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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Sep 07. 2020

아이들은 활동을 소망해

코로나 따위 젠장맞을.


"선생님! 저희 회의 마쳤는데요!"


 이게 실화냐. 금요일 밤, 아니 토요일 새벽 한시에. 


"일단 대략적으로 컨셉이랑 일정은 나왔습니다"

"ㅋㅋㅋㅋㅋ대다나다. 고생했네."

"그런데 장비가 문제네요ㅠㅠ 미디어센터 한곳은 장비대여가 안되고, 다른 곳은 붐마이크가 대여 품목에 없어요. 그럼 음질이..."


 그것도 두놈, 아니, 동아리 임원 열명이 이 시간까지.


"장비는 내가 더 알아볼게. 공공 시설은 장비대여는 다 안될듯 해. 내일 아침에 장학사님한테 연락해볼게.'

"네!"


 금요일, 아니 토요일 새벽에 아이들과의 카톡 회의.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톡이 울린다. 


"어젯밤 회의록을 정리했어요! 여기도 올려둘게요!"

"헐...밤 12시에 저 많은 인원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올해 내가 학교홍보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마아침 올해는 코로나 탓에 정상적으로 중학교 대상 학교홍보 업무가 진행이 되지 못했다. 대신 지역교육청은 랜선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학교 설명 PPT와 홍보 영상을 월말까지 취합받기로 했다.


 그리고 짧은 방학이 끝나고, 개학 딱 삼일 째에 나는 공연 기획 동아리 학생에게 혹시 학교 홍보 영상을 만들 생각이 있느냐, 대신 봉사활동 시간 같은 건 부여해주지 못한다고 말을 했을 뿐인데...


"선생님 장비는 어떻게 되었나요?"

"선생님 예산은 얼마나 사용이 가능할까요? 공공시설은 회의실 대여가ㅠㅠ"

"선생님 예산안을 다 짰습니다! 봐주세요!"


 와우.


 보기 드문 자발성과 주도성의 폭풍을 맛보고 있다. 단순히 학력이 높고 자기 진로에 욕심이 있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 자기 진로에서 측정 가능한 역량을 갖춘 아이다. 그리고 덕분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내내 아이들과 랜선 회의를 계속하며 수십가지 안건을 처리했다. 교육청 산하의 공공영상 시설은 모두 막혔다. 대신 영상업체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통화해 사설업체를 추천받았다. 공공시설이 방역을 위해 운영을 중단했으니 사설업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 대신에, 훨씬 전문적인 장비를 아이들이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우와...이런 전문적인 장비까지요? 그런데 너무 전문적이면 저희가 못 쓸 것 같아요.ㅠㅠ"

"예산은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하니까 너무 전문적인 것보다는 되도록 단순한 게 좋지. 일단 너희가 하고 싶은 걸 다 골라봐. 그 다음에 줄여나가자."

"선생님 회의실도 빌려야합니다.

"일단 현금으로 내고 써. 월요일에 결재 받아서 바로 카드 들고 가서 긁고 환불해달라고 할게."


 학교의 홍보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사실 내가 혼자 만들었으면 돈 한푼 쓰지 않고 끝날 일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맡겨보기로 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수한 스파크 같은 상호작용과 아이들의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내가 컨트롤할 책임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은 최대한으로 촉진해야 하고, 그 비용은 통제함과 동시에 아낌 없이 지원도 해줘야 한다. 혼자의 판단으로는 어려운 문제다. 월요일에 모두 상의를 드리고 처리를 해야 할 터.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오늘, 교장 교감 두분 모두 학생들의 홍보영상 촬영에 수십만원이 소요되는 상황을 원만히 납득해주지는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공공시설도 학교도 이용을 하지 못해 급하게 회의실을 빌렸는데 그 비용이 10만원이 나왔다. 이것을 예산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비와 녹음실까지 합쳐진 예산의 규모와 코로나 감염의 위험은 아이들의 추진력과는 다른 속도를 학교에게 감당하게 한다. 학교는 홍보영상에 큰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고, 그러나 동아리의 아이들에게는, 이 영상은 꿈과 청춘, 그 이상의 것이니까.


 어지간한 일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덤벼드는 성격이지만 아이들의 추진력과 학교의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이들의 홍보영상이 학교의 교육계획을 뚜어넘는 가치가 아니다. 동시에 아이들의 창의력을 저해하는 그 어떤 장벽도 없어야 하기에 그 때 그때 순발력 있게 모든 것을 지원해줘야 한다. 물론 나의 행정지원도 모두 결재 절차의 선상에 존재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들의 금쪽같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9월까지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아이들은 모처럼 학교 홍보영상이라는 큰 기회를 만나 신이 났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은 스펀지 같다.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지극히 유연하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온다. 또다시 밤이 되어 아이들과 와이파이회의를 하고 있노라면 또 다시 어떻게 아이들 편을 들어줄까 불끈불끈. 


"내가 별명짓기 장인인데...파괴전차...폭주기관차...쇄빙선 중에 뭘로 할까?"

"네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켓으로 하자. 로켓장."

"ㅋㅋㅋㅋㅋㅋ"

"아뇨 샘 파괴전차로 해주세요."

"그러지 말고 너네 둘이 파괴전차 듀오는 어때."

"네에?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들은 활동을 소망해. 아이들과 꿈을 함께 꾸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당장 장비며 예산이며 해결해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아이들의 이 순간도 단 한번, 나의 이 시간도 단 한번. 벌써 9월이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생활이 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 


 내일은 아이들이 저녁 6시에 학교에서 회의를 하겠다고 한다. 간식이라도 준비해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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