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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12. 2019

주꾸미

쭈꾸미라고도 하지요. 엄마와의 기억.

 명사
[동물] 문어과에 속한 연체동물. 몸길이는 30센티미터 정도이며, 외투막(外套膜) 달걀 모양이고 표면은 약간 거칠며 연한 황갈색을 띤다. 8개의 다리는 길이가 거의 같으며, 빨판이 2줄로 배열되어 있다. 겨울철에서 이른봄 사이에 40~50개의 알을 낳는데 수명은 1 정도이다. 얕은 바다의 모래 자갈이나 모래 진흙 바닥에 살며 주로 조개류 따위를 먹는다. 우리나라의 남해안, 중국, 일본 연안 등지에 분포한다. 학명은 Octopus ochellatus이다.


언제나 활짝 열린 가게의 문은 우리집 단칸방 출입문에 맞닿아 있었다. 어린 나는  단칸방에서, 오늘 오신다는 할머니의 그림자를 기다린다. 어머니는 연탄불을 떼던 부엌에서 두어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는 가게를 분주히 오가며 책을 나른다. 기다림. 짧거나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는 것은, 여섯살 꼬마아이에게는 사실 익숙한 일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바쁘고 미안한 젊은 시간을 살아계신 탓에. 그리고 그런 딸과 사위를 종종 할머니는 보러 오시는 탓에. 그리고 점심 때가 한참 지나 이윽고 시계가 네댓시를 넘어갈 무렵 표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던 할머니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까부터 기다리던 아이는 팔팔 뛰며 외친다.


"엄마! 엄마 왔어!"


 그건 재미있는 놀이였다. 엄마에게 엄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일. 외할머니라는 호칭을 한번 비틀어, 엄마의 기준에서 엄마라는 호칭을 환기시키려는 시도. 부엌에서 엄마는 걸어나온다. 엄마와 엄마는 크게 말이 없다. 오셨어요, 짧은 인사에 할머니는 그래, 짧게 답하고는 손에 들린 검은  봉투를 딸에게 건넨다. 항상 할머니는 검은 봉투를 들고 오셨다. 등이 굽어 작은 키에 그리 크지 않은 검은 비닐 봉투가 한쌍 같다. 단칸방에 앉아 다리를 쉬이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쪼르르 부엌 문 앞에 앉아 봉투에서 나오는 물체를 목격한다. 그것은, 쭈꾸미다.


 첫 인상을 말한다면 뭐랄까, 꼬마오징어라고 표현할 수 있었겠는데 그 당시에 어쨌든 나는 오징어란 음식을 알았었나보다(문어는 몰랐나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오징어와 이 쭈꾸미라는 이름의, 꼬마오징어는 우선 그 주어진 처지부터가 달랐다. 하나 하나 저마다의 위세를 지니고 비닐봉투에서 풀려나던 오징어와는 달리, 할머니가 지니고 오신 그, 작은 오징어 형제들은 항상, 가느다란 철사에 동그란 머리통을 꿰어져서 검은 봉투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생물의 거무틔틔한 색채. 철사에 꿰어진 그들의 육신으로부터 풍기는 그 아득한 생명의 향기. 엄마는 쭈꾸미를 손쉽게 더운 물에 데치거나 탕을 끓여냈다. 다리는 짧게 끓인다. 그것을 잘라내고 남은 몸통은 팔팔 오래 끓인다. 그것을 밥상에서 하나씩 집어 가위로 탁탁 잘라내 내 밥그릇으로 가져다주시는 손길. 한 가득 쌀알같은 쭈꾸미의 알이 흰 광채를 발한다. 그 꽉 찬 알을 한 입에 털어넣을 재주가 없는 아이는, 다리 하나, 다리 하나를 서툰 포크질로 삼켜넣는다. 그 달고 얼큰한 국물. 그렇게, 유년의 기억 속에 쭈꾸미는 자리한다.


 1년에 두어번을, 버스를 타고 세시간 거리에 시집을 간 둘째 딸을 위해 사 오신 할머니의 쭈꾸미. 그것은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아 내가 외가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생일상에서마다, 제삿상에서마다 가장 열심히 또 맹목적으로 탐하게 되는 음식으로 남았다. 나에게 쭈꾸미는, 이제는 사라진 엄마의, 엄마의 증거이며 가게의 현관에서 단칸방의 문으로 이어진 하나뿐인 세계의 각인이며, 또한 유년의 향기.


 외갓댁이 있는 태안에 갈 때마다 나는 철사에 꿰어진 쭈꾸미의 향기를 맡는다. 시큼한 바다내음에, 거무스름한 먹물의 질감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타우린이 가득하다는 그 몸을 이로 아작아작, 으깨어 넘길 때 나는 할머니로부터 엄마를 통해, 훗날의 나의 자식에게로 흘러들어갈 이 진득한 피를 느끼는 것이다. 어느새 흔한 음식이 된, 이 쭈꾸미를 맛 볼 때마다 20년 전의 시간을 의식의 밑바닥에서부터 불러내고 미래의 희망 또한 구체화하도록 한다.


 서울의 동대문구, 제기동과 용두동 자락에는 불야성을 밝힌다는 쭈꾸미 집이 제법 있다. 그러나 제철 쭈꾸미의 오동통한 다릿살과 고소한 알의 맛을 목구멍이 쪼그라들것같은 매운 고춧가루로 대신하고 있음을 접하고는, 그와 같은 쭈꾸미 집은 대체로 피하게 됐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20일가량 앞두고 태안을 기름으로 뒤덮은 삼성물산-유조선 기름유출사건 때, 이제는 비릿한 그 생 쭈꾸미의 내음을 맡지 못할까 나는 적잖게 불안했다. 그리고 이제 원해의 맑은 물에서 잡아 올렸다는 쭈꾸미의 맛을 볼 때마다 나는, 안도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와 나의 존재를 통째로 증거할 수 있는 그 아득함에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때가 될 때마다 쭈꾸미를 고르며 딸을 떠올리던 할머니의 마음을, 나는 어머니께 손주를 안겨드릴 때에나 되서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어머니는 쭈꾸미를 맛보며 무엇을 떠올릴까. 어머니와 나, 모자 사이에 흐르는 것은 그 핏줄과, 쭈꾸미를 꿰던 철사와 같은 질기고 굳은 인연이리라. 살아간다는 것은, 또 그 삶을 굽이마다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이처럼 구차한 우리의 인생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위로다. 쭈꾸미의 달고 쫄깃한 맛으로 사람은 웃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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