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아 다행이야, 성산왕갈비

어쩜 이리 똑같을 수가.

by 공존


"왜 찍어 간판은? 올리게?"

"뭐...몰리더라도...근데 뭔가 감동이어서."


따로 온 것이 3년. 바깥양반과 함께 온 것은 5년은 족히 되었겠다. 혼자서 감개가 무량해 주차를 하고 나서 간판부터 여러번 찍었다. 음식점에 가서 먹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좀처럼 없고, 쓰더라도 간판을 찍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식당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동안의 나의 감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좋아했던 그 시절의 성산왕갈비에 오랜만에 오니 뭐라도 한장 더 찍고 싶은 그런 마음.


딱 10년 전 요맘때다. 한살 위의 친한 형이랑 월화수목금토일 같이 술을 먹던 시절이다. 대학생 시절 빠듯한 용돈으로 어떻게 찰지게 술을 먹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같은 해에 정교사가 되었으니 그 기쁨이 비할 바가 있으랴. 마침 둘 다 연애도 안하던 참이니 매일 여기 저기를 쏘다니며 먹방을 찍고 다녔다.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구나 싶긴 한데, 딱히 SNS를 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먹는 게 좋았고 노는 게 좋았더랬다.


보통 메뉴 탐색은 나의 일이다. 친구들에 비해 미각이 좀 더 낫고 음식에 대해 까칠한 편이라 맛있는 집만 쏙쏙 잘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고, 베프놈들과 여행길에서 두어번 생바가지를 쓰는 것을 보아넘긴 뒤에 아예 내가 식당에 대한 총괄권한을 따낸 뒤로는 주변인들 모두가 나의 식당 검색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다.


형과의 월화수목금토일 술술술 역시 내가 십중 팔구는 새로운 식당을 찾아서 인도하곤 했다. 물론 월급은 제한되어 있으니 그렇게 만나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만 조금 괜찮은 안주를 먹었다. 그냥 집에서 접이식 테이블에 치킨, 페트병 맥주를 놓고 먹는 날들도 부지기수. 무려 전주에서 올라온 그 형이 몇차례 식당을 찾아서 끌고 간 적이 있긴 하다만 개중에는 완전히 웃긴 식당도 있었다. 감자탕과 보쌈이 무한리필이라고 해서 갔더니만 라면스프 국물이 나왔다던지 하는.


성산왕갈비는 그런 나의 맛집인생에 가장 큰 성공작 중에 하나다. 굉장히 신뢰하던 맛집블로거를 통해 알게 되어서 처음으로 형과 같이 가서 먹었고, 그 뒤로 따로 또 각자 열댓번은 가서 먹었을 것이다. 바깥양반도 물론 함께 갔다. 그리고 바깥양반 역시 "따로 또 각자"를 시전하시어, 여자 둘이서 돼지갈비 4인분에 공깃밥까지 먹었다나. 나는 결혼식 전에 식사대접 자리를 여기서 두어번 가졌다. 그렇게나 맛있는 식당이란 말이다.


그런데 내가 3년만에 이곳에 와서 더욱 감개무량했던 것이 뭐냐면.

고기 하나, 반찬하나, 그릇하나, 정말 고색창연하리만큼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의 정확히 그 반찬, 정확히 그 고기, 정확히 그 상차림. 똑같은 상추 똑같은 숙주나물. 정확히 똑같은 된장찌개에 느타리버섯. 가격은 먹고 나서 따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성산왕갈비는 돼지갈비 뼈대 하나를 통으로 내어 굽는데, 그 안에 마블링이 된 살점, 철분 함량이 많고 쫄깃한 붉은색 살, 쫄깃한 비계부위까지 다양하다. 이것을 사장님이 하나하나 다 구워준다. 돼지갈비 뼈대가 통으로 붙어있고 두꺼운 고기를 일일이 손질해서 서빙하는 집이라 저녁시간이 되면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때도 많았다. 그 맛이 다른 어지간한 고깃집에선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라 형이나 바깥양반이나 모두가 나를 따라서 열심히 이 식당을 다녔던 것인데, 어쩜 이리 간판 하나, 고기 하나, 실내 인테리어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일까.


돈을 번지 10년이 되어가니 이제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역시나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발견해 형과 몇번 다녀간 서대문의 순댓국집들이 있다. 한 곳은 정말 퀴퀴한 옛날식 순대국집인데 찾아낸지 1년도 안되어 없어졌다. 피눈물을 삼키며 옆자락에 있는 아바이순댓국집으로 정착했는데, 그곳도 서대문이 재개발되면서 한동안 없어져버렸다. 월화수목금토일 술술술이라면 월화수목금토일을 먹어도 아쉽지 않은 천하일미인데 아바이집마저 없어졌을 때는 또 얼마나 원통하던지. 다행히도 몇년 뒤 가게를 좀 더 키워 경찰서 뒤쪽에 다시 열었지만, 그때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버린 뒤였다. 각자 연애를 해서 평일에 만나기 힘들어졌고, 또 다른 술멤버인 97학번 형님은 이미 애아빠가 되어서...그만...


그렇게 아끼던 식당들이 사라지거나 변해가는 과정들을 보다가, 10년 전 그 모습에서 무엇하나 바뀌지 않은 성산왕갈비를 보니, 그 얼마나 반가워. 그 얼마나 고마워. 29살로 돌아가서 처음 그 갈빗살을 입에 문 것처럼, 양념장 아무것도 무치치 않고 돼지기름과 살코기의 육즙을 한 달음에 씹어삼키는 그 기쁨이 또 알마나 지극하냐.


조금 변한 것이 있다면 내 입맛인데. 한창 까칠하게 음식을 찾아먹던 시절에는 상추쌈이 고기의 원래 맛을 가린다고, 조금 맛있는 식당에선 상추쌈을 먹지 않았다. 대신 채소를 원래 좋아하기 때문에 고기를 삼킨 뒤에 샐러드며 쌈 따로, 또 고기를 따로 먹은 뒤에 물김치 따로. 그런데 조~금 나이를 먹고 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상추쌈이 세상 맛나다. 그래서 저, 통마늘을 고기와 올려 처억 쌈장까지 발라서 앙- 하고 입에 담아, 고기의 기름과 육즙이 밥알과 만나 어우러짐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느끼는 것이지. 10년, 세상은 변했으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여전하고, 나는 변하지 않은듯, 나이를 먹으며 이것저것 변하고 있구나. 부모님과 꼭 성산왕갈비를 가보려고 했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이제는 뭘 하더라도 가족이 우선이니, 다음에 성산왕갈비를 간다면 바깥양반과 단 둘이 되진 않겠구나.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기쁨들을 찾아서 말이다.

이전 12화바깥양반에 대한 지식이 +1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