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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6. 2020

나랑 결혼해요, 나 생선 잘 발라요.

배우자의 조건

“그랬으면 너는 외모도 되는 의사쯤은 만나서 결혼했겠지?”

“웃기넹. 애초에 외모 안되면 커트거든."


 평소처럼 나는 맞는 말이긴 한데 쳐맞는 말을 배포있게 내뱉었다. 바깥양반과 겨울 휴가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의 직업과 휴가 환경으로 화제가 이어졌고, 바깥양반이 나와 만나기 전에 현재의 직장에 정착했더라면 결혼도 좀 더 빠르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 결혼에 이르는 건 수 십 차례의 스쳐가는 인연 뒤의 일이니 말이다. 바깥양반의 외모로 보나 직장으로 보나 나보다는 괜찮은 사람을 골라잡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이런 농담을 종종 하곤 한다.


"아- 근데 역시 넌 의사는 안되겠다. 그냥 나처럼 교사가 딱이지. 먼저 퇴근해서 밥 살림 다 해줄 수 있고."

"돈은 필요 없어."

"그래 뭐. 돈은 잘 벌면 뭐해 집엘 못들어오면."


 그러니까 바깥양반의 경우엔 그럭저럭 우리의 살림살이에 만족을 하는 모양. 그리고 돈을 잘 버는 대신에 바쁜 남편보단 집에 단 한 시간이라도 일찍 들어오는 것을 더 바라는듯하다. 나이를 먹고 있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예전보다 외출을 줄이면서 그런 경향이 더 또릿해지고 있다. 최근엔, 토요일에 하는 진로수업이나 평일에 한두번 있는 방과후 프로그램도 그냥 좀 안할 수 없냐고. 야야. 코로나 시국에 애들 모이기가 좀 어려운 줄 아니.


 조건이 맞아 결혼을 했고 결혼 뒤에는 각자의 기대치를 다시 조정해가며 어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결혼이 순탄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연애 초반에는 바깥양반은 나에 대해"외모는 그럭저럭인데 머리 사이즈가 크다"며 진지하게 나를 애먹였고, 나는 사고방식이나 돈의 씀씀이가 맞지 않아 연애 중반에 바깥양반을 고생시켜 드렸다. 결혼에 다다르는 연애 후반의 지난함은 에휴 말을 말아야지. 그리고 나 역시 바깥양반에 대하여 남들만큼은 외모와 직장을 따지며 한껏 이기심을 부렸다.


 외모 말고 돈 말고- 생선살을 바르는 것이 조건이었으면 어땠을까, 서로에게.


 하고 나는 두툼한 가자미살을 바깥양반 밥그릇에 올리며 생각했다. 위 아래 지느러미를 살살 긁듯이 빼내서 몸통의 살점과 분리해낸다. 지느러미에 붙은 작은 살점들을 함께 입에 넣고 살살 발라낸 뒤에 빈 그릇에 톡톡 뱉는다. 엄마의 조기교육 덕분에 해물은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많이 먹고, 살뜰하게 발라서 먹을 수 있다. 이어서 나는 가자미 머리를 입에 물고 머릿살을 발라먹었다.


"은행원이라더니 갸가 너 좀 찾아본 모양이다."


 바깥양반과 아직 결혼 이야기를 하기 전의 일이다. 아버지 직장 친구분들을 통해서 중신이 종종 들어온 모양이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은행원이라고 만나볼 생각 있냐고 하시길래 예예 알아서 하세요 했더니만 한달 쯤 뒤에 아버지가 중신이 취소되었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야 바깥양반이랑 만나는 중이었으니 별로 관심도 없었지만 어른들을 통해서 맞선 비슷한 것이 오가다가 갑자기 엎어졌다고 하니 아버지는 조금 민망하셨던 모양이다. 은행원이다보니 맞선을 통해서 알아본 내 전화번호나 이름 등을 통해서 내 신용정보라도 알아봤나보다고 말씀을 하신다. 말도 안되는 추측이지만 그것이 가능한지를 따지기보다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자식이 결혼을 미루는 건 아닌가 하는 아버지의 자격지심에 대한 안쓰러움이 내게는 더 컸다.


 조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세상, 그렇게 마음보다 앞에 서게 되는 각자의 환경, 그리고 내가 따지는 것 이상으로 나를 따지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같은 것이 없는 순수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 대화, 그리고 결혼까지의 길은, 적어도 한국처럼 각자도생의 극한경쟁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너는 살점 먹어라 나는 꼬리 먹을게 하고 나는 이어서 바깥양반에게 큰 살점을 또 한점 올린 뒤 꼬리를 집어 대강 씹다가 뱉었다. 가자미가 싱싱하고 살이 실하다. 그리고 잘 튀겨냈다. 가자미를 뒤집고 나니 또 두툼하니 큰 살점이 있어 나도 그제서야 한점 물었다.


"맛있어?"

"응."


  생선 뼈를 모아 그릇으로 옮긴다. 가자미를 뒤집으면 새 살이 나오듯,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새로운 조건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결혼 전 따지고 들던 수십가지 조건들이 오히려 간단한 전초전이었음을 깨닫는다. 뒤집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뒷면처럼, 함께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배우자의 조건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아니지. 혹시, 생선 잘 바르는 사람이면 또 몰라.


 그에 비하면 바깥양반은 당연히 생선을 바르는 일 따위는 없다. 살을 대강 퍼먹고는 다 먹었다는듯 손을 대지 않는다. 돈은 필요없다고 말해주면서도 여전히 날 위해서 땃땃한 밥 한끼 차려줄 살림 능력을 발휘해주지 않는 너란 여자. 돈 필요 없단 얘기는 결혼 전에 좀 더 해줬어야지. 참아야 유지되지만 참고만 살면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기묘한 시스템 속에서 결혼 전 따져대던 조건들이 무의미해지듯, 결혼 뒤의 조건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무의미한 일이었음을 깨닫는 날은 과연 올까. 복잡하고 복잡한 결혼생활이 고작 생선 살 바르는 일처럼 수월하게만 들러가길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바깥양반에게 생선살 바르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결혼이 누구나 택하는 필수코스가 아닌, 그리고 출산과 육아는 더더욱 아닌 세상 속에서 점점 더 가벼워져 가는 결혼의 무게에 비하면 도리어 결혼의 조건은 빡빡해지고 있다. 세상은 각박하고 상대의 인격에 대한 보증은 어디에도 없기에 간단히 인격보다는 서로의 눈에 보이는 외모와 직업이라는 물질적인 가치에 경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한 없이 남의 일인 결혼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을 더하는 것이 우습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이렇게 생선가시를 가지런히 발라내며 “에헴 라떼가 되면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나 생선 잘 발라요, 나랑 결혼해요.” 라는 말이 우리 사이에는 오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 대신 누군가라도 그 대화를 통해 이후의 조건에 대해서 꿈꾸어보았으면 좋겠다. 외모도 현실 집도 직장도 모두 현실이듯 식을 올린 뒤에야 알게되는 잔혹한 현실이 생선 가시처럼 우리의 삶에는 숨어있기 때문에. 어쨌든 그 덕에 바깥양반은 가자미 구이를 편하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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