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이고 상대적인 콘도그

바깥양반 도시락으로도 딱!

by 공존

"야야 이거 가져가."

"응."

"오리도 가져갈래?"

"응."

"떡도 가져갈래? 이건 해먹겠냐?"

"줘. 도시락으로 먹지 뭐."


토요일은 조카 두돌이었다. 가족이 모두 모여 한적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누나는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을 착착 내게 안겼고 나는 거절하는 일 없이 모두 받았다. 뭐든 받으면 먹는 거지. 어제 나도 장을 봐서 햄이나 비엔나소세지를 사두긴 했지만.


누나는 택배로 각종 포인트나 할인을 받아서 좋은 걸 경제적으로 사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평소에 내가 안사는 식재료들을 제법 산다. 지난번엔 베이크드빈과 소세지, 옥수수콘을 여럿 줬다. 베이크드빈과 소세지들은 부대찌개에 들어갔다. 평소에 먹을 일이 없다보니 요거 쏠쏠하다. 소세지는 또 따로 하루 이틀만에 먹어버렸다.


어쨌든 아침을 둘 다 거른 상태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고 집에 와서 나란히 늦은 낮잠을 자고 나서, 아홉시 넘어서 일어났다. 배는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바깥양반은 감기를 앓고 있는 중이라 저녁을 거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 안먹어도 돼?"

"응 배불러."

"그래도...먹어야지 싶은데. 저녁 약도 먹어야지.'

"응. 뭐 봐서."


바깥양반은 끼니 개념이 없는 걸까. 나는 끈기 있게 물어봤다.

역시 이럴줄 알았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딱 하나 남은 계란을 깨서 볼에 담고 거품기로 머랭을 치듯 탁탁탁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베이킹 파우더가 없다. 야밤에 즉석으로 만드는 거라서 숙성을 시킬 시간도 없다. 계란 거품만이 희망이다. 파파파파파팍.


머랭까진 아니더라도 샴푸 거품 정도로 몽글몽글해진 계란을 두고 냉동실을 열어 가루들을 꺼냈다. 핫케이크 가루를 튀김가루에 섞었다. 대충 반반. 이정도면 되려나. 달짝지근하니 핫도그반죽의 맛이 나길 기도하면서 냉동실에서 옥수수도 꺼냈다. 옥수수, 바깥양반이 참 좋아하는데요. 이 시점에서 미니핫도그를 콘도그라 부르기로 했다. 미국에선 우리나라 스타일 핫도그를 콘도그라 부른다는데, 막대기는 꼽지 않기로 했다. 번거롭기도 하고, 비엔나 소세지 크기라 한 입 딱 베어물고 나머지 한 입이면 끝나는 야식거리다.


옥수수와 국물이 조금 들어가서 반죽이 묽어졌다. 튀김가루와 핫케이크 가루를 조금 더 섞고, 찌득하게 소세지에 반죽이 달라붙을 정도로 더 저은 뒤에 소세지를 빠트렸다. 작은 냄비를 꺼내 기름을 콸콸콸 붓고, 옥수수까지 잘 붙어있도록 젓가락으로 살짝 돌려감아서...기름에 퐁당.


그런데 역시 나의 즉흥 레시피는 반드시 헛점이 있어서, 이날도 여지없이 두가지 정도 실수를 했다. 일단 반죽은 잘 만들어졌는데 빵가루 묻히는 걸 빼는 결정은 실수였다. 핫도그도 빵가루를 묻힌 것과 안묻힌 것이 있으니, 나도 빵가루 없이 튀겨보자 했는데, 그러는 바람에 튀김옷에 반죽만 두껍고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았다. 빵가루를 묻힌다면 손으로 조물조물 하면서 모양을 잡아, 예쁘게 튀겨낼 수 있을 텐데. 막대기도 꼽지 않고 젓가락으로 반죽을 묻혀서 튀겨내다보니 여엉, 못난이만두보다도 더 못생겼다.


두번째 실수는 기름의 온도였다. 계란거품을 잔뜩 내서 만든 튀김옷이라 비열이 낮다. 기름에 넣자마자 단숨에 겉면이 타버렸다. 아차 싶어서 바로 온도를 낮췄지만 기름 온도가 그렇게 확 내려갈리는 없는지라 두개 정도는 마치 흑병아리처럼 갈색 빛을 띈다. 두개는 내가 먹어야지. 다행히 나머지 콘도그들은 잘 튀겨졌다.


"맛있지?"

"응."

"옥수수도 넣었어.'

"어쩐지 반죽에서 옥수수맛이 나더라."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간단한 요리로 야식 한상을 맛있게 먹었다. 부드러운 튀김옷과 톡톡 터지는 옥수수알갱이에 짭짤달달한 반죽이 소세지와 잘 어우러졌다. 야식거리라서 많이 만들진 않았고, 여남은개 만들 반죽이 남았다.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계란을 까서 섞은 상태라 하루 이틀 안엔 먹어야 할 테다.


"내일 도시락을 결정했다.

"뭔데?"

"어제 했던 미니핫도그 다시 하려고."

"넹."


토요일 밤의 야식이었던 미니콘도그가 즉흥적인 시도였다면 월요일 아침의 미니콘도그는 상대적인 선택이었다. 바깥양반의 도시락으로 적절한 메뉴를 여러가지 고민하던 중, 다른 메뉴들에 비해서 먹기에도 좋고 만들기에도 재밌다는 결론을 내린 때문이다. 딱 도시락으로 바깥양반이 먹을 분량의 반죽이기도 하다. 애초에, 바깥양반 먹으라고 만든 것이니 도시락으로 싸주면 그것이 제일 의미있겠지.


그래서 아침에 한쪽에선 가지볶음을 만들며 한쪽에선 빵가루에 반죽을 조물조물 묻혀 기름에 튀겨냈다. 적당한 온도에서 튀겨지는 콘도그의 또다른 장점은 그냥 "데쳐내는" 수준으로 짧게 조리를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튀김옷이 갈색으로 무르익자마자 건져낸다. 겉면은 바사삭, 속은 촉촉 부드러운 콘도그 완성.


- 야야 밥먹어 밥

- 응 아직 일 많아

- 먹고 인증샷 보내라

- 알았어


감기 걸려서 끼니를 제때 먹으라고 보채는 것도 내 일이다. 그리고 토요일에 처음 만들었을 땐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요리가 제대로 만들어졌으니 빨리 바깥양반의 평을 듣고싶기도 했다. 나는 강남까지 출장을 다녀오면서 바깥양반에게 닦달을 했고, 퇴근길엔 마트를 들러서 도시락거리를 또 탐색했다. 이번에도 호주산 쇠고기가 반값 할인 중이다. 300그램을 4900원에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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