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빠져나가. 흐른 자국만 남아.

가시버시로 산다는 것은

by 공존


"여기 잠깐 서봐."

"응?"

"잠깐만."


나는 바깥양반을 세우고 폰을 꺼냈다.. 두번째 컷에 바깥양반은 내 의도를 이해하고 발을 모은다. 나는 사진을 찍고 다시 주머니에 폰을 집어넣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손을 잡아보았으나 이내 손이 시렵다며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뭐야?"

"자 봐봐. 이거 물자국들이잖아."

"응."

"바깥양반, 여기 밀물 들어올 저 위까지 차. 보름달 때 밀물 겹치면 처 모래턱 바로 아래까지 찰 때도 있고."

나는 손을 들어 밀물에 젖어있는 백사장의 흰 선을 가리킨 다음, 다시 백사장이 끝나는 모래턱을 가리킨다. 소해의 격렬한 만조는 정말로, 캠핑장으로 사용되는 소나무숲 바로 아래까지 물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물이 저기까지 찼다가 결국엔 다 빠지고 물자국만 남잖아. 그럼 봐. 여기 조약돌, 조개들은 다 그 자리에 있잖아."

"응."

"힘든 일 있어도, 결국엔 썰물처럼 빠져나갈 거야. 그럼 우리는 오롯이 그 자리에 남아 서 있겠지. 그럼 단지 물자국은 남을 거고."

"응."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조금 춥다. 바깥양반이 어깨를 움츠리기에 나는 그녀의 검은패딩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씌우고 계속 걸었다.


"방금 그 생각 들어서 사진 찍었어. 이겨내가 꼭 이겨낼 수 있게 도울거야."


우리는 조용히 백사장을 걸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비가 오더니 전날 남긴 해물들을 닥닥 긁어넣어 라면까지(두명이지만 세 개를 끓였다.) 끓여먹고 나오니 투명한, 화창한 하늘이 우린 반기고 있었다. 밤바다를 내내 쓸어내던 칼바람은, 한낮의 하늘답게 사라져있다.


누구라고 삶이 한결같을 수 있을까. 바깥양반에게 힘든 일이 요 얼마간 있었다. 나는 내 일로 바빠 돌보지 못했다. 가시버시 세상에 서로 기댈 건 서로 뿐인데 내 사정만 챙기기 위해 아내를 방치한 죄책감을 나는 느끼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바깥양반이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나는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자랐다. 그런고로 상대방에게 그런 "극복"을 강요하는 편협함을 뻔뻔하게도 달고 살았다. 바깥양반은 연애시절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거면 나도 좋아해줄 줄 알고 나를 대했다. "공감"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바깥양반과 나는 저마다의 강한 개성을 어렵사리 조율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삶의 역경이란 당연히도 어지간히 감추어져 있던 불협화음을 표면으로 꺼내어 우리에게 그 날것을 보인다. 그러므로, 그러니까.


"알았지? 물은 빠져나가, 흐른 자국만 남아. 물 흘렀던 흔적은 남지만 그건...우리가 살아냈다는 흔적이겠지. 밀물이 바깥양반 머리 꼭대기까지 차 올라있었어. 미안해. 몰랐어 내가. 대신에...썰물이 올거야. 잘 견디자. 우리가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기자."

"응."

"빠라바라바라밤 알아?"

"뭐야 언젯적."

"나만바라바라봐."


"피식." 하고 바깥양반이 웃는다.


삶에는 공짜가 없다. 미리 다 깨쳤다면 바깥양반이 감당할 어려움도 내가 느끼는 아픔도 줄어들 수 있도록 무언가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대개는 그런 깨우침은 한창이나 우리 모두가 서로를 지극히 괴롭힌 뒤에나 온다. 나는 어떤 남편이었을까 하는 질문 역시 그런 시간 뒤에나 찾아왔다. 나는 나대로의 밀물에 빠져있었다는 핑계로. 그러니 이제 다만 나의 할 몫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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