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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6. 2020

조국의 권리

그가 되찾은 권리만큼 우리 국민은 안전해진다.

0. 들어가며

 그것을 조국 사태라고 부르든, 조국 전쟁 혹은 조국 사냥이라고 부르든, 지난 1년간 자행되었던 모든 사실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교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 그리고 법무부 장관의 후보자였고 실제로 장관에 임명된 그를 향한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은 그의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그의 온 가족-부인 정경심 교수와 두 자녀 뿐만 아니라, 선친과 형제까지-의 생명을 위협했다. 전방위 압수수색은 끝내 현직 법무부장관의 자택을 향했다.


 조국 본인에 대한 기소도 꼼꼼하게 빠지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혐의가 있는지, 죄질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땅히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보호되어야 할 그의 권리와 가족의 인권은 낱낱이 부서졌고, 소환조사 한번 없이 정경심 교수는 구속되었다. 언론은 검찰이 꼽아준 빨대를 쪽쪽 빨아들여 일가의 모든 혐의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 모든 폭압의 원인은 그가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단 한가지 이유였다.


 수백명의 검찰조직, 수천명의 언론조직, 수만명의 기득권카르텔이 합작해 어그러트린 한 가족의 삶이 회복의 길로 어렵사리 방향을 바꾸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조국의 5촌 조카 조범동 관련 재판에서 정경심 교수의 자산운용사 소유 논란이 비로소 명백히 정리된 것이 그 첫 단추였다. 정경심 교수가 보석으로 풀려나고 여러 재판에서 천천히 진실이 조금씩 규명되어 가자, 조국은 그 가족의 잃어버린 권리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언론보도에 대한 반론과 정정을 요구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을 잇따라 선언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전 월간조선 기자 우종창씨의 구속이 두번째 단추다. 조국 사냥에 동원된 수십만 건의 언론보도가 삭제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기자들은 앞으로 차차 자신이 저지른 허위보도에 대한 영수증을 받아들게 될 것이다.


 과연 조국과 그의 가족은 지난해 8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든 부당한 혐의를 벗고, 평범했던 학자와 학생들의 삶으로, 사인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가족의 권리의 회복보다 중요하고 큰 가치가 있다. 그 가족의 삶을 일그러트리기 위하여 동원된 거대한 폭력의 구조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조국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 어떤 일이 있었나

 검찰과 언론은 사회 현상을 정의내리는 공적 책무를 나누어 갖고 있다. 하나는 법의 이름으로 하나는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언론은 우리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 혹은 있을 리 없는 비일상적 현상을 먼저 탐지하고 선별하고 명명하고 재현하여 우리에게 전달한다. 사회적 유기체로서 인간 집단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중대한 미디어 기능을 언론은 수행한다.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온갖 형태의 신호와 정보로 가득 차 있기에, 언론의 적절한 중재기능이 없이는 사회 통합이 굉장히 어렵다. 최근의 폭우로 부산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공영언론의 보도 부재, 그리고 그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분노가 그런 예다.


 검찰은 역시나 사회 현상을 탐지하고 선별하고 명명하고 재현한다.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검찰은 각 지방검찰청에 접수되는 셀 수 없이 많은 고소 고발장 중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인지한 사안 중에서, 그들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사건을 선별하고, 혐의자로 명명할 수 있다. 그리고 혐의를 그들의 관점에서 재현하여 기소하여 법 앞에 세운다. 수사와 기소권, 사건 종결권을 가진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모두 수사 대상인 개인에게 그 자체로 심대한 권리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활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만 머문다. 실질적으로 언론보다는 훨씬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이 법이, 동시에 그들의 권력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힘만으론, 사건을 선별하고 명명하고 재현함으로써 가할 수 있는 폭력은 현대사회에 우리 시민들에게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검찰권력을 견제할 정치권력, 시민사회, 그리고 법원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다면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검찰의 한계를 언론의 보좌로 극복하게 될 때 발생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검찰의 권력은 그 즉시 정치권력, 그리고 자본권력과 결탁한다. 최근 유시민과 신라젠에 대한 허위 기소 공모로 드러난 검언유착이 대표적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유시민에 대한 기소를 통하여 선거에 영향력을 주려던 그들의 음모는 검찰 권력 단독으로는 실행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검찰권력을 견제할 정치권력, 시민사회, 그리고 법원이 최소한의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유착 없이 검찰이 혼자서 기획수사, 허위기소를 자행한다 한들 오히려 위태로워지는 것은 검찰이다.


 그러나 검찰이 허위로 기소 및 구속을 실행하고, 언론이 다시 "혐의자"에서 "범죄자"로 명명하고, 그의 혐의를 보도문으로써 재현하여 온 국민들에게 유포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명시적이고 합리적인 폭력이 완성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검찰이 명명하고 재현한 사건들이 언론의 입을 통해 대중에게 "뉴스"로 탈바꿈하여 전달된다. 이제 검찰이 혐의는 온 국민의 관심사로, 법의 판단 이전에 여론과 국민의식의 판단 앞에 놓인다.


 여기에 자본권력까지 공개적으로 결합한다. 본래 검찰이나 언론이 자본과 결탁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조국 사냥의 와중에서는 검찰이 혐의를 씌우고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화하자, 학력을 대물림하여 형성된 기득권 자본권력이 반응하여 서울대, 연대, 고대에서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제법 큰 규모의 조국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의 시위의 근거는 검찰의 일방적 주장, 언론의 일방적 받아쓰기 뿐, 조국 규탄 집회에 나선 대학생들의 주장에는 진실과 이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가 봐도 무리한 기소와 부당한 뉴스 보도였는데 왜 이들은 조국을 규탄했는가? 그들의 시위는 조국 자신이 사회 기득권에 속하는 경제력과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기득권을 흔들려고 하는, 체재 내부의 배반자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넉넉히 방증한다.


 좌파들의 관점에서 강남 좌파는 조금 유별난 별종들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강남"의 관점에서 강남 좌파는 실제로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가장 증오스러운 대상이다. 태영호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선택하는 지난 총선의 결과에서 보듯, "강남"의 집단의식은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의 비이성을 발휘한다. 그리고 조국은 그 스스로가 오랜 기간 활약해온 강남좌파요, 실제로 민주당 정권의 핵심으로서 그들의 기득권을 뒤흔들며, 검찰과 언론의 가족 파헤치기 과정에서 그들이 공유해 온 입시 부정 행태를 드러내고 공론화시킨 원흉이다.


 특히나 기득권에 속한 명문대생들이 조국과 그의 자녀의 입시 부정 논란에서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은 양면적이다. 그들 자신은 실제로 명문대에 합격한 승자로서 부모 찬스를 쓴 타인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러나 본인들이 부모 찬스의 수혜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그런 담론이 형성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다. 이것이 서울대생들이 조국에 대해 갖는 증오의 모태다.


2. 빼앗긴 조국 가족의 권리, 그리고 복권

 

 이렇게, 언론권력, 검찰권력, 정치권력, 자본 기득권 권력까지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조국 사냥의 거대한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사냥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21세기 한국사의 굵직한 한 단면이다. 총선을 앞두고, 그리고 지들 멋대로 조국을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리한 탓인지 조국 일가 죽이기에 권력 카르텔은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실제로 조국 가족은 너무나 큰 것을 잃었고, 잃고 있다. 학자로서의 능력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으나 정경심 교수는 동양대 최성해 총장이 사건에 뛰어들어 허위진술을 남발하다가 자멸하면서 앞으로 거취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동양대가 정경심 교수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지 모르는 일이고, 그것에 맞서 다시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까지 어떤 노력과 비용을 더 투여해야 할는지 알기 어렵다. 두 자녀의 정서적인 고통과 그간 겪었을 불편함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 자신의 꿈을 꾸며 다른 학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살아왔을 그들의 신상이 대중에게 공개되고, 자신이 접해본 바 없는 거대한 규모의 폭언과 조리돌림을 당했다. 조국 자신도 학자로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평생이 부정당하며 자신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겪는 이 모든 고통을 맨 앞선에서 감당해야 했다.


 이 모든 폭력, 그리고 그들의 빼앗긴 권리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 검찰은 무리한 수사, 무리한 기소, 무리한 구속을 해선 안되었다. 언론은 허위 과장보도, 받아쓰기, 속보와 단독 경쟁, 과잉보도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자본권력에 속한 대중은 적법하지 않은 검찰과 언론의 부당행위에 눈을 돌린 채로 조국 가족을 함께 비난하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 모든 불법과 부정이 조국 일가를 대상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작동시킨 각 권력의 동기와 동력이 살아있는한 누구에게나 다시 복제되어 재현될 수 있다는 현실을 명백히 경고한다. 지난 시기 노무현을 대상으로 했던 카르텔의 폭력, 세월호 유족들을 대상으로 하여 쏟아졌던 폭력, 유시민에게 가해졌던 그들의 창날이, 또다시 우리들 중 누구라도 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과 가족을 해친 각 주체들을 추적하여 책임을 묻고,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고자 힘쓰는 조국의 노력은 개인의 피해복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시민사회 일각에서 “조국백서”를 편찬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래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가장 거대한 권력주체들의 유착이었고 개인을 향한 이유없는, 그리고 잔인한 폭력이었다. 박멸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엄단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는 누구의 삶을 이처럼 잔혹하게 유린하는 일을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조국 스스로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탁월한 법학자, 특히 형사법 전문가로서 자신과 일가를 할퀸 기득권의 폭력의 부당함을 법의 시선에서 죽 지켜보아왔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은 자신의 권리를 중심에 둔 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멈추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법학자로서 조국의 인식에도 반하는 일이며, 엄존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불법에 대한 또다른 침묵인 탓이다. 아버지 한사람을 빼곤 평범하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던 한 가족이 검찰과 권력, 그리고 자본에 위해 낭떨어지 중간쯤까지 떨어졌던 이번 일처럼, 조국에게 발생했던 일들이 다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3. 조국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만큼


 그러니, 우리는 조국의 삶이 본래의 삶에 근접해지는 딱 그만큼 안전해지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와 함께 현행 제도 내에서도 명명백백히 따질 것을 따지고 바로잡아야 한다. 제도 이전에 우리 국민의 평균적 윤리와 양심의 수준에서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감히 발생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 아래 자행된 폭력이나, 국민 여론이라는 허울로 치장된 비이성 또한 낱낱이 재검토되어야 마땅하다. 검찰의 기획에, 언론의 허위보도에 부화뇌동한 것일지언정 그들의 행태 또한 그릇된 것임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런 대중의 비이성은 가장 위험한 폭력이다.


 조국 가족이 이번 사건을 겪고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지위에 비해서 실제로 청렴하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온 덕분이라는 점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일가족의 모든 과거 행적을 탈탈 털리고서도 무사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최근 사립대학 감사에서 발각된 연세대의 대규모 부정행위처럼, 조국과 그의 가족에게소 일부의 비위가 실제로 있었다면 그 가족은 끝내 파국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꾸로, 일말의 부정 없이 살아남아 거대권력의 결탁을 폭로하고 역습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한 조국에게 우리는 이미 큰 빚을 진 것이 되어버렸다. 그가 조금의 불법이라도 저질렀다면. 그가 검찰과 언론의 결탁에 끝내 패배했다면, 그 거대한 권력의 유착은 크나큰 승리의 과실을 누리며 우리 사회 속으로 다시 암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국민들의 삶을 대상으로 한 그 칼날을 여전히 드러낸 채로.


 그러니 우리는, 조국의 권리, 그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훼손되어왔고 이제부터 어떻게 복구되는지, 그 과정과 절차를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조국은 이미 우리의 삶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우리의 삶을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그와의 싸움에서 검찰과 언론, 그리고 기득권 집단이 투쟁하여 사수하는만큼, 우리는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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