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온라인 창체 3주차, 성장의 발견

금연교육부터 논문까지

by 공존

"이번 시간은 금연 금주 약물오남용이니까 여러분 프로젝트 구상할 거 많을 거야. 감상문 잘 들 쓰세요. 질문 할 거 있으면 하시고."


세번째 창체 시간. 주제를 확인했다. 나는 부담임으로서 두 시간, 금연교육과 학생인권교육 시간에 임장키로 했다. 아이들이 창의력을 뽑아내기에 좋은 주제다. 나는 음소거를 해두고 조용히 글을 썼다. 아이들은 대다수가 카메라를 꺼두고 음소거를 한 채다. 뭘하는지, 지치지는 않는지. 깜빡 하고 화면이 잠깐 켜졌는데, 바깥인듯한 사내아이 하나가 눈에 띈다. 슬쩍 한마디 찔러둘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있으니 채팅창에 불이 깜빡인다.


"샘 저 진로가 없는데 진로를 꼭 연결해서 써야 하나요?"


좋은 질문.


"음...그럼 뭐 좋아해?"

"딱히..."

"평소에 뭐하는데?"

"그냥 집에서 잘 쉬고 있습니다."


얼굴을 모르는 아이와 채팅으로 집단상담을 하는 것이 마뜩치 않은 점이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선선히 답을 한다.


"음...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아직 찾지 못하도록 만든 게 우리 교육의 잘못된 점이지. 천천히 찾아보는 게 좋아. 그런데..."


항상 이런 아이들에게 굳이 진로를 결정하라고 말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 게임에서 보면, 논타겟 스킬을 쓸 때 스마트키를 쓰면 빠른데 정확도는 좀 떨어지잖아. 반대로 스마트키 안쓰고 화살표 띄우고 스킬 쓰면 느리긴 한데 정확도는 높고."

"네."


역시 사내 애들은 이런 비유가 적절하지.


"그러니까...진로계획은 그 화살표 같은 거니까 있는 게 좋고...오늘은 진로 아니더라도 금연으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있을 거니까. 최대한 뽑아봐."

"네 감사합니다."


잠시 뒤에는 다른 아이가 다른 질문을 한다.


"샘 저는 엄청 길게 썼는데 그래도돼요?"

"음...길게 쓰는 건 좋죠. 근데 길게 쓴 내용을 나중에 활용 못하게 되면 아까운 거고. 어떤 거 썼는데?"

"아아아 저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그래그래."


좀 아쉽다. 감상문 구경시켜 달라고 말하려던 참인데.


요런 식으로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아이들에게 각자 주제별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뽑아내라고 하고 있는데 잠시 뒤엔 조금 더 재미난 질문이 채팅창에 올라왔다.


"선생님 저는 약학 진로인데 도저히 흡연이랑 연결을 못시키겠어요ㅠㅠ"


약학 진로를 고1 때부터 정해놨으면 분명 내신 상위권이렸다. 그런데 내신 점수에 비해 응용력을 부족한, 곳곳에서 발견되는 케이스다. 그렇다면.


"약학이면...쉽지요. 오늘 금연이랑 금주, 약물 오남용도 있지 않아? 약물류에 대한 내용으로 해도?"

"오늘 금연교육 밖에 없는데요 ㅠㅠ"

"아 그래?"

"네."

"네."


마음씨도 곱게 다른 아이들이 연신 응답을 했다. 본래는 세가지가 같은 주제로 묶여서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있는데 굳이 금연교육만 떼어서 시간을 배정한 건 무슨 이유일까 싶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담배 속 화학물질이 신체에 일으키는 화학반응을 연구하면 되죠. 그리고 간접흡연이랑 직접흡연이랑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많잖아요."

"아 네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내 일인데.


"또 물어볼 거 있으면 말하고-."

"네!"


그로부터 5분쯤 지났을까, 다른 아이가 보다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질문했다.


"선생님 그러면 흡연자의 DNA변화를 관찰하는 프로젝트는 어떨까요?"

"오...좋다. 그런데 DNA는 불변 아냐? 후천형질이 DNA를 바꾸나? 내가 문과라...문송...아임 베리 문송...합니다."


먼저 질문을 한 나은이보다 한단계 발전된, 구체화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질문이 갖는 한계 또한 명확하고, 동시에 어떻게 끌어올려줘야 할지도 명확하다.


"잠깐만."


나는 줌에서 화면 공유기능을 켠 다음 DBPia 사이트에 접속했다.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다. 학교에서는 연단위 계약을 통해서 아이들이 논문을 검색해 탐구활동에 활용토록 하고 있다. <흡연자 DNA>를 검색하니 주룩-하고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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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논문이 적당해 보인다. 다운로드 받아서 채팅창에 전송하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자...디비피아라고, 학교에서 계약해서 무료로 논문 볼 수 있는 사이트예요. 개학하면 과학샘들이 다 알려주실 거야. 보면 논문 많죠? 나중에 잘 활용하면 됩니다. 이 논문은 가연이가 읽을만해보여. 잘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이트 주소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dbpia.co.kr"

"네 감사합니다!"

"그...과학 논문이라는 게 사실, 80%는 기존의 이론을 보완하거나 검증하는 거거든. 어지간한 혁신적인 연구 아니고서는. 이 논문들도 잘 보면 실험설계를 중심으로 쓰여진 걸 텐데 이건...응.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네!"

"아 그리고 이 논문은...아까 나은아. 프로폴리스 논문 읽어보세요. 약물 반응에 대한 거니까 나은이에게 잘 맞을 것 같아."


전송 전에 논문을 슬쩍 보니 아이가 소화하긴 다소 어렵겠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조금 감각만 얻더라도.


개학 3주만인데 아이들 스스로 실험연구주제를 도출하는 단계까지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는 즉각 온라인 환경을 활용해 디비피아를 소개하고, 아이에게 논문을 전달해주었다. 이것도 온라인 개학의 성과라면 성과. 아이의 상상력이 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 구체적인 디딤판까지 얻어냈으니 효능감은 크지 않을까?


정상 등교가 이루어지더라도, 아이들과 어떻게 온라인수업에서의 이점들을 활용해나갈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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