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선물, 요리
"내일은 수제비를 해야지." 콩을 갈며 창밖을 보았다. 태풍이 남도 앞바다에서 소멸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마. 밤새 새차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창문을 타닥타닥 두들기는 소리는 수제비에서 모락모락한 올라오는 뜨끈한 김을 떠올리게 했다. 300 밀리리터 남짓 되는 작은 용량의 믹서에 콩을 붓고 갈고 떠내고, 또 붓고 갈고 떠내다가, 전기모터의 매캐한 내음에 잠시 쉬다가 다시 붓고 갈고 떠내는 지루한 시간이 장마비 덕분에 떠오른 수제비로 인하여 흥미진진해졌다.
이 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혼 초에 엄마가 대뜸 패트병 하나 가득 안긴 노란 콩이다. "불려서 갈아 비지를 만들어 먹거라." 엄마는 말했는데 2년 가까이 되는 결혼생활에 콩을 가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 그 사이 군데군데 썩은 콩이 생겨나 전날 밤에 물에 불리면서 한번 골라내고, 아침에 콩을 갈기 전에 또 한 번 골라냈다. 그러고도 넉넉히 한 냄비 가득 콩국물을 빼내지 않은 콩비지가 나왔다. 이것을 이제, 통째로 냄비에 넣고 끓여낼 터다.
연인을 곁에 두고 외간 남녀를 홀짝이는 사람처럼 김치를 쫑쫑 썰며 나는 여전히 수제비를 생각한다. 반죽이 문제다. 밀가루를 치대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재미는 없는 작업이다. 해봐야 늘 테지만 밀가루반죽을 할 일이 도통 없다. 아이가 생겨야 하나.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한지 고작 2년이라 그런가. 아니면, 엄마 세대처럼 정권에서 밀가루를 먹으라 선전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칼국수, 만두피, 수제비 등. 비가 오면 생각나는 몰캉하고 쫀득하고 부드러운 밀가루반죽이 내겐 아직 어렵고 낯설다. 이것이 익숙해질 날이 오려나 싶다.(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서 오늘 아침 나는 수제비를 만들었고, 수제비가락을 사기 위해 두 곳의 동네 마트를 들르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프까지 포함된 완제품들 밖에 없는 것에 실망하여, 집에 와서 반죽을 하고야 말았다.)
콩국물이 빠지지 않아 억세고 비린 비지찌개 국물을 잡아나가면서 내가 방학 첫주의 금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하고 있는 이 일의 정체가 뭔지 문득 혼자 수선해졌다. 전날, 나는 헬스장에 등록해 첫 운동을 마쳤다. 세시간이나 땀을 흘리고는 운동 후에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검색을 했고, 돌아오는 길에 1+1 순두부를 사 달래장을 훌훌 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작은 국그릇에 콩을 담아 물에 불린 것이다. 식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근육합성에 도움이 되어서, 그리고 방학이라 시간이 남아서, 그리고 바깥양반이 출장을 가서 드디어 바깥양반의 입맛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서 먹고 싶은 것을 해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것이 아침부터 콩을 가는 소극의 발단이 되었나. 이쯤에서 난 실수를 깨닫는다. 콩비지는 짧게 끓여야 하는데, 내가 덩어리째 넣은 돼지고기는 꽝광 얼어 익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망했구나. 아뿔싸.
가뜩이나 비는 그치질 않고 주방은 습하고 몸은 아직 고단한데 밥을 차릴 시간이 더 걸린다. 고기덩어리를 꺼내 전자렌지에 돌려 조각조각 떨어지게 해 넣었다.(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수제비가락은 사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기다림. 작은 믹서로 거칠게 간 콩비지는 엉겨붙었고, 풋내는 다행히 날아가 먹을만해졌다. 레시피 따위 생각하지 않고 대충 만든 찌개를 담고 잘 익은 열무김치에 갓 익은 보리밥을 올려 비볐다. 드디어 30분 넘게 이어진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다. 맛은 솔직히, 아까 생각한대로 실패에 가깝다. 중노동을 치른 끝에 혼자 차려먹는 모처럼의 아침상이, 단 5분만에 끝났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말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소동은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밥상을 치우고 계속 빗소리를 감상하며 처음 떠오른 생각은, 쌈장이다. 집에서 만든 쌈장. 언덕 위 두칸 반지하 시절 엄마는 어느 날 마늘과 고추를 다지고 참기름을 넣어 맛깔난 쌈장을 만들었다. 싱싱한 상추와 함께. 누나가 요란스럽게 쌈장을 예찬하며 쌈을 싸먹었고 그 뒤 한동안 밥상에는 매일같이 쌈장이 올라왔다. 잘 지은 고슬한 밥에 싱싱한 상추와 쌈장 하나면 한끼가 뚝딱이었다. 그러다가 질릴 때쯤 가족 중 누군가가 참치 캔을 땄고 그로써 식사는 더욱 풍성해졌다. 엄마의 요리솜씨가 만들어낸 한바탕 마술잔치였다.
열살 때 쯤부터 집이 급격히 가난해졌고, 엄마의 요리솜씨는 그런 삶을 구차하지 않게 만들었다. 더울 때, 추울 때, 비가 올 때, 한가할 때. 엄마는 척척 새 요리를 선보였고 우리는 늘 배가 불렀다. 새벽과 아침 사이 만든 겉절이를 두고 누나와 단둘이 저녁을 먹었는데. 둘이서 밥 세공기씩을 비운 적도 있다. 한창 클 나이긴 했지만 다른 반찬이 있지도 않았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겉절이 하나. 역시 언덕 위 반지하 시절, 저녁에 먹은 멸치볶음이 너무 맛있어서 부모님 방으로 건너와 TV를 보며 하염없이 멸치볶음을 퍼먹은 적도 있다. 그걸 보고 두분 다 깜짝 놀라, 몇 번 더 만들어주셨다. 나는 그런 축복을 받고 자랐다. 매일의 식사, 매일의 설거지, 매일의 찬거리 고민. 아침부터 콩을 갈고 비지를 끓이는 소동을 기꺼이 하는 오늘날의 나의 삶은, 요리를 통해 자녀에게 즐거움과 빛을 준 엄마와 가정을 지탱한 아빠로 인해 가능했다.
여전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냉장고에는 엄마가 틈 날 때마다 안긴 식재료가 한가득하다. 방학이 시작되고 바깥양반이 연수로 집을 비운 덕분에 냉장고도 비울 겸 평소 못하는 음식을 만들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바깥양반은 집에 함께 있고, 아침 수제비는 함께 먹었다. 멸치와 보리새우, 감자와 소금으로만 맛을 냈다. 엄마에게 자랑을 했더니, 엄마는 메주를 얻어다가 손수 담그신 집간장으로 간을 했어야지, 한마디만 던지신다. 하긴 그렇지. 그런데 집간장을 내일 떡국을 만들때 쓸 생각이다. 바깥양반은 매번 내가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 온 부잣집 딸에게 나의 요리는 축복일까, 이 글을 보여주면 어떻게 답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밥을 차리는 것이 고단할지라도 요리를 할 수 있어 즐거움이 되고 내가 자란 작은 집은 그런 면에서는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부모님이 너무 바빠 누나의 도시락조차 싸주지 못하던 때 나는 오뎅을 볶고 참치에 계란을 반죽해 전을 만들어 도시락을 대신 싸주었다. 그때가 열한 두 살 시절이니, 요리사로서는 조기교육이고 어른의 시각에선 딱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먹는 요리들이 즐거웠고 그것을 알고 싶고 해보고 싶었다. 부족할지라도 고단하지 않았던 밥상 덕이다.
그리고 기억의 가장 밑바닥쯤에 내가 먹었던 가장 어린 시절의 밥상이 있다. 이번엔 단칸방. 가게 직원들과 함께 둘러 앉은 자리에서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여와 날 끌어다 다리 위에 앉히시고는, 밥에 된장국물과 두부를 싹싹 비벼 입에 물려주셨다. 다섯살 혹은 여섯살때쯤. 매운 김치나 아이가 먹기 어려운 다른 밑반찬 없이 오롯이 그 한그릇이 나의 밥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옛날의 밥. 그리고 수천 수만번의 밥. 그 노동과 그 안의 즐거움으로 삶은 이렇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