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돈까스 그 장대한 여정
프리비어슬리 온 공존'스 브런치(지금까지의 이야기)
프로주부 공존 씨(38세, 주특기 이민기 성대모사)는 12월 제주도의 겨울 칼바람 속에서 새벽 4시부터 대기를 해서 바깥양반과 연돈 식사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값싸고 신선한 돼지 뒷다리살로 찌갯거리와 돈까스 고기를 손질해두는데...
"오늘 저녁은~ 돈ㄲ" "싫어!" "...스...아니 왜애?"
"연돈을 갔다왔지 않느냐. 연돈 돈까스를 먹고 와서 오빠 돈까스가 입맛에 맞겠느냐."
"(침착)"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아니 빡이 친다. 내가 손수 만들어 튀긴 돈까스는 바깥양반의 연돈에 대한 연모와 상상이 실제의 경험으로 치환됨으로써 그 빛을 잃었다. 물론 애초에 <저렴함> 말고는 전문적 기술도 별다른 염지 방법도 없이 만드는 가정식 돈까스가 전문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니 그럼 애초에 집밥이 맛 자체로 전문점보다 맛있으면 내가 왜 남는 시간에 글이나 쓰고 있어!? 그렇게 빡친, 아니 침착한 나는 바깥양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내가 치즈돈까스, 만든다!
"근데 치즈돈까스가 맛있었어? 등심보다?"
"응."
"그럼 다음에는 내가 치즈 먹을게 네가 등심 먹어."
"싫어."
"(침착)"
퇴근길에 역에서 만나 함께 마사지를 받은 후, 나는 치즈돈까스를 저녁으로 차리기로 마음을 먹고 바깥양반에게 연돈의 치즈돈까스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바깥양반의 대답은 예상과 한치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치즈돈까스를 양보할 마음은 없구나. 다시 침착을 되찾고 나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차를 세우고 동네 마트에 들렀다. 치즈돈까스를 만들려면 모짜렐라 치즈가 필요하다. 통, 생, 모짜렐라 치즈.
"아오 빡쳐!"
"왜?"
"모짜렐라 치즈가 없어!"
"됐고 집에 가즈아!"
모짜렐라 치즈가 없다. 통으로 된 걸 사야 하나. 검색을 해보니 코스트코에는 판다. 친한 선생님이 회원권이 있어 종종 같이 가는데, 모짜렐라 하나를 사기 위해서 코스트코를 갈 만은 하지만...설마 다른 데서도 팔겠지. 굳이 코스트코까지 갈 것 까지야.
"아나 진짜 어이가 없네."
"없어?"
"없어. 왜 안팔아? 식자재마트에 식자재가 없어!?"
"엄청 웃기네 허허허허 날치알이나 사자."
그런데 오늘도 실패다. 이런 젠장. 올해 첫눈이 함박눈이라 정처없이 드라이브를 한바퀴하고 오면서 눈에 보이는 큰 식자재마트에 또 들렀다. 어지간한 대형슈퍼보단 훨씬 큰 마트여서 설마 여기에는 있겠지 했는데...있는 건 온통 슈레드 모짜렐라다. 하긴. 슈레드 모짜렐라면 모를까 통 모짜렐라는 일반적으론 수요가 없다. 수요가 없으니 마트가 입고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까 친한 선생님과 코스트코 갈 날짜를 맞춰볼까. 그런 고민을 더는 할 것도 없다. 모짜렐라 치즈를 샀다. 슬라이스치즈를 한장 한장 펴서 쌓아 꽉 눌러버리면, 덩어리처럼은 되겠지. 그리고 오늘 저녁 나는 드디어 수요일에 카레가루로만 염지를 해놓은 고기를 꺼내는데...
먼저 모짜렐라 슬라이스 치즈를 계획대로 한장씩 펴서 쌓았다. 몇장인지는 세어보지 않았는데 탁구공보단 조금 높게 쌓인다. 꾸욱 눌러준 다음에 칼로 4등분을 했다. 길쭉하진 않고 동그란 돈까스가 나오겠다.
다음으로 돈까스 고기를 꺼냈는데 여기서 문제가 좀 생긴다. 애초에 손질을 할 때 치즈를 넣어서 만들 생각을 안하고, 일반 돈까스 모양으로 손질을 해놔서 이걸 가지고 치즈 돈까스를 싸는 건 무리무리 무리데스요. 이미 염지까지 끝난 돈까스를 다시 칼로 저미고 육즙을 튀겨가며 망치로 다시 두들겨 폈다. 이게 다 바깥양반에게 연돈을 기어코 먹게 해준 나의...아냐...침착하자...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아아가파른이길을좀봐그래오르기전에미소를기억해두자아아아아
어찌어찌 네장을 겨우 얇게 저미고 펴서 감싼다. 고기가 치즈돈까스 치곤 너무 두꺼워 사이즈가 연돈 치즈돈까스보다 1.8배 정도 사이즈는 될 것 같다. 그럼 당연히 질길 것이다. 돈까스 용으로 일부러 비계도 남겨놓은 아이들이라서 치즈엔 맞지 않다. 약불에 오래 익혀야 할 텐데 너무 오랫동안 튀기면 치즈가 끓어서 빠져나올 것이다. 치즈돈까스는 정말이지 어려운 요리구나아- 하면서, 코스트코에서 제대로 된 모짜렐라 치즈를 사서, 고기도 제대로 손질할 날을 기다리면서 튀김가루에 최대한 빡빡 눌러서 치즈를 감싼 고기의 틈새를 빈틈없이 메웠다. 허술하게 손질한 상태여도, 튀김옷만 공을 들이면 치즈가 새어나오는 참사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중불에 퐁당퐁당. 역시나 튀김은 기름이 문제다. 내 깜냥이 허용하는 선에서 가장 큰 냄비와 가장 넉넉한 기름을 투자했지만 그래도 턱없이 기름이 부족해 돈까스가 잠기질 않는다. 기름이 부족하면 안에 모짜렐라까지 익지 않을 가능성, 높아진다. 오래 굴리면서 튀기게 되니 치즈가 새어나올 가능성, 함께 커진다. 그렇지만 신중하게 튀김옷의 상태를 보며 여러번 굴리고 굴린다.
그리고 갓 만든 밥을 볼에 꺼내 담았다. 바깥양반이 원래 오늘 저녁으로 주문한 메뉴는 날치알주먹밥이었다. 술집스타일의. 그정도야 간단하다. 점심에 마침 중국요리를 먹었다. 다져넣을 단무지가 생겼다. 갓 만든 밥이 지름해서 기분이 좋다. 여기엔 어리굴젓 하나 딱 올려먹어도 맛이 좋을 텐데. 튀김을 보며 그렇게, 갓 지은 밥을 식힌 뒤에 날치알을 아낌없이 올린다. 남은 것은 반으로 나눠 소분해 다시 냉동실에 넣었다.
"바깥양반! 바깥양반! 이리 와봐."
"왜에."
"두구두구두구 해. 빨리. 입으로.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두구두구..."
여러번 바깥양반을 부르니 바깥양반이 도도도 걸어와서 눈을 부빈다. 그새 졸고 있었니 너란 녀석. 나는 충분히 익힌 돈까스를 꺼내서 채에 잠시 걸러둔 뒤, 칼을 들어 신중히 밀어넣기 시작하다가, 앞뒤로 칼날을 밀었다가는 어설프게 뭉쳐둔 고기옷이 풀어질 것을 촉감으로 느끼고 단번에 칼날을 빡 밀어넣어 단칼에 잘랐다.
"오."
"요."
"성공인가.
"그런 것인가."
성공인듯하다. 모짜렐라가 그럭저럭 잘 녹았다. 고기도 그럭저럭 잘 익었다. 실제로 치즈돈까스에 들어가는 통모짜렐라가 아니라서 치즈가 지나치게 흐물흐물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합격이다. 결정적으로, 네 알을 튀기는동안 수습이 안될만큼 치즈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밖으로 삐져나온 치즈를 다 합쳐도 큰 강낭콩 한알 분량이 안된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걸 성공했으니 만족이지. 나는 바깥양반에게 잠시 쉬라고 말해두고 빠르게 날치알을 버무려 주먹밥을 만들고,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며 밥을 드시겠다는 바깥양반을 위하야 거실에 밥상을 편다.
"아주 짱이군요."
"아 근데 좀 질기네. 그리고 싱겁지?"
"괜찮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질기다. 두드린다고 두드렸는데 씹는맛을 살리겠다고 남겨둔 비계가 살코기에 비해 익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에 조금씩 걸린다. 그래도 바깥양반은 끈기있게 잘 먹는다.
"괜찮아 진짜?"
"응."
"흐응...맛있어? 케찹 줄까?”
"아니. 그냥 먹을게.”
"이번엔 테스트라고 생각해. 다음엔 코스트코에서 치즈도 사와서 제대로 만들어줄게."
"테~스트. 알았다 오바."
"내-가 말이다. 제목을 두가지 생각해봤는데."
"응?"
"기호 일번. 내가 너 연돈 먹여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리고 기호 이번. 내가 너 연돈까지 먹여줬는데."
"응? 뭐라고?"
"기호 일번. 내가 연돈 먹여준다고 약속했잖아. 난 개인적으로 일번이 좋다. 만들면서 생각한 게 그거거든."
"을 일번 해."
"그래. 그러자."
"아 배불러 다 먹었어."
"나 줘. 내가 먹을게."
나는 쏜살같이 바깥양반이 정성들여 젓가락으로 잘라내며 먹은 치즈돈까스 한입을 마무리했다. 치즈돈까스 만드는데 집중해 피클도 꺼내지 못하고 채소도 없는 허술한 밥상이지만, 이건 이대로 좋다. 아니 넘치도록 즐거운 저녁밥상이다. 내일은 또 한주의 시작, 그리고 겨울은 나날이 무르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