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자녀교육을 위해 뭘 해야하느냐.
"성경이요."
벌써 한 5년은 넘은 이야기입니다. 옆자리 선생님의 권유에 낚여 지역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양 강좌에 자봉단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5회 가량 주최하는 일이었습니다. 강사진 중 한사람으로 당시 꽤 잘나가던 교사 출신 교육법 작가를 섭외하게 되었고, 우리 강좌의 마지막 연사로 그 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강의 시작 전부터 꽤 길게 줄을 서서 책에 서명을 해주시던 그 작가의 강연은 최악이었습니다. 강연장엔 기백명의 교사들이 한창 바쁜 6월 말에 저녁 시간을 내서 모여 앉아있었고, 그분은 소위 지식인이라면 가장 해선 안될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안읽으셨겠지만,"
강연장을 꽉 채운 청중들이 굳이 교사가 아니라 다른 직종의 근로자 혹은 노동자라 할지라도, 저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온 사람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이 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극한의 경쟁사회에서 인문학과 교양, 수준 높은 독서는 쉬운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 어느 가정, 어느 개인이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인문학 공부법으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는, 교사 출신 작가가, 각자 치열히 하루 하루 살며 저녁시간을 쪼개 강연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거들먹거리며 "여러분은 안 읽으셨겠지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지극히 인문학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죠. 게다가 강의 자체도 알맹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문학의 역사에 대한 짧으면서도 지루한 설명 뒤에는 자기 연애담으로 남은 시간을 채웠습니다.
그 화룡점정은 바로, 강의가 끝나고 한 청중이 질문을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다른 여러 질문에 그리 쓸모없는 답변만 중언부언한 그 작가는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글쎄요...논어, 장자...여러가지 있지만 성경이요." 라고 답을 한 것이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관점을 떠나 과연 스타 인문학 공부법 작가에게 그 청중이 과연 "성경이요."라는 답변을 기대하고서 인생의 책을 물은 것이었을까요? 정말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추천하고픈 책이 많아서 그 자리에서 여러가지 책을 소개하며,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스스로 찾게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은 그날 그 작가는 레미제라블을 두꺼운 완역본으로 읽었다는 것을 자랑한 것 말고는 제대로 인문학 도서를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간 없는 인문학, 공부 없는 공부법, 그리고 아이 없는 육아
개인적인 경험을 확대해석해서 "공부법 저자들이 다 이러니까 믿지 마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이 상황이 육아와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각과 실천의 한 단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인문학 공부법 스타작가라는 그 작가의 어디에서도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책도 그렇더라구요.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공부법 책에 실제 공부의 가치는 담겨있지 못합니다. 공부법의 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적으로는 한 인간이 자신의 교육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독서가 필요하고, 그러나 공부법 도서는 한 권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이 그렇듯 자녀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방대한 분야입니다. 그리고 부모 자신이 평생의 학습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교육관을 어느정도는 확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법 책은 여기에 상품으로써 시장에 출간되어 흥미를 끌어야 하지요. 하부르타, 독서교육, 외국어 공부법 등 하나 하나 솔깃할만한 아이템으로 학부모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 발달은 그 모든 공부법 책의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지요. 한 아이는 수십권의 책보다 방대한 숙제로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교육 자체가 사회에 대한 인식, 지식에 대한 인식, 역량에 대한 인식 등 굉장히 광범위한 공부를 요구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번째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의 학습경험, 그리고 공부법 도서를 읽으며 갖게 된 자신의 교육관으로 학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이게 옳아."라는 생각을 형성하고, 그것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공부가 아직 짧다는 의심을 하지 못하고서, 스스로 공부법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확신,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은 아이의 반응이 틀렸다는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자녀 교육의 근거로 삼기에는 우리가 읽어온 공부법 책들이 너무나 부족한데도 말입니다. 학부모님들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아이의 목소리라는 답안지를 외면하고, 자신이 읽었던 모범정답만을 신뢰하기 쉽습니다. 공부 없는 공부법이죠. 눈 앞에 있는 아이의 반응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까지 읽어왔던 공부법 책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아동 없는 육아입니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세가지 조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말은 뭐, 블랙유머긴 하지만 꽤나 우리 교육의 본질을 명확하기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재능과 역량 따위, 정보력과 재력을 쏟아부어서 얼마든지 사교육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우리 사회에서는 믿고 있다는 것이죠.
공부법이 아니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간단하게 표를 통해 학부모의 역량을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는 전문적 자본입니다. "엄마의 정보력"! 교육에 대한, 육아에 대한, 사회에 대한 학부모 본인의 전문적 지식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공부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자본"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설명이 조금 복잡합니다.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정도의 개념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경제적 자본입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이죠.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전문적 자본과 병행되는 문화적 자본입니다. 전문적 자본과 충돌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수준, 어떤 종류의 문화에 속해있는지를 의미합니다. 굳이 돈이 없는 저소득층 가정이라고 해도 부모와 자식이 민주적이고 상호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가정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일상 속에서 같이 캠핑을 가서 가재를 잡고,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등의 풍성한 문화생활을 아이와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문화적 자본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의 인성과 적성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칩니다. 한 눈에 아이가 어떤 집안의 어떤 문화 속에서 길러졌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죠. 좋은 문화적 자본을 가진 아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칠 줄 알고, 성급하게 자기 이야기를 마구 하기 전에 경청할 줄 알고, 결국은 선생님들이 자기를 믿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참 귀하죠. 특히나 넉넉하지 않은 가정인데 저런 품성을 지닌 아이들이 참 곱습니다.
네번째는 사회적 자본입니다. 역시 경제적 자본과 호응하는 자본이기도 합니다만, 굳이 경제력이 없더라도 함양될 수 있는 자본입니다. 부모와 가정의 사회적 네트워크죠. 사실은 부자들의 가장 큰 입시전략이기도 합니다. 부유층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진로분야를 정해두고 그 분야의 지인을 멘토로 삼아, 중학생 즈음부턴 사무실에 봉사활동을 맡기거나 하며 아이의 진로계획을 가다듬습니다.
그런 지인이 없다라면, 우선 조리원 동기들과 지속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갖고서 생일이 가까운 또래친구들과, 가까운 동네에서 꽤나 오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도 있겠죠. 이것도 좋은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친척들과 관계만 좋더라도 사회적 자본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죠. 추석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소를 찾아가서 성묘를 하는 것이 아이에게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하고,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공부법 책이라는, 학부모의 전문적 자본이 다는 아니라는 이야기
당연히 저 네가지 자녀교육의 자본이 모두 풍성한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 집들이야 뭐 SKY 보내고, 유학보내고, 판검사 의사 시키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할 일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학부모님들은 자연히 교육의 전문적 자본에 투자하고 과몰입하게 됩니다.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과소평가되죠. 그러나 전인교육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학부모의 자본은 저 네가지 정도 분류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문화적 자본을 갖춘 학부모는 아이를 균형감각 있는 교양인으로 기를 수 있습니다. 굳이 사교육에 큰 돈을 쏟아붓고, <SKY캐슬> 에 나온 입시 코디네이터 따위를 만나지 않아도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사회적 자본을 갖춘 학부모는 아이의 시각을 틔우고, 적극적으로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꼭 엄마 아빠 친구들 중에 무슨 판검사에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주변 어른들에게서 장점들을 찾아가며 자기의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비하여 다시 전문적 자본은, 그것에만 집중하기에는 학부모 본인의 노력이 생각 이상으로 크게 요구됩니다. 시간이 굉장히 여유가 있으셔서 홈스쿨링을 직접 시키시는 상황이 아니시라면, 사교육으로 향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렇게 경제적 자본의 싸움으로 자연히 흘러가면, 좋은 경제적 자본을 갖춘 가정이 월등한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으로 우리 아이들을 찍어누르게 되는 것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판단에 대한 고려도 전문적 자본에 포함되겠군요.
공부법만을 파기에는 학부모 본인의 부담과 고민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쉽게 답이 나는 싸움은 절대로 되지 못합니다. 아니, 학부모가 가질 수 있는 전문적자본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의 경험에 고착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럴 땐 공부법 책을 놓아 두고 차분하게 자신의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검토하시면서, 새롭게 아이와 나의 관계를 고민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