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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13. 2020

굴 굴러가유

찬 바람 쌀쌀하니 굴내음이 생각나.

 아침에 두 공기 밥을 퍼내어 넘은 밥을 득득 긁어낸다. 남은 밥들은 모아서 냉동실 행이다. 바깥양반이 외출이 잦던 예전엔 남은 밥도 많아서 냉동실로 들어가는 일도 많았는데, 코로나 덕에 외출을 팍 줄이시니 오히려 얼린 밥이 부족하다. 볶음밥으로 대충 떼우고 싶어도 얼린 밥이 없으니 밥을 해야한다. 그렇게 다시 빈 밥솥을 보며 저녁 메뉴를 그리면서 출근을 한다.

 

 하루 하루 추워지는 날씨가 체감이 된다. 오늘은 반팔에 홑잠바를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서는데, 피부에 착 달라붙는 찬바람이 영락없는 가을이다. 재체기를 하고 나면 코끝이 시린 날씨.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의 싸늘한 공기에 그만 하품을 멈추고 어깨를 움추리는 일기.


 그 사이에 바쁜 업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고, 집에 와서는 책을 보고 일에도 겨를이 조금 생겼다. 가을다운 소소한 일상이 반갑다. 주말에, 친한 선생님이 사과 따기 체험을 다녀온 소식을 전하고 그간 맛있게 얻어마셨다며 커피원두를 선물해주셨다. 심심하면 윗층에서 내려와서 커피나 좀 내려달라는 친구놈도 자기 여자친구가 사줬다며 묵직한 커피콩을 하나 들고 왔다. 겨울이 되면 발걸음을 종종 재촉하듯 업무에도 내년 준비에도 속도를 내야할 테고, 지금은 가을의 한가함을 만끽하는 아주 짧은 틈새. 콩이 넉넉하니 하루 종일 갈아서 이것 저것 맛본다. 집에 와서는 지쳐서 한시간은 그래도 엎어져 있다가...카페인을 보충해서 겨우 다시 책을 편다.


 가을이 절정을 향해가며 동시에 겨울을 예고하는 이런 날은 제철을 기다리며, 굴

 퇴근 길에 마트를 들렀다. 굴이 생각보다 비싸다. 그래도 이왕 발걸음 했으니 두봉을 샀다. 원래는 시장에서 사려고 했는데 도로가 좁고 밀려서 그만 어 어 하다가 수산물 매장을 차로 휙 지나쳤다. 에라이 하며 대형마트로 향했다. 그래서 그런가 가격이 마뜩찮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굴을 산 뒤에는 야채코너를 휘 돌면서 1+1로 할인하는 버섯을 샀다. 신선도가 떨어졌나보군. 버섯은 볶아서 넣어야겠다. 그리고...무. 그런데 무가 또 쓸다리없이 비싸다. 마트는 이래서 별로야. 집 앞에 야채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마트에서 못생긴 무가 4500원하는데 집 앞에선 2500원이다. 잘 생각했다.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한다.


 현미며 귀리를 불리기 위해 쌀과 함께 씻어서 팔팔 끓는 물을 부어두고 잠시 한숨 돌린다. 바깥양반과 각자 직장 이야기를 이리 저리 나누면서 체력을 보충한다. 나이로는 내 나이가 아직 한여름인데, 체력은 지금이 딱 가을철이다. 코로나 덕분에 운동을 못간지도 열 달이 되어 간다. 11월이 되면 마스크를 쓰더라도 운동을 꼬박 다니기로 바깥양반과 약속을 했다. 나나 바깥양반이나 이제 따로 건강관리를 해야 튼튼히 살 시기인가 싶다.


 그러는 사이에 배가 꼬르륵, 더는 쌀이 불기를 기다릴 일도 아니겠다 싶어 몸을 일으킨다. 무 상태가 썩 괜찮다. 싹싹 닦아서 껍질을 얇게 벗기고 채를 썰고, 느타리버섯은 밑둥을 잘라서 싹싹 닦아 들기름에 볶는다. 버섯에서 살짝 내음이 난다. 한 봉지에 두덩이 씩인데, 한덩이는 밥에 넣고 남은 한덩이는...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사실은 며칠 전에 만든 오뎅탕을 먹을까 했는데 뜯은 버섯은 처리해야지. 귀찮게 되었지만 내친 걸음이다.


 들기름에 볶아진 무에서 육수가 흘러나와 버섯을 적신다. 달달 볶다가 불려진 쌀에 붓고, 물조절을 적당히 해서 불을 올렸다. 설거지를 해 나가면서 굴을 씻었다. 마트 굴은 향이 덜하다. 그래도 한봉지에 4천원이나 하는 거라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맹탕이다. 시장에서 사는 게 나을뻔했다. 남은 한봉지로 굴밥을 해도 영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이거로는 튀김이나 할까. 어쨌든. 한소끔 밥이 끓어오른 뒤에 굴을 훌훌 올린다. 이제...된장찌개 차례.


 냄비에 물을 다시 끓이고 남은 한덩어리 버섯을 손질해 끓여낸다. 속성으로 후루룩 끓이는 것이니 다시다를 제법 넣었다. 그리고 집된장 약간. 느타리버섯보다는 송이버섯이 맛과 향은 좋을 텐데 대신 비싸고 손질에 손이 더 간다. 후루룩이다 후루룩. 속성으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차돌박이 대신에 우삼겹을 몇조각.


"일어나 이제. 밥 다 됐어."

"으응."


 조금 일찍 바깥양반을 부른다. 그 사이에 밥도 다 됐다. 파를 꺼내서 된장찌개에 약간. 그리고 잘게 다져서 굴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마무리로...김이냐 감태냐. 감태가 낫겠다. 밥솥을 치우고 약불로 감태를 살살 굽는다. 머리카락처럼 얇아서 감태는 잘못하면 타버리기 십상이다. 최대한 약불에 조심조심. 다 됐다. 감태까지 찢어서 밥에 올리고, 참기름 약간, 간장 약간.

 솥밥은 번번이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다. 무엇보다도, 맛있다. 시원한 무가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버섯과 굴은 비록 향이 좋은 상등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사스럽다. 여기에 감태의 향이 더해지니, 마치 태안에 가서 겨울 앞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기분. 뭐니뭐니 해도 굴은 참 맛있어.


 누룽지가 적당히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밥을 두둑히 먹어, 물을 부어 한번 끓여낸 뒤에 내일 아침을 기약하기로 했다. 내일 아침이면 차갑게 식은 숭늉에, 누룽밥을 샥샥 긁어내서 함께 먹으리. 그렇게 하면 또, 이게 딱 가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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