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Nov 10. 2020

밤 9시가 되었으니 더 늦기전에 돈까스

뒷다리 하나에 돈까스는 5인분.

 나는 집에 와서 카레가루에 재워둔 고기를 꺼냈다.  바깥양반과 저녁 산책을 다녀온 시간은 밤 여덟시 반. 오늘은 돈까스를 만들어야 한다. 금요일에 손질한 고기를 더 미뤘다간 상해버릴 것 같아서다. 싱크대에 조금 남아있는 식기를 재빠르게 설거지하고, 가루가 담길 스테인리스 볼은 마른 수건으로 샥샥.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며 천천히 계란, 튀김가루를 정리했다. 나의 이 좁은 주방은 언제 넓어질까.

 바깥양반이 심심해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대여섯장의 돈까스일지언정 옷을 입히는 과정은 시간이 제법 들어간다. 왜 돈까스냐 하면 두부조림을 위해서 몇차례 사곤 했던 뒷다리살을 보다 잘 활용하고 싶기 때문. 대략 위의 그림처럼 다릿살은 세종류 정도로 나눠서 활용할 수 있다. 나도 바깥양반도 껍데기 구이를 좋아하는데 고깃집에서 얇게 껍데기만 벗겨서 파는 것보다는 생고기집에서 비계까지 두툼하게 붙어서 나오는 것이 훨씬 맛있어서 좋아한다. 그런 껍데기를 어떻게 먹어보나 싶어서 몇차례 껍데기를 사서 먹어보기도 했는데 영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뒷다리살을 통으로 사니 이렇게 먼저 껍데기를 따로, 비계까지 붙여서 손질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마다 칼을 갈기도 하고.


 그 다음으로는 비계와 비계 방향 살이다. 돼지갈비살이나 항정살처럼 지방이 살 속에 마블링된 살이 아니라, 순 비계와 순 살코기가 딱딱 갈라져 있다. 이 부위는 구이나 볶음으로는 여러모로 별로다. 탕수육거리로도 탐탁지가 않다. 그러나 두부조림에 곁들여서 넣기엔 가장 좋다. 그래서 비계와 살코기를 1:1로 균형있게 깍둑썰어서 소분냉동해둔다. 한달에 한번쯤 하나씩 꺼내서 두부조림을 만들면 일주일은 맛나게 먹을 수 있다. 


 그러고 남는게 순 살코기 덩어리인데 이게 그동안은 처치곤란이었다. 돼지기름이 나지 않아서 볶기도 어렵고, 탕수육이나 볶음요리를 하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고 맛이 영 좋지가 않다. 탕수육은 역시 사먹는 게 최고지. 그러면 이 살코기를 어떻게 하느냐...하다가 떠오른 것이 돈까스였다. 까짓거, 만들지 뭐.


 장모님께서 건강에 좋다며 사주신 양파즙이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아있었고 카레가루는 찾아보니 없길래 지난번에 마트에서 큰 놈으로 한봉지 사왔다. 아 그리고, 돈까스 두드리는 망치도 샀다. 이 망치가 정말 중요한 것이 내가 신혼 때 몇번 만들어본 돈까스들은 도통, 튀기고 나면 튀김옷과 갈라져버리고 속까지 익지도 않아버리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시험삼아 딱 두장만 만들어서 튀겨봤는데, 망치로 어지간히 두드려서 옷을 입히니 거짓말처럼 튀김옷이 딱달라붙어서 예쁘게 튀겨졌다. 사람들이 뭔가를 발명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모두 일리가 있는 일들인가보다. 돈까스 두드리는 망치를 진작에 샀더라면 그동안 더 맛있는 집밥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나는 차분하게 하나 하나 재운 고기에 순서대로 옷을 입히며 생각했다. 

 뒷다리 한 덩어리에서 조림용 고기를 떼고 남은 게 한 대여섯조각이다. 손바닥보다 살짝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한끼 먹기 딱 좋다. 1년에 한번꼴로 엄마가 돈까스를 한통 만들어서 눌러주셨는데 사이즈가 조금 큰 편이다. 큰 솥에 튀기면 기름이 처치곤란인 것이라, 조금 작은 사이즈가 알맞다. 적당한 노력과 충분한 보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갓 옷을 입힌 생 돈까스가 내 손에 쥐어져있다는 것이다. 


 이걸 튀길까 말까. 시계를 확인하니 딱 9시. 본죽 죽통을 재활용한 것이라서 다섯장 정도를 차곡차곡 쌓으니 통이 꽉차버린다. 한장이 마침 맞춤하게 남았다.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는 것이 4시. 저녁 산책을 다녀와서 지금이 9시. 그 사이에 별다른 것을 먹지 않았다. 이거 한장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북

"마누라 지금 과자 뜯었어?"

"응."


 세상에나.


"아니이 내가 돈까스 한다고 했잖아."

"튀겨? 튀기는지 몰랐는데?"

"아니...튀길까 말까 했는데..."


 바깥양반이 출출한지 과자를 하나 뜯었다. 그래, 고민할 시간에 한 입이라도 더 먹자. 튀겨야지. 팬에 기름을 붓고 불을 올렸다. 


 맛집에서 판다는 두툼하고 부드러운 돈까스들은 수비드로 사전 조리를 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수비드에도 관심이 가는데, 공연히 고기만 많이 먹게 될 것 같아 사진 않았다. 가족구성원이 너댓은 되어야 돈값을 하지 않을까. 먼 이야기다. 그래도 그 마을 흉내는 내보고 싶어서 밥솥으로 하는 방법 등을 찾아는 봤다. 그렇게 만든 돈까스는 또 얼마나 맛이 있을까.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금 튀겨지는 돈까스는 정말 맛이 있겠지. 직접 탕탕 두드려 펴서 카레양념에 재우고, 갓 옷을 입힌 녀석이니까. 습식 빵가루도 아니고, 양념이래봐야 양파즙 약간에 생강청, 카레가루로 끝이다. 딱 하나 이 돈까스가 특별한 것이라면 얼린 적이 없다는 것 뿐이랄까. 딱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린 고기와 생고기는 천차만별한 식감을 보여준다.


 잠시 뒤에 나는 앞뒤로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키친타올에 꾹꾹 눌러 잘라서 식탁에 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 향긋한. 


이전 08화 나랑 결혼해요, 나 생선 잘 발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