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사님과 바깥양반, 그리고 가족이 된다는 것
"안녕하세요."
"어 어서와."
"야 수달이 너 그냥 내 딸 할래?"
"어 그거 좋다. 바깥양반 엄마! 해봐 엄마!"
"하아...동생아..."
명절 다음날 조카 생일 잔치로 하루만에 다시 집에 들렀다. 이번엔 누나와 조카들까지, 집안이 그득그득하게 찼다. 어린 시절 같네. 그런데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툭 던진 소리에 바깥양반은 멈칫했고, 나는 웃으며 받았고, 누나는 조용히 인상을 쓰며 타이르듯 말했다. 명절 중에 근무가 있어서 자리에 못한 매형을 제외하고 각자의 성격이 완전히 다른 어른들이 다섯이 모여서 떠드니 순식간에 시끌벅적. 그 말만 툭 던지고 바쁘게 엄마는 상을 차렸고, 나는 껄껄 웃으며 음식을 날랐다.
엄마는 결혼하고 시댁에 처음 얼마간 살 때 조금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어지간히 푸짐하게 차려드시던 외가에서 자라 시집을 오니 짜디 짠 깡된장국 하나에 쌈야채에 김치가 몇가지. 엄마를 잘 챙겨주시던 넷째 큰어머니께서, 꾹 참고 먹으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셨다고. 그러나 대전 외곽의 산골에서 한 평생 집안 살림을 챙겨온 친할머니를 엄마는 퍽 좋아하신 모영이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당신의 시어머니를 한번 흠잡으신 적이 없다. 실제로 할머니는 덕도 많고 음식솜씨가 좋으셨다고 사촌형님들은 이야기하시는데, 할머니 나이가 이미 환갑에 한참 넘기신 나이에 얻은 막내 며느리가 군소리 없이 일을 잘 했으니 미워하셨을 것 같지도 않다.
그에 비하여, 환갑을 넘겨 며느리를 본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 바깥양반은 만족스러운 며느리일까 하면, 그렇진 않다. 주말이면 화분을 사러, 그리고 조카들을 봐주러 누나네 가느라 바쁜 엄마를 모셔다 드리느라 결혼 뒤에도 내가 엄마와 둘이서 이곳 저곳을 다니는 일이 꽤 많은데, 말 수는 적지만 거칠 것도 없는 엄마는 내게 딱딱 자기 생각을 말씀하곤 하신다. 그래도 바깥양반에게 살림은 좀 가르치라시거나, 애 그냥 낳지 말고 편하게 살라시거나.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남의 집 귀한 딸이니 엄마가 바깥양반에 대해서 흉을 보는 일은 잘 없다. 흉을 봐서 뭐 얻어지는 것도 없다. 옛날 사람이고, 옛날 사람 그대로의 생각과 문화를 여러가지 갖고 있는 우리 부모님과 다르게 완전히 최신식 서울여자인 바깥양반은 결혼을 하기도 전에 "시월드"에 대한 이런 저런 걱정을 내게 전했고, 나도 부모님과 바깥양반의 그런 생각을 존중하여 시댁에 대한 특별히 어려움은 없도록 했다.
"동생, 내가 아빠랑 아무리 싸워도 그래도 친정이 좋고, 시어머니께 내가 아무리 막하고 시어머님이 나에게 잘하셔도 그래도 시댁은 시댁인거란다."
조카 생일상을 놓고 누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바깥양반과 우리 부모님의 문화적, 시대적 격차만큼이나 누나와 누나 시댁 사이의 격차도 제법 있는 편이다. 그리고 누나는 자기 나름의 선을 지키며 시댁과의 관계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니, 누나 입장에선 내가 "엄마 해봐 엄마!" 소리가 철이 없을 수 밖에. 그러니까, 남편인 나의 입장이나 시부모님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바깥양반에게 있어서 시월드가 시월드가 아닌 것이 될 리는 없다. 그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 경우에는, 최여사님의 몇년간의 지켜봄의 결과랄까. 막막하기만한 시월드로서 며느리와의 관계를 남겨두는 것은 그 성정에 걸맞지가 않으시니, 이렇게 성큼 발을 내딛는 것이다.
"수달아 우리 그냥 철 없이 지내자."
지난해 3월이었다. 대전에 결혼식이 있어 부모님을 모시고 바깥양반과 내려갔다. 친척 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올라가는 길에 닭도리탕을 먹고 가기로 했는데, 자리에 앉고 잠깐 뒤에 엄마가 슬그머니 웃으며 한마디.
사실 그 하루 전 바깥양반이 사고를 조금 쳤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친척분들이 스무분 넘게 모여계셨는데, 이런 왁자지껄한 집안 분위기를 처음 겪어본 바깥양반이 멘붕을 해서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통 못하는 둥, 꽤나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그 일로 나도 따로 화를 좀 냈고, 밤에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사촌누님이(그 누님은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두어살 많으시다.) "아가, 우리끼리는 이리 좋은 게 있단다."라고 또 타이를 정도였으니 바깥양반의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더욱 마음이 상하셨을만도 한 일이다. 그런데 엄마는 다음날 아침, 그에 대해선 한마디 없이 도리어 바깥양반과 바싹 앉아버린 것이다. 철 없이 지내자는 말로.
이번 명절날에도 그랬다. 이번엔 바깥양반이 잘못을 한 것은 없다. 도리어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서 밥술도 뜨지 못하는 몸으로 명절 한 주 전 대전 성묘 가는 길에 따라왔으니 오히려 꽤나 효도를 한 셈이다. 반대로, 3년간 며느리를 지켜보시면서 엄마는 바깥양반과의 관계를 짚는 것을 넘어서 바깥양반의 성장배경을 대략 읽어내시고는 오히려 이런 저런 타이름 없이 그냥 딸을 삼겠다고 내던진 것이다.
"수달이, 엄마랑 별로 정 없지?”
"어어 아마 그런 것 같아."
"그래. 외롭게 컸겠지 딱하게."
화분을 사러 둘이 차를 타고 가던 날 이런 식으로 삐죽, 엄마는 나에게 거침없이 그리고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을 해버린다. 나조차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바깥양반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긴 했지만 우리집처럼 서로 죽고 못사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던 모양인데, 그것을 고작 사위인 내가 소상히는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이 사는 나도 그럴진데 1년에 많이 봐야 대여섯번이었던 엄마는, 그것도 밥만 먹고 딱딱 일어나라고 하는 분께선 그런 건 또 눈에 보이시는지.
아무리 시어머니가 엄마라고 부르라 한들, 엄마와 같은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아마도 바깥양반이 엄마라는 호칭을 쓰는 일은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누나가 내게 말해준 것처럼 시댁은 시댁이고 친정은 친정이니까. 그리고 모든 남편들이 도의하는 바겠지만, 내 생각에도 바깥양반이 장모님께 대하듯 시어머니께 대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딸 같은 며느리가 세상에 어딨고 친엄마같은 시어머니가 세상에 어딨어.
그래도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톱니바퀴의 사이에 낀 나로서는 이런 변해가는 관계는, 퍽 재미있고 아리따워보이긴 한다. 꼭 시부모님을 좋아해서는 아니더라도 바깥양반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성실히 우리 집안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어딜 가자면 함께 가고 생전 처음 뵙는 어른께 인사를 드리라면 인사를 드린다. 내가 처가에 그정도로 성심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리고 최여사님께서는 이렇게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시면서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니, 앞으로는 더 가까워질 일들, 친해질 일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관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일 테니까.
"야 니네 빨리 일어나. 밥 다 먹었으면 일어나야지."
"네네. 바깥양반 가자!"
이렇게,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과 숙제를 남기고 이번 명절을 마쳤다. 나는 집에 가며 바깥양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또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엄마가 바깥양반에 대해, 바깥양반이 시어머니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