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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4. 2020

배움의 요리

하나 또 해봤고, 배웠다.

 어제도 새 요리를 만들어봤다. 요리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음식이라고 부르긴 또 이상하고.


 주인공은 돼지갈비 로스구이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서 찜 용으로 뼈가 적당히 잘려있는 갈비를 샀다. 집에 와서는 한입거리로 샥샥 고기를 발라냈다. 100g 당 980원. 1kg을 산다고 하면 9800원. 제주도산 돼지고기인데도 이만큼이나 싸다. 같은 제주산 돼지의 삼겹살은 100g에 2500원 정도다. 그럼 맛은? 맛보기로 손질을 해본 거라 상대적으로 살이 적은 쪽을 먼저 잘라낸 건데도 살코기와 비계, 마블링된 부위가 적절히 잘 섞여있다. 다릿살처럼 비계와 살코기가 분리되어있지도 않고 비계가 두껍지도 않다. 삼겹살과 가까운 부위라 육질이 좋다.


 인천의 부암갈비, 상암동의 성산왕갈비를 모두 가 보았고 성산왕갈비의 경우에는 꽤 좋아해서 여러번 갔다. 큼직한 뼈고기를 넓게 펴서 터프하게 굽는 성산이 부암보다는 내 취향에 맞다. 그리고 역시 미뤄둔 글감 중 하나인데, 곡성에 끝내주는 돼지갈비집이 하나 있다. 제주도에도 돼지갈비 명소가 몇군데 있지. 요즈음 특수부위를 파는 돼지고깃집이 꽤 늘었는데 삼각지에 삼각정. 훌륭하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나는 어떻게 하면 생 돼지갈비 구이를 편하게 먹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갈비부위를 파는 걸 알아냈고, 그리고 마침내 마트에서 찾아냈다. 간단히 손질만하면, 내가 직접 구워먹을 수 있는 돼지 생갈비.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기를 피울 수 없어 후라이팬에 구웠다. 역시 밀린 글감인, 5키로에 8천원을 주고 산 감자도 같이 굽는다. 부지런히 먹었다. 2키로도 남지 않았다. 마늘소금을 촥촥 뿌려 바깥양반을 불렀다. 야 역시 보람찬 맛이다. 700그램 정도는 남았으니 주말엔 집에서 바베큐를 해 먹어야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나의 경우에 밥을 해먹는 것은 창의적인 배움의 과정이다. 무엇이든지 맛있는 것을 보면 내가 해먹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패해도 좋으니까 얼마쯤 재료를 구해서 해먹어보고, 하다가 어 이럼 되겠네 하면서 길을 찾는다. 인터넷에 레시피가 넘쳐나고 백종원 같은 “스승”도 넘쳐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두번 혹은 한번 매일매일 실습이다.


 게다가 이렇게 길러진 학습주권(내 밥상은 내가 주인으로서 내가 차린다)과 학습의 자발성(어? 이것도 내가 만들 수 있겠는데?)은 다른 영역으로 전이된다. 끼니마다 밥을 해먹으며, 못할 게 없구나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으로 학교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하고픈 걸 한다. 이걸 다 읽어야 하나? 싶지만, 뭐 어쩌겠어. 읽어야지. 종종 논문을 한꺼번에 20편 정도 채워서 집에 온다. 한 일주일은 평온한 저녁이다. 못할 게 없고, 잃을 것도 없고.


 자발적인 삶의 태도가 요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왔는데 특히

대학시절 그 사연이 기가 막히지만 그것은 너무 이야기가 바깥으로 퍼지는 것이고, 다만 내게 있어서 밥을 해먹고 사는 것은 “배움의 태도를 평생 유지하는 것”에 기여한다. 내가 어떻게 공부해서 대학에 갔는데 라거나, 이제 책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사는데에 도움을 준다. 재밌잖아. 내가 직접 해보고 살면. 축구도 농구도 여행도 요리도. 남을 위해 글을 쓰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지 않듯 밥상도 고스란히 나의 것이다.


 그러니 내겐 밥짓기는 노동이 아니라 배움이다. 어제 저녁, 원래는 5키로를 8천원에 산 감자로 뇨끼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호기심에 마트에 들렀다가 돼지 뼈갈비를 마침내 구매했고, 집에 오자마자 쌀을 씻어 밥을 올렸다. 백미, 현미, 흑미, 귀리, 보리가 마구 뒤섞인 갓 지은 밥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다른 가정들처럼 보통은 아침 식사시간에 맞추어 밥을 예약취사한다. 아침엔 입맛이 없어 새밥이 맛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막 방금까지 보글보글 끓던, 막 뜸들이기가 끝난 고슬고슬한 밥의 맛. 이건 잊고 있던 경험이다. 갓지은 밥이 최고지. 예약취사시간을 좀 더 뒤로 늦춰야겠다. 바깥양반은 아침에 바쁜데 밥이 뜨거워졌다며 투정을 하겠지.


 지금은, 어떻게 하면 수분을 최대한 뺀 상태에서 뇨끼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밤에 감자를 쪄서 으깨둘까? 오븐에 건조 모드로 한시간쯤 돌릴까? 평생 밥 없이는 살 수 없고, 평생 써먹을 지식들이고 경험들이니 조금도 헛되지 않다. 내일 아침엔 느긋하게 뇨끼를 해 먹고 바깥양반과 투표하러 갈란다. 그러고 나면 감자는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한 2,3주 감자를 푸지게 먹었다.


 조금 쓸데없는 소리인데 출근길에 버스에서 폰으로 썼다. 한글로 옮겨서 문서통계를 보니 공백 없이 글자만 1600개. 이 또한 배움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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