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지 못하는 소년의 꿈과 매몰비용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
나는 발이 크다. 어릴 때부터 컸다. 어른이 된 지금보다 키가 20cm는 작았던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신발 사이즈가 290mm가 되었고, 더러는 290mm 신발도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부모님은 IMF가 막 닥쳐 시국이 뒤숭숭한 와중에도 하나뿐인 아들네미의 신발을 더는 동대문에서 사 신기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셨다. 나는 유난히 덥던 여름날, 잠시 일하다가 짬을 내 일터에서 나오신 엄마를 따라 나이키 매장에 가서 신발 두 켤레를 사서 집에 가던 날을 기억한다. 나이키 제품이 지금과 비슷한 가격이었으니 당시 시세로는 무척 비싼 신발이었고, 나는 그냥, 무척이나 마음이 무겁고 무거웠다. 마을버스를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붉은 색 쇼핑백들이 격에 맞지 않은 사치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신발 사이즈는 고민이었다. 마침 걷는 게 취미다. 마구 걷는다. 지난 토요일에 구두 한켤레를 망가트리고야 말았다. 10년쯤 신었으니 그럴만하다. 게다가 처음 그 구두를 사고 출근한 날이 회식날이어서, 술에 취해 한강 산책로를 따라 두시간이나 걷다가 지하철을 탔다. 발은 크고 주인은 신발에게 가혹하다. 신발을 자주 갈아야 하는데, 막상 신발을 사기가 어렵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신발은 보통 280mm까지만 매장에 갖춰져 있다. 가격과 디자인을 겨우 만족시켜도 사이즈가 없어 돌아나와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 그러다보니, 아울렛에서 안팔리는 대형 사이즈를 종종 집어오긴 하는데, 그런 행운만 좇아 아울렛을 이곳저곳 헤매도 막상 성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겨울을 지나며 신발들이 또 말썽이다. 밑창에서 물이 샌다. 연말 세일로 산 신발은 너무 딱딱하다. 290mm임에도, 조금 작아서 발이 낀다. 결정적으로 디자인이 별로다. 싼맛에 산 탓이다. 몇해전에 세일로 사뒀던 신발은 호주여행을 마치고 세탁을 했다. 아침에 고민을 하다가, 하릴없이 이미 발에 껴서 보류판정을 받은 신발을 꺼내들었다. 디자인이 예뻐서 바깥양반이 골라준 신발이다. 연애를 하던 시절 우리집에 택배로 보냈는데, 그게 실수였다. 290mm짜리인데도 심각하게 내 발에 작다.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모든 발가락이 끼고 눌린다. 바깥양반이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이기에, 그리고 디자인은 정말 예뻐서 버리기 아깝고, 내 주변머리로 재빠르게 사이즈를 교환할 생각도 못하고 보관하던 신발이었다.
신발은 고무와 인조가죽이니 늘어나기도 하는가? 구두의 경우는 그렇다. 그래서 구두는 잘못 산 적이 없다. 되려 편하게 신어야 할 운동화들이 말썽이니 이놈의 발이 참 고달프다. 나는 오기로 지난번에도 이 신발을 신고 나선 적이 있다. 친구들과 스쿼시를 하러 가서는, 두시간 가까이 발가락의 통증을 참으며 뛰어다녔다. 내내 아프지만 피가 나오거나 하는 수선을 떨진 않았다. 그냥, 내내 아프고 불편함을 견뎌보았다. 그게 한 4년 전이니, 신발이 오래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미련한 짓이지만.
이놈의 신발을 지금 며칠째 신고 다니고 있다. 그냥, 작고 불편한데 딱 견딜만하고, 어쨌든 소모품이고 이미 돈을 들여 산 놈이니 내가 참는 만큼 바깥양반의 지출이 존중되고, 나의 또 다른 신발을 위한 지출은 절약될 것이다. 여덟개의 발가락이 딱 참을만큼만 아우성을 친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보는 자신이 웃기면서도 또 한 줄 내 인생의 나이테가 추가되었음을 받아들인다.
이쯤에서 "아 모두 이런 불편을 참고 사는 것이구나..." 라거나, "아 코르셋..." 이라거나, "나도 이런 불편을 참으면서 인생을..."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정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에겐 아직 남은 꿈이 있다. 신혼여행 가서 산 신발이 있는데 그게 신고싶다. 문제는, 그 신발은 발가락이 아니라 발등을 누른다는 점이다.
발이 그냥 큰 것이 아니라 발등도 높다. 그래서 못 신는 신발도 제법 있는데 하필...신혼여행에서 들른 매장에서는 누구도 나의 이런 거침없음을 막지 못했다. 신혼여행 네번째 날에 그 신발을 입고 하루를 돌아다녔는데, 지금 신고 있는 이 신발과는 비교도 못하게 아픈데다가, 발등에는 정맥이 있어 신발이 거길 누르니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리기까지 하다.
그 신발을 살 때는 "야 이거 내가 신고 다니면서 어차피 가죽이니 발등쪽은 늘어나겠지."라는 과감한 도전정신이 있었지만, 하루만에 패배를 선언하고 나서는 무리무리. 역시 신발장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게다가 심지어 디자인이 20대에게나 어울리기도 한다. 내가 그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매몰비용 따위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15살 때 부터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없다는 사실을 수백번이나 경험한 나에게는,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저 냉정한 현실이 뿐이고,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도리어 고통이다. 발이 크다는 이유 탓으로.
오늘쯤은 드디어 이 작아터진 신발을 포기하고, 집에 가서 빨아둔 신발의 끈을 메고 쾌적한 발걸음으로 싸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죄없는 신발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발에 맞는 신발은 내게 혹사당하다가 버려지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질시를 당하고 신발장에 갇히는 처지이니, 한 켤레 한 켤레 무심히 버리지 않도록이나 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