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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06. 2020

바깥양반에 대한 지식이 +1 되었습니다.

과자와 끼니에 대한 각자의 취향

"아니, 바깥양반, 과자 먹었어 또?"

"응."

"나 지금 밥 차리는 그 짧은 사이에 과자를 깠다고? 하나를 다 먹고?

"먹고 먹으면 되지."

"헐..."


 그날은 뭐였더라, 욕심을 내서 맛있는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화다닥 한창 밥을 차린 뒤에 바깥양반에게 거의 다 됐다고 말하려는 찰나에, 그리고 나는 보았다. 쓰레기통에 살포시 올려진, 신선한, 갓 뜯어서 비워진 작은 과자봉지 하나를. 나는 분명히 오늘 맛있는 걸 해주겠다고 미리 단단히 말을 해둔 터인데.


"아니...과자를 왜 굳이 먹어? 밥을 먹는데?"

"먹고 싶으니까."

"밥 먹기 전에?"

"응. 과자 먹고 밥 먹으면 되지 왜?"


  나는 밥을 먹으며 다시 캐물었고, 바깥양반은 또박또박 대답을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과자를 좋아하는 것은 이상한 취향이 아니지만 굳이 밥을 먹기 전에 왜 과자를 먹는 것일까? 한두번 당한 경우도 또 아니라서 이미 여러번 생각을 해보았는데도 말이지. 아니, 굳이 밥을 먹기 전에?


 나의 경우 끼니를 챙기는 것과 그것을 남겨서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살짝 쉰 음식도 참고 먹는 편이다. 지금이야 내가 차려서 내가 버리면 땡이니 그나마 덜하지만 결혼 전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남기고 또 버리게 될까봐 손이 큰 엄마의 국과 반찬을 싹싹 비우느라 과식을 하곤 했다. 엄마는 그럴수록 통 크게 더 많이 만들어두시곤 하셨는데 가끔은 이것이 나와 엄마의 승부인 걸까 싶을 때도 할만큼, 엄마의 손은 크고 그것을 책임질 나의 책무는 컸다. 그래서 과식과 체중조절은 나에게 힘든 과제였고 나는 이것을 "효자형 과체중"이라고 주변에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게다가 바깥양반은, 남편이 한 음식 아까운 줄을 잘 모르고 자기가 먹을만큼만 먹은 뒤엔 딱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거실로 가서 좀 쉬다가 나중에 작은 과자를 또 한봉지 깐다. 나는 음식을 할 때 손이 커지지 않게 주의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게 만드는 것이 성미엔 맞지 않는지라 두명 분량에서 조금 넉넉한 정도로는 만든다. 그럼 그건 또 내가 책임질 몫이 되지. 3년이 지난 요즘에야 조금 쿨해져서 탁탁 미련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잔반을 처리하게 되었다. 


 집밥과 살림을 책임지는 내 입장에서 바깥양반의 이런 식습관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지만 먹는 걸로 건드리는 건 개에게도 못할 짓. 여느 떄처럼 나는 그날도 바깥양반이 비운 과자봉지를 쓰레기통에 깊숙이 밀어넣고 식탁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집에 가면 뭘 하지. 삼각김밥을 또 만들어줘야 하나.)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이동시간에 맞추다보니 점심과 저녁 사이인 4시에 식사를 했고, 집에 다와 가는 시간은 8시 무렵. 목도 칼칼하고 배도 슬슬 꺼져가고. 바깥양반을 굶기는 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어 집에 가서 간단히 차릴 야식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틀 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참치를 짜서 마요네즈에 버무려 삼각김밥을 얼기설기 만들었다. 바깥양반의 초딩입맛에 잘 맞는듯했다.


"나 예감 좀 하나 꺼내줘."

"응."

 

 내 생각대로 바깥양반도 출출함을 느꼈던지, 곯아떨어져 자다가 눈을 부비더니만,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꺼내달라고 한다. 나는 손을 뻗어서 과자를 꺼냈고, 꺼내는 김에 내가 좋아하는 포스틱도 꺼내서 뜯었다. 그래서 집에 다와가는 그 시간에 우린 각자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예감을 다 먹은 바깥양반은 내 포스틱을 먹기 시작했다. 


"바깥양반. 이게 말이야."

"응."

"그, 과자 자체에 대한 식욕이란 게 있다고 해야 하나? 과일 땡기고 고기 땡기는 거랑 마찬가지로."

"응 나 예감 좋아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먹는 걸 끼니로만 보니까 과자도 먹으면 배부르게 먹고 밥 대신으로 삼고 말지. 원래 과자 먹고 밥 먹고 이런 걸 안하잖아."

"응."

"내가 손톱 물어뜯는 것도, 습관인 것도 있지만 그것을 함으로써 충족되는 기분도 있거든. 과자도 그런 것 같어. 과자의 맛이 있고 그걸 먹어서 느끼는 기쁨이 있고..."


 오늘 내가 깨우친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음식을 끼니로 구분한다. 군것질이라는 개념이 없는 상태에 가깝다. 과자라도 그것을 입을 대면 배부를 정도로 먹고 끼니를 대신하고 만다. 과일을 먹더라도 끼니 대신이 될 정도로 배부르게 먹는다. 객관적으로 내 식성이 오히려 바깥양반보다 이상한 쪽이다. 


 반면에 바깥양반의 식성은 군것질의 카테고리 안에서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유형이다. 에피타이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니, 내가 퇴근하자마자 요리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것이 바깥양반에게는 식욕을 동하게 하는 일이고, 내가 식사준비를 마칠 때까지를 기다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소량 먹어서 입맛을 돋우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배우고 자란 법도에 따라서 밥 먹기 전에 군것질을 하는 것을 마냥 터부시해온 것 뿐.


 나는 끼니가 되기에 충분한 분량의 스낵 과자인 포스틱을 먹으며 오랜만에 끼니 때 먹은 과자의 그 참맛을 새삼 느꼈다. 그와 함께 바깥양반이 그동안 보여준 식성을 새삼 이해했다. 내가 그간 해 온 고민과 궁리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이었는지도. 먹는 것처럼 세상 제멋대로 살면 살수록 즐거운 게 어디있다고 나는 바깥양반의 에피타이저 하나에 갑갑하게 굴었던 걸까. 


 바깥양반에 대한 지식이 +1 되었다. 딱 고만큼만 나 자신에 대한 시각도 조금 더 넓어진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엔 또 뭘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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