간다고 하며 나에게 넌지시 동행 의사를 물어보신다. 이게 무슨 꼬이고 꼬인 상황인가 싶지만 막내 누나의 남편, 우리 아버지 그리고 당백부님과 셋이 아주 흉금을 털어놓는 술친구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 길이 막히자 그 돈으로 국내 여행 어딜 갈까 물색을 한 모양이고, 당백부님이 계신 하동을 거쳐 통영의 소매물도를 가기로 하였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와는 고종사촌인 자매 셋이, 그들의 막내 외삼촌댁인 우리 부모님과 함께, 작은 할아버지네 당백부, 백모님과 아예 모임을 잡아버린 것이고, 아버지는 이왕이면 내 차로 편히 가고 싶으신 것이겠지.


나는 아내에게 이내 전화를 걸었다.


"이러저러해서, 하동에 같이 갈라냐시는데?"

"하동? 날씨 안좋을 텐데 다음주에."

"아니 뭐...날씨...그래도, 모시고 우리도 가면 좋잖아. 저녁부턴 따로 움직이면서 놀 수 있을듯."

"응 그래 가자."


그래서 우리 부부까지 가게 되었다. 피붙이와 생면부지들이 뒤섞인 기묘한 열두명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형제간에도 수가 틀어져서 사촌들간에 얼굴도 못보고 수십년을 보내는 수가 다반사. 그러나 대전 시골에서 똘똘 뭉쳐살던 우리 친가는 논밭이 모두 잡초밭으로 변하고 땅이 이리저리 찢겨 팔려가는 가운데에도 끈끈한 우애를 지켜냈다. 아버지 바로 위의 큰아버지께서 그 악명높은 그라목손으로 절명하시는 비극도 있을만큼 농촌의 현대사는 잔혹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뿔뿔이 흩어지며 노동자로 살아온 다른 형제들의 처지도 고만고만했다. 그럼에도 올망졸망한 이 재첩국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을 포기하지들은 않으셨다. 나는 그 우애를 경외했고, 서울처녀인 우리 아내는 완전히 별세계인 우리집안의 떠들썩한 모임마다 잔뜩 낯을 가리면서도 적응해오고 있다.


재첩국이라, 정말로 올망졸망한 것이 딱 시골사람들 같다. 그런데 정말 맛이 유별하다. 하동에 서너번 내려와봤지만 제대로 하는 집을 여지껏 만나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오늘이 딱 그 제철이어서 그런 것인지 짭조름한 진한 풍미가 온 몸에 찌르르 번진다.


"서울사람들은 안먹지? 지금이 제철이야."

"아 진짜 맛있는데요?"

"야 이건 박대야. 담백하니 맛나지."

"아 박대는 알지, 그때 현숙 아줌마네 가서 말리는 거 도와드렸잖아."


당백모 아주머니의 말에 답하는데 엄마가 또 박대를 찢으시며 말한다. 서울사람들은 잘 모르는 향토음식이다. 태안 가면 눈 쪽을 꿰어서 두마리씩 주렁주렁 널어 말린다. 충청도에선 박대, 전라도에선 서대. 짜지 않고 담백하니 맛있으면서도, 건조 과정에서 생긴 독특한 풍미가 밥도둑이다. 살이 적고 말린 것을 불려서 튀겨 먹는 등으로 조리법도 딱하기에 쭈꾸미와는 달리 향토음식 처지를 못벗어나고 있는듯하지만, 시원한 제첩국으로 차려낸 한상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다른 찬거리들도 소란스럽지 않으며 두루 깔끔하니 맛이 난다. 이 무엇이든 거두어 들이는 시원한 국물.


아침부터 쏟아져내리는 시원한 빗발이 코를 살살 간질이던 참이다. 비는 자고로 시골에서 맞는 게 최상이다. 우산을 들고 홀홀 하동 읍내를 걸어 홀로 식당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왜 비를 맞고 오냐고 아우성을 치시지만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단조로운 빗소리와는 달리, 시골엔 시장 아케이드의 얇은 플라스틱 지붕에 튕기는 어지러운 빗소리가 있고, 낮은 가로수 잎새를 두들기는 온기도 있다. 흙내음이 비를 타고 내 몸을 적신다. 이 비릿한 냄새를 머금고, 지금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재첩국물.


엄마가 제 멋대로 내 사발에 고춧가루를 탁 푼다. 심심하신가보다. 나는 군소리 없이 재첩을 가득 퍼서 머금는다. 하나하나 건져서 하나 하나 손으로 까는 노동이 만만치 않은데 재첩을 찾는 사람도 늘었고, 국으로나 먹던 음식이 상품이 되다보니 무침에 회까지. 씨알이 굵은 놈을 맛보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지 싶으면서도, 뽀얀 국물에 알알이 박힌 고운 고춧가루와 함께 부모님이 살아오신 고난이 새삼하다. 세상은 바뀌고, 알알이 강변 모래사장에 박혀살던 형제들이 우왕좌왕하는 처지로구나. 흙에서 건져져 국으로. 그리고 흙으로부터 자라난 우리 가족이 함께 한 상에.


요즘 세상에 부모님을 모시고 친지모임에 오는 게 워낙 드문 일이니 하동에 와 있는 내내, 멀기만 했던 친지들은 연신 나와 아내의 효심을 칭찬했다. 그리고 단 둘이 있는 시간마다 우리는 내내 가족 이야기를 했다.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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