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생기면 바뀌긴 할 테지만
그림은 내가 갖게된 최초의 특기다. 어린 시절 내가 모나미 볼펜으로 로봇 찌빠와 로봇삼국지 유비 관우 장비를 그리면, 아빠는 거나히 술에 취하셔서는 똑같다 똑같다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만화책을 끼고 살았고, 만화책 덕에 한글을 집에서 혼자 떼었다. 태권도 피아노 주산학원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미술학원에선 엉덩이를 쿡 붙이고 똑 부러지게 화폭을 채웠다. 그림은 내 근원. 나의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조각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것이란 무수한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거치는 것이듯 나는 결국 그림을 손에서 떼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던 나는 이윽고 결정을 내리고 엄마에게 “엄마, 나 미대 가고 싶어.”라고 말을 했다. 세파에 찌들어 나이를 먹어가시던 엄마는 그때 정말로 힘든 표정을 지으시며 미술보단 공부를 할 것을 권하셨고 그렇게 나는 미술실이 아닌 독서실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마친다. 언론인과 교사 진로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고 공부도 남부럽지 않게는 하고 있었다. 책도 공부도 즐겁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미술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특기가 아닌 취미로써 그림을 즐기며 솜씨를 뽐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대학생 때 학생회에서 일하며 별 일이 없어도 매일 대자보를 써댔다. 활자가 빼곡한 성명서와 선언문이 아닌 즐겁고 유머러스한 우리과의 대자보는 꽤나 사랑받았다. 처음엔 전지 한장 사이즈였다. 그런데 규모를 키워서 전지 두장, 세장을 붙이다가 나중엔 전지 여섯장을 붙여서 파스텔로 대형 그림을 그렸다. 교사가 되어서도 그림은 유용하다. 아이들과 교감하는데 아이들 얼굴을 그려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고3 담임을 하게 되면 졸업식 날엔 우리반 아이들 얼굴을 빼곡히 칠판에 그린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정든 교실을 떠나며 칠판 속 자기 얼굴을 한번 더 보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특기와 영영 헤어진 채로 사는 것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 휑한 일이다. 교사가 되고 몇년 뒤 부족한 전문성을 채우기 위하여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도 한 해 한 해 바빴다. 무언가를 취미로써 즐기는 것과 특기로써 가꾸는 것의 차이는 크다. 해야 할 일의 앞전에 하고픈 일을 두기에는 아직 직장인으로서도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아직 나는 그림을 다시 손에 잡지 못했다.
"선생님, 지역 미술공모전 있는데 내보실래요?"
친한 미술선생님이 제안을 하기도 했다. 내 실력이면 일반인 부문에선 경쟁력이 있을 거라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청소년부문에 제출을 하는 김에 내것도 내겠다고 하기에 공강 시간에 그림을 시작해서 점심시간에 밥을 굶고 채색까지 마쳤다. 그러나 특기가 아닌 취미에 머무른 실력이란. 입선도 못했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똑 떨어지고 나니 서글픔이 몰려왔다. 나는 그림을 사랑했지만 우리의 길은 서로 갈라진 것이고 다만 그리워할 따름이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갈수록, 갈수록 줄어들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다른 꿈들이 이루어지고 나면 조금 실마리가 풀릴까.
다만 딱 한가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림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아내다. 그녀를 종종 그린다. 대개는 취미로서다. 업무를 하다가 잠깐 쉬면서 심심함에 서류를 뒤집어 끄적인다. 휙 보내면서 이런 저런 말을 던진다. 그런데 기념일이라거나, 아니면 함께 기억할만한 무언가가 생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왕이면 기억에 남을만한, 돈으론 사지 못할 우리만의 무언가.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선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은 노트에 꾸준히 그림일기를 그려 선물했다. 나름 고백 타이밍을 노려서 적당한 분량을 모아서 보여줬는데 아직 충분히 서로를 알지 못하던 때라 뜻대로 되진 않았다. 다만 그 당시의 그림을 지금의 것과 비교하면 꽤 재미있다. 그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예쁨예쁨하게 그렸는데 요즘엔 주로 화내고 짜증내고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그림이 다수다.
글로써 아내와의 신혼일기를 남기고 있지만 글의 조리에는 담기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많다. 당장 그 천진난만한 표정과 말씨를 담아내지 못한다. 휙 스치고 지나가는 소소한 삶의 단편들 역시 그렇다. 나에겐 숙제로 남는다. "이건 나중에 만화로 그리면 되겠다."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데 단 네컷의 만화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제법 품이 든다.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그림이든 만화든 누구에게 보여주기에 떳떳할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습장 한장 크기라 할지라도 밑그림, 스케치, 채색까지 집중해서 한시간 넘게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림 공부를 게을리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도 짬 날 때마다 연습을 해뒀으면, 지금보다는 빠르게 그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나면 또 며칠은 그림 교재를 찾아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그림을 연습한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생각이 들 때가 되어서야 다시 책을 잡는다.
그렇게 아내는 나의 유일한, 최후의 오브제로 남아있다. 내 자아정체성의 시작이 된 그림을 지금까지 이어주고 있는 사람. 혹은 그에 대한 사랑을 기꺼이 되살려주는 사람. 아내가 있어 난 그림을 처음 시작하던 고사리손으로 돌아가 하얀 도화지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