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아침에 싸야 제맛

그리고 난 직장에 2분 지각했다.

by 공존

"너 그럼 그동안 밥 어떻게 먹었어?"

"파리바게트에서 샌드위치 사먹었지."

"아...진짜 미안...아이고..."


바깥양반이 점심을 대충 떼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고 나서 바깥양반의 사무실에서도 드디어 식당을 가지 않고 따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왜 말 안해?"

"요즘 식욕도 없어서."


나는 도시락을 싸서 챙겨가면서도, 바깥양반이 따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잘 먹고 있는줄로만 알았다. 비록 재택근무도 섞어서 하고 있느라 1주일에 서너번이었지만, 내가 생활기록부 업무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동안에 바깥양반은 회의실에서 혼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니. 그런데 바깥양반은 딱히 점심을 도시락을 먹어본 일 자체가 워낙 없고, 그리고 출근길에 샌드위치를 사는 훨씬 간편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은듯했다.


"됐어 내가 싸줄게. 미안하다."

"응 고마워요."


그러나 나에겐 중요한 문제지. 나도 샌드위치를 좋아하지만, 알고서 먹이는 것과 모르고서 먹이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가뜩이나 외향적인 성격의 바깥양반이 사무실에서 사람들이랑 다 떨어져서 혼자서 샌드위치를 씹어먹고 있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외롭고 고독한듯했다. 말로는 별 티를 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싸주는 것을 더 좋아는 하는 모양인지,


"오빠 내일 도시락 해줘요-."

"알았어."

월요일에 재택근무로 집에서 쉬고는 잠들기 조금 전에 내게 말을 했다. 도시락을 부탁한다고.


화요일 아침의 도시락은 팬케이크였다. 팩에 애매한 양이 남아있던 우유를 붓고 나서 팬케익 가루를 부었는데 맙소사. 우유 양에 가루를 맞추니 말도 안되게 양이 많다. 그런데 아침식사를 또 따로 만들면서 팬케익을 하려니 정신이 없다. 팬에 확 부어버리고 신경을 껐다. 1.5cm는 족히 될 팬케이크는 그것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다소의 노고가 필요했는데, 다행히 뒤집는 건 성공했지만, 조금 토막을 잘라서 먹어보니 뭔가 질퍽한 느낌이다. 두꺼워서 속에 떡진 층이 있는 느낌.


- 팬케이크 잘 먹었어요.

- 응 근데 좀 질척거리는 식감 아니었어?

- 괜찮았어. 맛있었어.

- 내일은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거 해줄게!


그래도 바깥양반은 맛있게 먹었나보다. 둔감한 게 분명하다. 바깥양반은 내가 해주는 걸 보통 별로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오늘, 그러니까 이튿날의 메뉴를 정했다. 그것은 계란김밤이지.


왜 김밥이냐...하면, 바깥양반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에 하나가 계란김밥이다. 그래서 종종 해줬는데, 속재료를 다 채울 것 없이 그냥 햄 하나면 뚝딱. 계란 외피에 만족을 느끼도록만 해주면 된다. 그래서 어젯밤 나는 잠들기 직전에 밥을 안치고, 아침에 평소보다 5분쯤 일찍 벌떡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면서 따로 김밥을 쌌다.


팬에서는 김치찜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나는 볼에 밥을 덜어서 소금과 참기름, 설탕을 조금 넣고 슥삭슥삭 대충 버무린다. 날파리를 잡는데 식초를 다 써버려서 식초가 없다. 그래도 참기름 덕에 퍽퍽하진 않을 것이다.


햄을 구워야 하는데...지금 김치찜을 하고 있다. 3초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전자렌지에 굽기로 했다. 나도 편하고 좋지. 냉동실에서 김을 꺼내고, 발을 펴고, 대충 대충 김밥을 만든다. 햄을 토막내서 속을 올리고, 엄마표 피클을 꺼내서 오이를 몇개 골라 자른다. 상큼한 맛이 조금은 더해진다. 빠르게 두개를 말아낸 뒤에 계란 지단을 만들 차례인데...여기선 조금 문제가 발생한다. 계란을 하나만 하면 두개를 싸기엔 부족한 양이고, 두계를 하면 남는 양이다. 어쩌지?


이때쯤 김치 찜은 다 익어서 옆으로 빼내고, 어쩌지? 역시 또 잠깐 고민하다가 계란을 하나만 꺼냈다. 남는 것보다야 부족한 게 나을듯싶다. 애초에 김밥도 바깥양반이 좋아하게 만들어놨으니, 계란옷이 조금 부족한들....

계란을 잘 풀어서 반쯤 새 팬을 꺼내 붓고, 기름 없이 잘 펴서 바르면서 김밥을 올린다. 바깥양반도 드라이를 거의 마무리했다.


"슬슬 나와-."

"응."


슬쩍 매캐한 냄새가 나서 보니까 윽, 김치찜이 바닥이 탔다. 김밥에 신경을 쓰느라. 어쩔 수 없지. 김밥을 계란옷이 잘 입혀지도록 굴리고 굴린다. 대충 하나가 완성. 두번째 계란옷을 입히기 위해 붓는데...이런. 절반 남긴 줄 알았는데 1/3 알 수준이다. 계란옷이 반절도 안입혀질 참이다. 예상을 한 거긴 하지만 생각보다 조금 더 난감한 상황.


이쨌거나 저쨌거나 아침이고 고민할 시간은 없다. 계란을 하나 거 풀어서 다시 옷을 입힐 계재도 아니다. 그게 더 맛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대로만 계란옷을 입힌다는 느낌으로 김밥을 굴린다. 대충 두번째 계란김밥이 세미누드가 되도록 익힌 다음에, 첫번째 김밥까지 다시 팬에 올려 굴린다. 완성.

바깥양반은 꼬다리를 먹지 않는다. 꼬다리는 네개. 하나는 주워서 입으로 털어넣고, 나머지 세개는 내 도시락에 합한다. 내 도시락은, 아침에 새로 지어진 고슬고슬한 잡곡밥에 엊그제 한 솥(말 그대로 한 솥이다) 가득 만들어서 쟁여둔 두부조림이다. 이쯤이면, 바깥양반과 나 모두 즐거운 점심 한 상이다.


"꼭 챙겨가 도시락."

"응 다녀와요. 연락해."

"그래. 저녁에 봐."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머리를 감고 후다닥 채비를 해 집을 나선다. 학교엔 2분을 지각했고, 1교시를 끝나서야 머리가 말랐는데 온라인 수업을 위해서 헤드셋을 끼고 있었던 덕에 까치집이 되었다.


조금 전에 바깥양반이 도시락 잘 먹었다며 카톡을 보냈다. 김밥은 아직 따듯할 때 먹어야 가장 맛있지. 식어있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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