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다

내 책 말고 아내의 책을

by 공존

이틀째 대청소의 날이다. 아내는 겨우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고 있고 나는 베란다에서 책 상자들을 꺼내와 거실에 펼쳐놓았다. 옷장, 각자 방 청소, 거실과 욕실 등등, 크고 중대한 청소들을 마치고 이제는 구석구석, 미뤄두었고 더 미뤄두어도 되는 곳들까지 청소를 하는 중이다. 조금 전 빨래를 모두 개어 서랍에 넣고 옷걸이에 걸어두었는데 다시 빨래가 대기중이다. 잠깐 쉬며, 빨래를 개는 동안 틀어두었던 영화를 마저 보고서는 이제, 책 정리를 시작한 참이다.


나는 책이 많지 않다. 읽고서 좋은 책은 주변에 즉시 선물하는 편이다. 그래서 정말 아끼는 책들조차 곁에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읽고 싶어서 사둔 책들과, 정말 정말 아끼는 책들, 그리고 공부를 위해서 둔 책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다. 결혼을 하면서 그나마도 절반 이상의 책은 집에 두고왔고, 새 책장을 얻어 새로 채운 책들이 그냥 큰 책장 한개 반 정도. 그런 책장을 보노라면, 나의 독서의 성격이 변해가는 것이 한눈에 보여 재미나다.


책이 많지 않은데 베란다에서 왜 책을 꺼냈냐면은...아내의 책이다. 아내도 책이라면 적지 않게 읽었다. 그러나 나와는 취향이 완전히 다르고 분야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아내의 책을 내가 오늘 정리하는 것은, 아내도 과감히 읽지 않는 책을 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채운 만큼 비워야 한다. 나는 좋은 책을 두가지로 구분하는데, 한번만 읽어도 완벽히 이해가 되고 감동이 닿는 책과, 수십번 읽어도 좋아서 도저히 버리기 아까운 책이다. 뭐, 비판을 많이 받는 책이지만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서 첫번째 카테고리에 넣은 것이 이 분류법을 처음 정하게 된 때이다. 두번째 카테고리에 들만한 책으로 당장 떠오르는 책은 <화폐, 마법의 사중주>다. 몇번 읽어도 새로운 인사이트가 발견된다. 아 지금 떠오른 건데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역시 도저히 버리기 아쉬운 책이다. 그런 나와 다른, 아내의 고유한 독서 취향을 다시금 둘러보면서 하나 둘 책을 정리해나간다. 흥미로운 일이다.


"이거 버려 말아?"

"아 잠깐만...이건 저자 사인 받은 거야. 킵."


거실에 앉아 방에서 화장대를 정리 중인 아내를 부른다. 와서 책을 보더니 "보관" 책더미에 책을 두고는 다시 도도도 방으로 달려간다. 내게는 없는 카테고리다. 사인 받거나 선물로 받은 책이 꽤 있다. 나는 책을 남에게 주는 일은 많아도 받은 일이 많지 않다. 왜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 아싸로 산 것도 아닌데. 아, 만날 때마다 책을 선물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긴 한데 편지를 써서 주진 않는다. 물론 나도 남에게 책 선물을 할 때 열에 한 번 꼴로나 편지를 써서 주긴 했다. 마음을 나누는 책 선물이 아니라 머리로 나누는 책 선물인 탓인 게다. 차근 차근 책을 분류해 나간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무용해진 책들은 중고서점에 팔기로 했다. 이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사이트에 가입을 먼저 하고, 중고책을 검색해서 하나 하나 팔 수 있는 책을 찾아본다. 금새 속도도 붙고 재미가 붙었다.


중고책 분류를 하면서 느낀 것은, 첫째로 양서인가 그렇지 않은가보다는 철저히 시장의 원리에 따라 구분된다는 점이다. 중고시장에 책을 내놓는 것이니, 누구나 두루 읽은 양서일수록 팔기가 어렵다. 게다가 아내가 몇년간이나 소장했던 양서들이 제법 있다보니, 개정판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판이 있는 책의 구판은 팔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버림" 책더미로 갈라지는 책이 제법 많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은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양서다. 그러나 이미 책장에 한 권이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읽혀진 책이다. 집에 남기기도 어렵고 팔기는 더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차마 이 책의 값어치를 폐지 따위에 비교하고 싶진 않다.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버리기 아까운 책들, 나나 아내나 당장 읽을 전망이 없는 책들, 이를 테면 알렝 드 보통의 에세이집들은 아내에게 묻지 않고 그냥 남겨두었다. 대신에 소설책들이나 여행에세이 등은 마땅히 버려졌다. 아내가 소싯적에 꿈꾸던 진로분야의 책들이 제법 있다. 모두 버리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그 책들은 중고서점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책의 질과 무관하게 버려지는 책이 여러권이었다.


나 역시 온라인에 글을 꽤 오래 써오면서 읽힐 가치가 있는 글을 뽑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고 있다.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의 전문 분야를 개척하지 않으면 고작 에세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나의 전문 분야는 생겨났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분야라...남을 속이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팔릴 책을 쓰기가 쉽지 않다. 책을 엮어낸 편집자들이나 저자들 역시 그런 고민들 속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만들어나갔을 것인데, 그런 소중한 고민의 결과물들이 모두 나의 소용, 아내의 결정에 따라 중고로 팔리지조차 못하고 폐지가 되어야 한다. 기부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나에게도 중고서점에게도 무용한 책을 기부한다한들 무슨 쓸모가 생길까.


책을 읽지 않는 세태라곤 하지만, 사람들은 비싼 통신료를 내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책을 통해 얻을 지식은 모두 폰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손과 눈이 바빠도 귀는 열어둘 수 있어서, 나는 항상 팟캐스트 라디오를 들으며 주방 일을 한다. 책이라는 매체를 벗어난 시대에 도서시장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금은 우습긴 하다. 책을 펴내던 기술과 감각이 인터넷에 살아있고, 도서 구매비용보다 작지 않은 비용이 인터넷에 사용되고 있으니 그 속에서 또 다른 자본 가치가 생겨난다. 그런 시대에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역시 큰 의미는 없다. 이미 사람들은 인터넷의 사용료를 책 대신 내고, 나의 글을 책 대신 읽고 있는 것이니. 종이의 힘을 빌지 않고 읽히는 나의 글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 정리가 끝났고, 대청소도 거의 마무리다. 결혼한 뒤 처음으로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간짜장을 시켰다. 외식은 적지 않게 하지만 2년 넘은 결혼생활 동안 배달 음식을 시켜먹은 게 다섯번도 안된다. 내가 얼마나 독하게 집밥을 차려왔는가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하다. 아내는 식사 뒤에, 내가 1차로 분류한 책들을 다시 확인하며 여러권의 사인 받은 책들을 챙겨가 책장에 넣었다. 이제 버려질 책들을 분리수거장에 두고 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글쓴이들의 노고와 엮은이들의 노고를 뒤로 하고, 나는, 내 꿈을 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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