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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7. 2020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 안에서

결국 소심한 아시안으로 되돌아가긴 했지만,

 헬싱키를 떠나던 비할 바 없는 화창한 날씨와 함께했다. 이미 3일간 매일같이 걷고, 걷고, 또 걸은 도시였지만 우리는 지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하여 헬싱키 천문대 방향, 수오메닐라에서 바라보아지는 해안선을 코스로 잡았다. 오후 2시쯤에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10시에 출발하여 가볍게 서너시간 산보하는 코스. 바깥양반은 전혀 계획이 없었기에 모처럼 내가 동선을 정했다.


"오 저기 분위기 괜찮은듯."

"응 좋아."


"여기 카모메 식당에 나온 카페 같은데? 보자...어 맞는듯."

"가즈아!"


 요트로 가득한 아늑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카페 카루셀과 카페 우르술라가 나온다. 더운 날씨에 땀도 식힐 겸 두곳을 차례로 들러 빙수와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둘러봤다. 땅은 넓고 도시는 아름다운데 사람은 드물다. 수도권 근교에 이런 카페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할 텐데, 바깥양반 손에 이끌려서 핫플레이스라는 식당과 카페에서 굳이 3,40분씩 대기줄을 서야 하는 곤욕을 치르지 않아 다행이다. 한가하고 한적하게 숨을 돌리다가 여객선 시간에 맞추어 슬슬 일어나...

긴 개뿔. 너무 멀리 왔다. 올라가는 길이 또 3,4km나 된다. 원래 계획보다 빠르게 언덕길을 넘어가서 호텔로 돌아갔지만, 벌써부터 무거운 캐리어 하나씩을 각각 들들들 끌고 항구까지 30분 가까이 걸어가야 했다. 우리가 그렇지 뭐. 우리가 거의 막차였다. 이미 대부분의 승객은 배에 타서 텅텅빈 통로를 통해 스톡홀름으로 가는 여객선에 오른다. 


"맨 아랫칸이지? 당연한 얘긴가."

"응 어우 추워 에어컨 좀 꺼."


 가장 저렴한 맨 아랫칸인데도 꽤나 방은 아늑했다. 창도 없고 좁은 침대는 2층으로 나뉘어 내가 위에 올라가야 했지만 15만원에 이동 경비와 숙박비를 꾸릴 수 있고, 무엇보다도, 카지노와 면세점까지 갖춘 호텔 수준의 여객선의 시설들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으니까. 비행기와 열차, 여객선과 버스까지 모든 이동수단 감안하여 여행계획을 짜야 하는 것도 유럽, 특히 북유럽 여행의 난이도를 높이지만 나에겐 바깥양반의 신묘한 능력이 있어서 그저 열심히 캐리어만 끌고 다녀도 안심이었다.

"우와 우와 맥주다 맥주."

"하나씩 마셔?"

"응 음식들은 비싼데 그래도 맥주는 가격대가 괜찮네."


 뭐라도 먹을까 하며 식당 층을 둘러보다가 선미에 위치한 맥주가게에 멈춰섰다. 나는 산뜻한 라거에 바깥양반은 애플사이다. 이미 여객선 곳곳을 둘러보며 한껏 기분이 들뜬 참이었기 때문에 나는 파아란 바다와 하늘을 보며 맥주의 향에 푹 빠졌다. 금새 첫잔을 비우고 핀에어 항공기에서부터 먹고 있는 카후르 맥주를 하나 더 시켜 자리로 돌아왔다.


"나 좀 추운데 오빠 더 마실 거야?"

"어? 응 나 여기 너무 좋은데 한잔만 더 먹고 들어가면 안돼?"

"그럼 오빠 마시고 들어와 나 객실에 있을게."

"들어가게?"

"사진도 정리하고 할 거 많아. 이따가 노을 질 때 맨 윗층 가서 더 놀자."

"응 알았어 이것만 마시고 갈게."


 졸지에 바깥양반이 남겨주고 간 애플사이다까지 남은 한 손에 쥐고 잠깐 혼자 있게 되었다. 하긴, 바깥양반도 오늘 아침 8시엔가 나와서 오전 내내 걸어다녔다. 아직 시차적응도 완전히 되어있지 않은데다가 백야 덕분에 매일 밤 10시 넘어서야 숙소에 돌아와서 잠을 청하고 있으니 지칠만도 하지. 게다가 배에 타서 한시간 가까이 구경을 다닌 참이었다. 


 오랜만에 혼자다. 환상적인 맥주, 환상적인 풍경을 혼자 즐길 수 있게 된 기쁨에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끼고 비스듬히 긴 의자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음악을, 이 순간에 더해서 화룡점정을 하는 찰나에,


"좀 옆으로 옮겨주실라우?"

"에? 아. 아아 네네 물론이죠."


 백발에, 파마머리에, 안경에,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노부인이 내 발치에 서 있었다. 나는 황망히 몸을 일으켜 자리를 내어드렸다.


"아-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 할머니는 어디 분이세요?"

"나는 핀란드 사람이지. 남편이랑 여행 가는 중이우."

"아아 수오미 분이시구나."

"허허 맞아요."


 나는 술이 약하다. 맥주 두잔, 그리고 세잔째를 몇모금 마신 정도인데 술기운이 올랐는지 못하는 영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두 사람, 게다가 핀란드 노~부인과, 그 나이의 절반정도 되는 아시아인이라니, 이런 경험은 예상도 못한 일. 바깥양반과 여행을 다니다보면 가뜩이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일도 많지가 않고 말이지.


"할머니 보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나이 먹으니까 가족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홀홀...가족은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하지. 결혼은 했수?"

"네네."


 나는 손을 들어 결혼반지를 보여드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 나는 깔깔대며 마치 할머니에게 재롱을 부리는 손자처럼 열심히 노부인과 대화를 나눴다. 술기운 탓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나는 많은 경우에 어른들에게 쉽게 친근함을 느낀다. 그것은 외가보다는 친가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들의 영향이다. 힘들어도 평생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신 여덟남매는 지금 세월 속에 하나 둘 자리를 비우고 계신다. 우리 아버지는 그중에서도 막내인 탓에 육친을 잃는 고통을 누구보다 많이 겪으실 일이 남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둘째 큰아버지께서 상병이 되셨을 때 막내고모께서 전화로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리셨다 한다. "아이쿠 어머니 아버지가 주책도 모르시고."라며 둘째 큰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는데, 막상 휴가를 나오셔서 헤실헤실 웃는 우리 아버지의 아갓적 모습을 보니 그게 그렇게 좋으시더라고 하니, 이렇것도 다 혈육 간의 정이고 가족일테지. 그러니, 우연히 나란히 여객선 의자에 앉게 된 나와 이 노부인이더라도, 각자의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서로에 대한 친근함을 느끼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가족이 우리에게 있기에.


"아 저기 내 남편이 오우."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시오."


 인자한 노부인에 비하여 반바지 노신사의 얼굴은 무뚝뚝했다. 마침 자리를 비켜드릴 좋은 핑계가 생겨 나는 벌떡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술기운에 벌개진 얼굴로 또 긴 인삿말을 건냈다. 


"할아버지 아내분과 대화가 뜻깊었어요 그리고 영원한 건강을 빕니다."

"고맙소."

 

 무뚝뚝하시더니만, 역시나 짧은 인삿말. 그러나 나는 일말의 쪽팔림이 그래도 살아있어서 빠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바깥양반에게 달아났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길고 긴 노을을, 끝도 없이 바라보다가 객실로 돌어왔다. 다음날 아침 배에서 내렸을 때 저 멀리에 다른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두분을 보았지만 이를 어째, 나는 술이 깨었고 다시 평범하고 소심한, 영어 따위 못하는 게 편한듯한 아시아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어 같은 줄이었다거나 해서 대화를 걸기 쉬운 상황이었다면 인삿말을 더 나눴겠지만, 그러기엔 영 어려운 거리이기도 했다. 내가 잠시 고민하며 빤히 두 부부를 바라보고 있을 떄 노부인께서도 이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리기도 했지만 나를 알아보았을지는 모르겠다. 여행에서 흔히 만나곤 하는 짧은 인연. 그러나, 그날의 대화를 잊어버리기엔 그 하늘도, 그 바다도, 그 맥주도, 그리고 술에 취해 느낀 가족애의 독특함도. 어느것 하나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기억이랄까. 이것도 다 바깥양반 덕분인듯은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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