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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09. 2020

가재

외갓집의 맑은 시냇물, 이제는 말라서 흐르지 않고.

명사  

[동물] 갑각류 가잿과에 속한 종. 새우와 게의 중간 모양으로, 몸길이는 50밀리미터 정도이며 앞의 큰 발에 집게발톱이 있다. 개울 상류의 돌 밑에 살며, 뒷걸음질을 잘한다. 폐디스토마(肺distoma)의 중간 숙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학명은 Cambaroides similis이다.




 여름에는 새벽에 일어나 뒷산에 올라갔다. 우리 이종사촌 십오형제들의 대빵인 현우 형은 다섯시, 여섯시에 일어나던 고등학생의 습관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 우리를 약수터며 뒷산에 있는 절에 끌고 올라갔다. 우리는 우르르 형을 따라 새벽부터 등산을 하고 내려와, 외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에 옹기종기 앉았다. 태안 마애삼존불이 모셔진 백화산 아랫자락의 우리 외갓집에 외손주들은 방학 때면 모두 모이곤 했다.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치고 열흘동안 놀기로 했다. 그 전에 외갓집에서 단 하루라도 반드시 자고 갈 것, 그것이 우리가 따르는 규칙이었다.


 몽산포에서 실컷 놀고 외갓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와 아빠는 주말을 넘겨서 데리러 오겠다며 3일 정도를 더 기다리라 하신다. 잠시 뒤엔 서울 이모도 같은 날 사촌들을 데리러 오신단다. 우리는 집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외갓집에서 며칠 더 놀 수 있겠다며 내일은 또 무얼 할까, 태안에 사는 사촌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럼 현우 형은 딱딱 미션을 내려준다. 읍내 가서 고무줄을 사올 테니 너희는 나무를 꺾어서 손질해놔라. 그날 하루 종일 낫으로 생나무 껍질을 밀어내고 다듬어서, 다음날 활을 저마다 하나씩 차고 놀았다. 다만 곧게 뻗은 화살을 만들 수가 없었고, 깃털도 없었다.(닭장엔 닭들이 있긴 했지만 닭깃털을 뽑을 재주는 아무도 없었다.) 활은 이내 광으로 들어갔다 .우린 대신에 신문지로 군인들의 전투모를 흉내내고 산에 다시 올랐다. 나무 총에 솔방울을 들고 놀았다.


"야 가재 잡자 가재 보여줄게."


 한살 위에 형이 말했다. 그래서 오후엔 통을 하나씩 들고서 외갓집을 끼고 흐르는 도랑에 내려갔다. 여기에 가재가 산다고? 나는 호기심에 가득차 물었고, 사촌형과 동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재를 정말 볼 수 있다니!


 마침 그 해 즈음에 나는 명작 만화 <머털도사>에서 머털도사가 가재를 잡아 튀겨먹는 것을 본 터였다. 머털도사가 요괴들을 꾀기 위해 밤에 불을 피워 가재를 잡아서 튀겨내더니, 그것을 요괴들이 맛나다며 먹었다. 그 만화를 보고 나도 꼭 주먹만한 가재를 잡아보겠다고 생각하며, 사촌형과 동생이 가르쳐주는대로 내 머리통 반만한 돌을 슥 치웠더니,


 애개개. 뭐야. 작다. 가재는 맞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가재가 빠르게 뒷걸음과 뒤로 헤엄을 동시에 치다가 손에 잡혔다. 이걸, 잡아먹긴 커녀엉.


 나는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돌을 들출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재를 놓치긴 싫었다. 혹시, 잡다보면 큰 놈이 나올지도 몰라, 하며. 그러나 다섯마리의 가재를 통에 채우는 동안 자꾸 잡혀나오는 가재의 크기는 작아지기만 했다. 엄지손가락에서 급기야 새끼손가락으로 가재의 사이즈가 작아지자 이내 흥미를 잃고 도랑을 빠져나왔다. 비록 튀겨먹을 순 없겠지만 처음 본, 처음 잡아본 가재는 신기했다. 시냇물을 담앗 그날 내내 통에 담긴 가재를 구경했다. 그 통에 든 가재들을 언제 풀어줬는지는 기억이 나질않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 땅이 박해지는 것일까, 땅이 박해져 사람이 떠나는 것일까. 좌우 한칸씩의 방에 아궁이를 떼고 가운데 나무 마루가 깔려있던 외갓집은 내가 열살을 넘길 무렵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앞뒤로 집을 키웠다. 집은 살기 좋아졌는데 둘레를 흐르던 시냇물들은 빨래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이 줄었다. 수도를 박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세식 변기를 설치한 댓가치고는 너무나 매서웠다. 외갓집에서 자라던 형들이 도시로, 대학으로, 군대로 가고 나서 외갓집은 점차 쓸쓸한 곳이 되었다.


 외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무화과며 밤나무에 감나무가 즐비하던 옛 외갓집은 지금 십여년, 빈집이 되어 쓸쓸함을 안긴다. 어릴 때 내가 가재를 잡던 개울은 지금 모래만이 남아있다. 그 물을 당겨쓸 사람이 집에 남아있지 않건만. 말라버린 시냇물도, 거기에서 살던 가재도 이제는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어린시절 마루바닥에서 함께 뒹굴던 형제들 모두 나이를 먹어 다시 한 집에 모일 날이 이제 없다는 것을, 그 슬픔을 나눌 이 또한. 누나에게 이런 감정을 말하면 “너는 그런 건 좀 내려놓으련?”이란 말을 하지 않을까.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 시절은 내게 이제 떠나보내야 하는 기억들일까. 오늘처럼 스산한 겨울이면, 한 여름 그 가재 잡던 개울 아래 빨래터에서 물장구를 치던 그 추억이 더욱 선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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