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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1. 2020

<놀면 뭐하니>가 보여주는 미래교육의 모습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배우고, 스스로 평가받는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인 금요일, 케이블 채널의 M카운트다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비, 이효리의 싹쓰리가 음악방송 1위를 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24시간 뒤인 오늘 저녁, <놀면 뭐하니> 본방에선 방송 말미에 M카운트다운의 무대영상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와! 싹쓰리가 당연하다는듯 1위를 했네요. 신인상이다 가요대상이다 농담처럼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면 뭐하니>는 싹쓰리 전부터, 그 그 그 이전부터 굉장히 큰 가능성을 품은 프로그램으로 애초에 기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면 뭐하니>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교육의 모습에 대한 상당히 재미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오늘은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인터넷 방송과의 교합을 꾀한 TV프로그램은 이전부터 꽤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있겠지요. 스튜디오형 개인방송의 포맷을 공중파로 옮겼고, 그 포맷에 머무르면서 더 발전하지 못한 프로그램입니다. "마리텔"의 원본이라고 할 1세대 인터넷 개인방송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BJ는 각자 자기 분야의 방송을 진행하고 방송 플랫폼은 다양한 BJ에게 방송 채널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시청자들의 수요를 끌어들였죠.


 <놀면 뭐하니>는 2세대 인터넷 개인방송의 포맷을 방송에 옮긴 시도입니다. 10년 이상 인터넷 방송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생겨난 흐름이 방송에 반영되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갖던 인터넷 방송인들이 방송을 오래하면서 방송 자체에 전문성을 갖고, 다양한 방송 포맷을 시도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대도서관"이 대표적인 케이스겠죠. 게임방송 BJ가 방송 능력을 키워 진행자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굳이 다양한 채널을 찾아보지 않아도, 자신이 선호하는 몇가지의 개인방송 채널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면 뭐하니>는 2세대 인터넷 개인방송의 발전한 포맷, 유재석이라는 최고의 예능인에, 방송국의 기획력과 시스템이 결합된 프로그램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죠. 오늘날에 이르러 인터넷 방송과 "공중파"라는 이전의 구분은 사실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유튜브가 현재의 방송 제작진과 방송 시청자들 양쪽을 만족시킬 미디어 시스템과 수익구조를 마련해서 그를 통해 너 많은 방송컨텐츠의 생산과 송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놀면 뭐하니>는 첨단의 미디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답게 미래의 시대상과 교육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의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지식 부가가치 중심 생산 경제

2. 현상 기반 학습 목표 설정

3. 프로젝트 기반 학습 과정

4. 교과는 없다! 학습자 중심의 지식 큐레이션 체제

5. 평가의 주인은 누구일까? 학습자 중심 평가


1. 지식 부가가치 중심 생산 경제

 일찌기 <부의 미래>에서 앨빈 토플러는 "프로슈머 경제"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생산자(프로듀서)와 소비자(컨슈머)가 결합된, 전문적인 생산자=기업이 아닌, 개인=소비자가 개인의 정보지식을 기반으로 재화와 가치를 생산하고, 발전된 사회적 연결망과 물류혁신을 통해 그러한 생산-소비 체제가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다만 이 프로슈머라는 용어가 친절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지요. 굳이 하나의 개념어로 표현하자면 "지식 부가가치 중심 생산 경제" 정도가 적절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수 있게 되는 가장 핵심 요소가 바로 지식입니다. 유시민이 자신의 전문성으로 개인 방송에서 기성 언론을 훨씬 뛰어넘는 파급력을 발휘한 바 있지요. 4차 산업혁명으로 미디어 기술이 눈 부시게 발전하여, 개인의 지식과 역량이 아무런 장애 없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고, 그 지식이 많은 대중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수익이 창출됩니다. 지식이 부가가치를 발생시키고, 그것이 경제효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한사람을 중심으로 방송이 진행됩니다. 십수년 동안이나 예능계의 1인자로 군림한 유재석의 전문지식이 있기에 가능한 형식입니다. 초창기에 셀프카메라 형식으로 방송이 진행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잘 드러냅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일단 유재석이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 뭘 할 수 있는지 덩그러니 카메라를 쥐어주었습니다. 잘 하지 못했죠. 그것은 유재석이라는 학습자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만,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 지식 부가가치 중심 생산 경제가 운영될 수 있습니다. 잘 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앞으로 공부를 해나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어찌되었든, 이러한 1인 기업의 형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가진 나라이고, 개인의 지식정보 역량을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굉장히 일상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될 것입니다.


2. 현상 기반 학습 목표 설정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대략 파악하고 나니, 이제는 제작진들이 하나 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유재석에게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기획들이 상당히 창의적이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입니다. 최초의 기획인 "유플래시"의 경우 정재형, 유희열 등 유재석과 함께 셀프카메라에 출연한 음악인들이 반영된 기획입니다. <비긴 어게인> 등의 버스킷 음악 프로그램의 모티브도 보입니다. 이어서 최근의 트로트 유행의 흐름을 반영하여 "뽕포유"가 방송되었죠.


 프로그램의 큰 줄기가 있다기 보단, 그때 그때의 흥미, 관심사에 따라서 프로그램이 기획됩니다. 이런 특징은 "현상 기반 학습"이라고 하는, 북유럽의 교육 조류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http://webzine-serii.re.kr/%EB%AF%B8%EB%9E%98%EB%A5%BC-%EB%8C%80%EB%B9%84%ED%95%98%EB%8A%94-%ED%95%80%EB%9E%80%EB%93%9C-%EA%B5%90%EC%9C%A1%EC%9D%98-%EC%83%88%EB%A1%9C%EC%9A%B4-%EC%8B%9C%EB%8F%84-%ED%98%84%EC%83%81%EA%B8%B0/


 현상 기반 학습이란, 학습자가 주변의 "현상"들에서 학습 목표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여름엔 해가 더 늦게 질까?" "왜 두발 자전거는 달리는 동안 넘어지지 않을까?" 등, 학습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학습의 목표로서 정규 교육과정에 배치하고,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학습자가 스스로 품게 된 호기심을 공부의 주제로 삼는 것이기에 학생 한사람 한사람에게 최대한의 교육의 자율성과 주체성이 부여됩니다. 우리 교육의 화두인 "개별화" 또한 크게 성취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현상 기반 학습은 다음의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이어집니다.


3. 프로젝트 기반 학습 과정

 <놀면 뭐하니>에서 방송 기획을 그때 그때 회의를 통해 도출하고 수행하듯, 자기 주변 현상에서 교육 목표를 찾아내 설정해낸 아이들은, 역시 <놀면 뭐하니> 처럼 일정 기간의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배워나갑니다. 현상 기반 학습이 "왜?" 라는 호기심을 추적하는 과정이라면, 프로젝트 기반 학습은 "무엇을 어떻게?"라는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에서 학습자들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수행합니다. 기업경영의 방식에선 일반적인 것인데, 이것이 학교 교육현장에도 상당히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의 고등학교 동아리나 봉사활동, 진로활동은 이 프로젝트 형식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학습자의 스토리를 평가자에게 보여주기도 수월하고, 결정적으로 학습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수행능력을 길러왔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교과는 없다! 학습자 중심의 지식 큐레이션 체제

 현상 기반 학습과 프로젝트 기반 학습의 과정에서는 교과의 구분은 사라집니다. 학습자의 흥미를 채워나가는 "단원"들만이 산재할 뿐입니다. 함수를 배우고, 방정식을 배우고, 그래프와 삼각함수, 미분적분을 배워나가는 그러한 교과체계는 미래교육에서는 상당히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수능 형식의 획일적인 평가가 아닌 다면평가 체제에서는 개별 교과의 통합적 이해가 불필요하기 때문이죠.


 시기와 순서도 그저 학습자가 정합니다. <놀면 뭐하니>에서 라면을 끓였다가, 하프를 배웠다가, 라디오DJ를 하다가, 다시 치킨을 튀기는 것처럼 그때 그때의 현상에 맞추어, 장기간 단기간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그것에 맞는 지식을 구하여 배우면 됩니다.


 정규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따르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중등교육의 뜨거운 화두인 "고교학점제"도 학습자 중심의 지식 큐레이션으로 나가려는 시도입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문과, 이과만 나누어서 모든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배우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최소 공통과정만 같이 이수하고, 학교 전체 수업 과목의 절반 이상을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단, 이 학습자 중심의 지식 큐레이션이 지나치게 특이하면 학습자 본인에게도 교육조직에게도 좋지 못하겠지요. 학습자 중심의 지식 큐레이션을 지원하는 공간에서는 이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조정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를 먼저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학습자의 진로나 적성에 따라 학습계획을 대부분 제시해서 제공합니다.


5. 평가의 주인은 누구일까? 학습자 중심 평가

 마지막, 라면을 끓이고, 드럼을 치고, 하프를 배우고, 댄스뮤직을 함께 연습하는데, 평가자가 없습니다. 당연하죠? 유재석이 무언가 시험을 볼 나이도 아니고, <놀면 뭐하니>는 EBS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놀면 뭐하니> 속에 평가가 없느냐, 혹은 지금까지의 교육에 대한 논의에서 평가가 별것 아니냐, 하면, 그건 아니죠.


 한국 사회는 평가공화국이라는 말이 적절할만큼 모든 교육체제가 평가에 맞물려 있습니다. 교육열이 아니라 평가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수능 때문에 중등교육이 왜곡되고, 왜곡된 중등교육 시스템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특목고, 국제중을 들어가기 위해 또 다시 고교입시에 골몰하고, 특목고 입시학원에서 우월반에 들어가기 위해 또 평가를 치르지요. 그리고, 이 모든 평가 과정에서 티끌만한 오류는 송사 거리가 됩니다.


 한국처럼 평가를 중시하고, 과장된 평가에 대한 생각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에서 "학습자 중심 평가" 같은 상상력은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유치원 때 다들 해봤으니까요. 발표회죠.


 학습자 중심 평가의 일반적인 형식은 발표회입니다. <놀면 뭐하니>가 무대공연을 하는 것은 수차례 나왔죠. 발표회를 찾은 청중들은 학습자의 성과에 대해서 점수를 메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뻐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라면 특집, 치킨 특집에서는 손님의 입맛이 곧 평가기준이 됩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정해진 답이 없지만 알 수 있죠.


 정리하자면 학습자 중심 평가란, 평가 목표를 학습자에게 강제하지 않고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합니다. 학습자는 자신의 평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역량을 길러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평가 목표를 달성할 시기를 정해 외부에 공개합니다.


 평가 점수가 아닌, 타인의 피드백과 그에 대한 관심이 학습자의 학습의 동기가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피드백과  스스로의 달성 목표에 대한 판단으로 학습의 결과를 평가하게 됩니다.


 이해가 어렵진 않으시죠?


 <놀면 뭐하니>에서 이러한 미래교육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제작팀이 미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갖추고 숙의체제에 따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산업의 미래상에 대한 성찰이 <놀면 뭐하니>라는 결과물이고, 김태호PD와 유재석 본인의 입장으로 치환해보았을 때 이 프로그램 자체가 현상 기반 학습, 프로젝트 학습, 학습자 중심 평가 체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을 표방하고 있는 이런 프로그램이, 실제로 세대를 아우르는 교육적 관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 참 유별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이 학습자 멋대로 하는 평가가 말이 되나"싶으신 분들을 위하여 책을 한권 소개합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학교, <올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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