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피처럼 닭갈비처럼 계산같은건 전부 다 은행에다 맡겨

feat. 윤종신 <본능적으로>

by 공존

두 통, 만두피를 샀다. 한달도 지나지 않아 또 군만두가 먹고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만두 가지고 글을 쓰는 게 몇번째야. 전생에 왕서방이기라도 했었던 걸까. 만두가 주식이었다거나. 그런데 주식으로 먹어도 좋은 게 또 만두긴 하다. 비타민에 탄수화물에 지방에 단백질에...나머지 하나가 뭐더라. 아아 무기질. 콩에 풍부하다. 야 이거 정말 괜찮은 음식이네.


그래서 미리 만두피 두개를 사서는 앞다리살과 비지도 함께 해동하면서 이틀을 보냈다. 오늘은 방학하는 날. 그러니까 더욱 만두를 빚기에 괜찮은 날이다. 한가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방학을 맞아 바깥양반과 같이 마주 앉아서 사이 좋게 만두를 빚는 그런 그림. 짧은 휴식의 시작으로는 딱 괜찮은 메뉴다. 아삭임을 더해줄 숙주만 더 사서 집으로 향한다.


나는 당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퍽 좋아하지 않는 식감이기도 하고 탄수화물이란 점에서 눈속임을 하기 좋은 재료기 때문이다. 만두에 들어가는 당면, 순대에 들어가는 당면은 모두 영양불균형을 부를 수 있다. 아니 대체 왜 그리 당면을 여기 저기 넣는 것일까. 그 와중에 바깥양반은 떡볶이 덕후잖아. 그래서 야끼만두를 꼭 같이 먹곤 하는데, 거기에도 당면. 이래선 곤란하다. 역시나 좋아하지 않는 식감의 무 말랭이와 당면이 들어가는 만두보단, 내가 넣고 싶은 재료들로 꾸린 만두가 맛있지. 집에 와서 재빠르게 만두속 만들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엔 숙주같은 채소를 쓰지 않다 보니 터무니없이 많은 파를 썼다. 실수다. 만두에 무언가를 넣어야 한다면 숙주가 딱이다. 아삭이는 식감에 맛도 좋으니까. 김치를 좀 씻어서 쫑쫑 썰어넣을까 생각도 잠깐 했는데, 아무래도 숙주가 양이 꽤 많은지라 김치는 필요없겠다. 그리고 비지. 두부요리집에서 공짜로 얻어온 진짜 비지다. 지난번에 비지를 직접 만들었을 땐 재미는 있었지만 비지라기엔 거의 콩을 갈아놓은 모양새에 지나지 않아서 만두 속을 퍽퍽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었다. 멀쩡한 비지가 있으니 이번엔 그대로 써야지. 비지찌개 한번을 끓일 양 정도만 남겨서 다시 냉동실에 넣고는 볼에 담는다. 이제부터 바빠질 시간.


한 켠에서 고기를 썰어서 다지면서 한 켠에서는 숙주를 데친다. 풋내가 주방에 가득 피어오른다. 여름이 덥지 않아 다행이다. 한달이나 이어진 폭우 덕에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지만 피해가 덜한 지역에 사는 이로서는 선선한 저녁바람이 다행스럽다. 한 여름에 이걸 만들고 있노라면 땀이 뻘뻘 흐르면서 재료에 땀이 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을 할 텐데, 오늘도 비가 조금 내린 뒤에는 시원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어렵지 않게 숙주를 데치고, 고기를 다질 수 있다. 칼로 생고기를 다지는 건 꽤나 어렵다. 게다가 꽤 많은 양을 일일이 다져야 하니. 제법 고되다. 시간이 2,30분씩 훅훅 지나간다.


지난번의 퍽퍽한 만두속을 반성하며 이번엔 살코기만 넣지 않고 비계도 적당히 섞는다. 껍데기까지 붙은 앞다리 살코기들을 미리 잘라서 소분냉동중인데, 이렇게 만두에 넣을 적당한 비계와 살코기들을 잘라내고 나머지를 모으니 꽤 괜찮은 술안주 분량이 나온다. 비계가 넉넉히 붙은 돼지껍데기. 마늘이랑 같이 구운 다음에 간장을 휘 둘러서 한번 볶아내면 참 맛깔난 반찬이 된다. 이 아이들도 냉장고로. 다시 물이 끓어오르는 숙주를 돌리고, 돌리며 데쳐낸다. 금새 저녁 하늘 구름이 노을로 번진다. 그러나 흥이 나는 즐거운 노동이다.

고되게 팔에 힘을 주어 탕탕 도마를 두드린 끝에 만두속 완성. 부드러운 비지가 아삭한 숙주와 섞이며 손에 찰싹 달라붙는 반죽이 만들어진다. 중간중간 파가 녹색빛을 더한다. 탄수화물 빼고는 이미 다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할까나. 참기름을 휘휘 둘르고 마늘소금과 간장을 약간, 과감하게 뿌린다. 약간 짤까? 싶지만, 잘 가늠을 해보니 간이 과하진 않을 것 같다. 다시 반죽을 한다. 이제는 만두를 빚기만 하면 된다.


만두피 덕에 참 편해진 세상이다. 어릴 때 만두를 빚을 때면 큰 도마에, 밀가루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소모해가며 만두피를 반죽하고 자르고 빚어야 했다. 수지에 안맞는 노동이다. 이미 만두속을 만드느라 시간을 꽤 소모했지만, 만두속은 내가 직접 재료를 구성하는 창의적인 과정이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접 만드는 만두는 고기 자체가 훨씬 맛있다. 갈아서 만든 고기보다는 알갱이가 살아있고 당면 따위가 들어가지 않으니 풍성하다. 그리고 오늘은 비지까지 듬뿍 넣었으니 훨씬 맛이 부드럽고 좋을 게다.


만두속에 비하면 만두피는 순전한 노동이다. 재미도 없고 골치만 아프다. 계량 따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만두피의 수분을 조절하는 것도 골치가 아프고 양 조절이 어렵다. 번번이 밀가루반죽을 남긴다. 물론 그 반죽은 냉장고에 며칠 들어가 있다가 버려지는 신세가 되곤 한다. 그러나 파는 만두피 덕분에 나는 만두속을 꾸리는 즐거움은 고스란히 간직하며 골치 아픈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것이 한가지 더 있다. 닭갈비다. 닭갈비는 집에서 해먹기 쉽지가 않다. 다리살만 정형해서 파는 것도 흔하지가 않고, 그렇게 샀더라도 양념을 하는 게 쉽지 않다. 한번 해먹어봤는데 영 재미가 없고 수고에 비해 맛이 덜하다. 그런데 요즘엔 닭갈비를 양념해서 파는 마트들이 많다. 심지어 가격도 무척 저렴해서 1.8kg에 단돈 만원. 한번 사서 한 일주일 동안 서너번 배불리 먹을 수도 있고, 닭고기를 풍족하게 넣은 볶음밥을 즐길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동네에 매우 인기가 있던 춘천닭갈비집이 있는데, 학생들을 타겟으로 해서 닭철판볶음밥을 저렴하게 팔았다. 당연히 내 깜냥으로 그런 것을 사먹는 일은 없었고 누나가 한번 데리고 가서 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수능을 마치고야 친구들이랑 두어번 가서 먹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저녁시간이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바글바글하던 그 식당은 몇년 뒤에는 화장품 가게로 바뀌었다. 변함 없이 아이들은 무언가 저렴한 식당을 찾아 배를 채울 테지만, 그 맛난 철판볶음밥이 주던 만족감에 비하면야.

어찌되었든, 어지간한 요리는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고 해도 만두피와 닭갈비, 이 두가지는 사먹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은 요리들이다. 물론 집에서 내 식대로 장난질을 잔뜩 해서. 윤종신이 <본능적으로>라는 노래에서 "계산 같은 건 전부 다 은행에다 맡겨"라는 가사를 썼듯이, 만두피 정도는, 그리고 닭갈비 정도는 속 편하게 남이 해준 걸 먹어도 상관이 없을 테다.


잘 해동된 만두피를 꺼내서 착착 만두를 빚으며, 변함없이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툭툭 던지면서 그리고 나는 한가지 더, 은행에다 맡겨버리면 훨씬 편해지는 생각을 한다. 이 고된 노동을 누가 하면 어떻고 누가 또 안하면 어떠리. 바깥양반이 주방일에 서투르든, 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한두시간을 서있든 간에.


내가 좋아서 하는 요리들이라 늘상 집에 오면 한시간은 넘게 주방을 반드시 차지하고 일한다. 반대로,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은 1년에 다섯번을 넘기지 못한다.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돈도 아깝고, 먹고 나서 분리수거 폐기물이 발생하는 것도 아깝고 그것을 헹궈서 말려서 베란다에 내놓는 것도 아깝다. 다 아까운 일 투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다 나의 고집일 뿐이고, 시켜먹으려면 얼마든지 시켜먹자고 할 바깥양반에게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런 골치아픈 노동을 떠넘길 수도, 같이 하자고 강짜를 놓을 수도 없는 일. 덕분에 바깥양반은 자기 나름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또 혼자 고독히 주방을 지키며 음식을 다 만들고 나서야 바깥양반을 부르곤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같이 와서 한다면 좋겠지만, 못하는 걸 굳이 시켜가면서 서로 인상을 찌푸릴 것 까지야.


그러니 자연스레 계산 같은 걸 하지 않게 된다. 바깥양반은 바깥양반 나름의 방식으로 나에 대한 애정을 그리면 되는 것이고, 나는 내 방식대로 즐겁게 밥을 차리고 생활을 하면서 바깥양반에게 행복을 주면 될 일이니까. 서로가 더 놀고 덜 놀고는, 같이 사는데에 큰 문제가 되진 못한다.

만두가 다 익었다. 비지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열무김치를 꺼냈다. 맥주도 함께다. 방학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편하게 놀거나 할 일도 없다. 바쁜 날들에, 내 멋대로 일거리를 늘려댈 뿐이다. 그렇게 바깥양반과 비로소 마주앉아 맥주를 딱~ 따서는, 만두를 딱 베어무는데.


아 참 요리 참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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