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소요 : 번화한 도시를 한가히 거닐다

비로소 서울 거리에 정을 붙였다.

by 공존

열아홉살. 수능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2월의 밤이었다. 동묘앞에 있는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을 돕다가 느즈막하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묘앞에서 불광동의 우리집으로 오는 방법은 두가지. 동묘앞역에서 6호선에 몸을 싣고 그대로 이태원 공덕 합성 응암을 지나는 큰 원을 따라서 느리게 집에 오거나, 아니면 동대문까지 걸어가서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서 3호선을 타고 오는 빠른 길이다.


당시엔 6호선이 개통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라서 동묘앞역엔 1호선이 없었다. 동묘앞에서 동대문까지 걸어가는 것은 제법 귀찮은 일이었다. 시간에 꽉 잡혀 살던 열아홉살이라 평소엔 6호선을 탐으로써 버려지는 시간이 아까워서 빠른 길을 자주 애용하곤 했지만 12월의 겨울밤은 추웠고 하루 종일 가게에서 일을 하느라 몸도 노곤했다. 오랜만에 6호선을 타고 편하게 가기로 했다. 부모님께 먼저 가노라고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내내 입고 다니던 낡은 떡볶이 코트의 한쪽 주머니에서 CDP를 꺼내 재생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몇정거장이나 갔을까 까무룩 잠에 들었다.


"학생 일어나세요."

"?"


눈을 떴을 땐 지하철 역무원이 날 툭 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잠에 들었었구나 하고 화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공덕역이었다. 6호선은 서울의 서북부의 몇개 정거장을 단선으로 순환하고 다시 반대편으로 향하는데, 그 덕에 운행을 마친 열차들은 공덕역에서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그날 그 상황에 처해서야 알게 된 일이고, 뭐야 나 지금 위기 상황인가? 시간은 자정을 넘긴 시간. 내가 탔던 열차가 막차 시간에 근접했던지라 응암순환행 열차는 더는 오지 않는다. 전광판에 보이는 다음 열차는 딱 하나, 공덕행. 그 밖에는 열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덕, 공덕이라. 집까지 얼마나 떨어진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다만 공덕역을 이전에 딱 한번 온 적은 있다. 컴퓨터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을 치렀던 학교가 바로 이 근처다. 친구와 그때 밥을 어디서 먹었던가. 가까운 곳에 서강대가 있고 서강대를 지나면 신촌이 있다. 머리 속으로 살살 엉뚱한 생각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지갑에 택시비 정도는 있지만 예측하지 못하게 지출을 해버리는 것이라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제때 깨어나기만 했어도. 혹은 CDP 볼륨을 적당히 조정만 했어도 낭패를 겪진 않았을 일. 몸으로 때워볼까, 걸어보면 어떨까. CDP의 배터리는 다행히 세칸 꽉 차 있다. 코트의 지퍼를 올리고 떡볶이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걷든 택시를 타든 어쨌든 지상으로 나가야 하니, 층계를 올라와서는 출구 앞에 붙은 커다란 지도를 보고 방향을 가늠했다. 서로 북으로 서로 북으로. 방향만 잘 잡으면 된다. 신촌에서 명지대로, 명지대에서 응암으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


우리 가족은 내가 12살에 다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나에게 서울은 완벽한 타향인 셈이다. 고작 6,7년을 살면서 게다가 대부분 중고등학생으로 지냈으니 서울 지리를 잘 알 턱이 있나. 그러므로 서울의 밤길은 열아홉살의 까무잡잡한 소년에겐 조금도 익숙한 대상이 아니다. 난데없이 공덕에 뚝 떨어져서 휘휘 돌아보는 거리는 대학 입학을 위해 매일 걷던 새벽길의 어두운 귀갓길 풍경과는 판이한 온도와 감촉을 내게 전했다. 헤드라이트를 밝힌 차들이 적막한 서강대 앞 길을 빠르게 지나가며 내 뺨에 칼바람을 던졌다. 나는 여전한 두려움을 품고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덕에서 출발해 신촌에 이르는 언덕을 넘는 순간 별세계다. 군데 군데 문을 닫은 가게 사이로 신촌의 큰길은 활기차다. 성적표가 나오면 나도 대학생의 무리에 섞일 수 있을까. 수능을 망쳤다. 자유롭되 자유롭지 않은 처지로 나와 같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수험생들이 하늘의 별만큼, 다만 서울의 하늘이란 총총한 별조차 이토록 한가로이 가려버리는 탓인지. 아직 술을 한번도 대보지 못한 입술이 건조해짐을 느끼며 연세대 정문을 바라본다. 북으로 왔으니 다시 서로. 길을 건너서 왼편으로 다시 나즈막한 오르막길을 건넌다. 이 길은 걸어본 일이 있다. 그놈의 망친 수능. 수능을 명지고등학교에서 봤다. 그리고 신촌까지 한시간을 걸어서 와서 다 같이 울먹이며 닭갈비를 먹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되짚어 오르면 된다. 매월 한번씩 책모임을 가지던 민들레영토의 추억과 함께 신촌의 불야성을 뒤로하고 나는 걸었다. 어느덧 몸이 얼추 데워져 연세대 앞 대로의 광막함이 춥지 않았다. 명지고를 지나면 곧 불광천이다. 그 말인 즉슨, 가늠을 하게 된 만큼 먼 거리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CDP에서 바삐 돌아가고 있는 미국 락밴드의 노래는 조금도 그 길을 한가롭게 만들어주지 않았지만 지치지 않게 했다. 사람이 없는 쓸쓸한 거리를 쓸쓸한 마음으로 버텨가는 시기에는 호젓한 밤산책이든 혹은 밤길을 배회하는 일이든간에 시끄러운 음악이 어울리는 일이렸다. 크고 높은 건물 아래 깔린 좁은 도로의 작고 허름한 가게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문이 위로 없는 동질감을 자아냈다. 저 멀리 다시 오르막이고 오르막의 끝에는 육교가 하나 보인다. 저 길을 지나면 홍제천이 나오고, 홍제천에서 언덕을 다시 하나 넘으면 불광천이다. 언덕 넘어 물길이고 오르막을 내리면 내리막이니 봄이 되면 좋은 날이 있겠지. 추운 시절에 사서 고생을 하는 몸이었지만 그렇게 견뎌왔듯이 참아낸다. 아쉬움이 없지 않은 열아홉 1년이었지만 비교적 잘 해냈다. 내릴 곳을 놓쳐서 차고지 앞에서 내리긴 했지만 집으로 향해간다.


내부순환로를 떠받치는 육중한 기둥이 가로등을 받아 오렌지 빛으로 빛나고, 그 길을 지나 새벽에 일을 하는 택시 차량들이 삼삼오오 남아서 모여있는 차고지를 지난다. 주머니 속에 달랑거리는 지갑이 뿌듯하다. 이제는 찬바람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도 익숙해졌다. 집으로 향하기까지 이제는 오르막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탓일까. 멀지만 이미 길이 잡혔고 남은 새벽 세시 전엔 몸을 뉘일 수 있겠다. 고3 때 자던 시간이 딱 세시다. 그래서 오늘의 이 뜻밖의 상황이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일수도. 자정을 지나면 새삼 마음이 조급해지고 무어라도 해야 했던 열아홉의 1년. 그리고 그 길을 지나와서 맞이한 다시 새벽. 그리고 길고 오르내림이 거칠었던 길.


그날밤 비로소 나는 서울거리에 정을 붙였다. 낯선 타향이던 서울은 이제 내가 버티어낸, 그리고 눈으로 쓰다듬도 발바닥으로 더듬은 시공이 되었다. 걷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광화문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하고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교보문고 가서 책을 한권 사산 뒤에 동대문까지 걸어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불광천을 따라 난지지구까지 가서 야경을 보며 스무살의 가쁜 숨을 토했다. 운 좋게 대학을 갔고 부모님의 가게가 가까운 동대문으로 이사를 해서는 학교에서 집까지 한시간 거리를 밤마다 걸었다. 걸어서는 한시간이고 버스를 타면 30분인데, 고등학교 때는 30분이 아까워서 집에 빨리 가던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 30분 일찍 가봐야 놀기밖에 더하냐며 굳이 걸었다. 광화문을 가운데로 두고 좌로 우로 길게 한참을 걸었다. 훨씬 어른이 되어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시절, 회식을 하고 한강을 따라 세시간을 걸었다. 새로 산 구두 때문에 다음날 발이 아팠지만 술에 취해서 끝도 모르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을 막 지나온 참에, 마침 따스해지기 시작한 계절이라 취해 걷기 좋았다. 아니, 걷기에 취한 것일 테지만.


숲이 아닌 회색 콘크리트 벽, 새의 지저귐이 아닌 자동차의 배기음이 나의 산책의 배경이 되었다. 막히는 도로를 바라보며 수수히 걸을 때나 너나 없이 서둘러 어디론가 향하는 새벽의 길이나 그대로 도시의 모습이다. 도심을 걷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그대로를 관통하는 일. 그 사이에 CDP에서 MP3 플레이어로 기기가 바뀌었지만, 나중에는 듣지 않았다. 그저 걷고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호흡하며 홀로 꿈꾸듯 생각을 뽑아냈다. 길이 곧 글이 되곤했다. 걸은만큼 글도 쌓였다. 글이 나의 개성을 입은 것 또한 그때부터다.


걷기가 일상 이상의 것이 되고 얼마쯤 지나, 당시 많이 쓰던 MS 메신저 대화명으로 "도심소요都心逍遙" 네 글자를 써서 올렸다. 번화한 도시를 한가히 거닐며 지내는 것이 나의 서울살이. 어느 열아홉의 어두운 밤길에서 싹텄고, 20대를 내내 관통해온, 그리고 지금도 여전한. 숲과 차도를 가리지 않고 즐거이 걸었다. 괴로운 일이나 기꺼운 일이나 그대로 나의 글이 되었다. 하나의 새는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미 날개를 달고 언젠가는 바람을 헤치고 날아갈 운명을 앞두고 있지만, 그이가 비행을 하는 것은 비로소 깃털을 스치는 매끄러운 바람을 끌어안고 두 날개를 퍼덕일 때다. 나의 글은 그렇게, 열아홉의 자정, 공덕역에서 시작되었다.



*브런치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올리려고 쓴 글인데 바깥양반이 사려깊게 저를 말리셨습니다. 마침 2500자 분량으로 줄여야 하나 절반이나 글을 쳐내야 하나 고민도 하던 차라 그냥 쓰고픈대로 쓰고 공모전으론 다른 글을 써야겠다고 결정. 2500자로 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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