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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25. 2020

스콘이 익어가는 각별한 향기

이 냄새는 녹차스콘과 타로스콘

 그러니까 문제는 도시락이다. 바깥양반의.


 혼자만 도시락을 싸가다가 두사람의 도시락을 싸게 되었고, 이제까지는 나의 도시락 만들기는 퍽 간단했다. 그냥 대강 볶음요리를 양을 넉넉히 만들어서, 밥과 함께 적당한 락앤락 용기에 넣어서 얼리는 것. 그냥 통 하나 가져가서 점심시간에 해동해서 먹으면 되니까 얼마나 간단해. 원래는, 처음 급식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던 시절엔 양배추에 삶은 계란에 토마토에 올리브유까지 손이 많이 갔다. 그걸 2년 가까이 유지했던 것도 대단하긴 하지만 이제 못해 못해. 그런 거 못해. 그냥 내 도시락은 간단히 싸고 있었는데 말이지.


 바깥양반은 프로편식러에 입이 짧아서 내 도시락처럼 간단하게 만들어줄 순 없다. 그래서 별도로 메뉴를 고민을 해야한다. 그런데 그것도 타율이 높지가 않다. 나름대로는 정성 들여서 이런 저런 도시락을 겹치지 않게 만들어주는데 바깥양반이 남기는 경우가 꽤 있다. 못되어먹은 녀석 같으니. 어쨌든, 와플에 팬케익에 블린에 이런 저런 간단한 베이킹을 하고 있으려니 이것도 메뉴가 겹치고 스스로 질린다. 와플이나 팬케익이 아무리 편해도 매주 한번씩? 이게 문제다. 귀찮은 것보다 반복이 더 싫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스콘을 만들었다.

 스콘은 와플이나 팬케익과는 다르다. 당장 반죽부터 터무니없이 손이 많이 간다. 버터와 박력분을 버무려 손으로 일일이 부수어야 한다. 귀찮잖아! 그러나 따끈한 스콘에 잼을 발라 먹을 때의 기분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 마침 시간은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바깥양반은 바깥에서 밥을 오랜만에 먹고 올 예정이었다. 집에 와서 짐을 풀고 혼자 스콘 반죽을 하는 고독한 시간. 나만의 싸움. 아. 남자답다.


"아 배고프네. 만두 먹고 왔더니 양이 적었낭."

"그럼 스콘 해줄까?"

"응? 스콘 있어?"

"기~달려!"


 토요일 아침으로 스콘을 해주려다가 밤 10시를 넘겨 바깥양반이 출출해 하길래 나는 부리나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한 반죽을 빨리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당장 스콘을 굽고 싶었다. 뜨끈뜨끈한 스콘에 잼을 발라 먹는 바깥양반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바닥에 기름을 바르지 않아 비록 조금씩은 달라붙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성공. 따끈한 스콘을 야밤에 먹는 기분이라니. 이번엔 레시피를 제법 참고한 편이라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물론 계량 따위 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이상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버터는 아끼지 않고 썼기 때문에 맛이 나쁠 리는 없다.


"아 고민이네."

"응? 무슨 고민."

"스콘 할까? 스콘 할까?"

"......"


 그리고 다시 토요일, 거실에 나란히 깔고 누워서 기지개를 켜면서 나는 바깥양반에게 수작을 걸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콘을 하고 싶다. 비록 팔이 빠져라 버터를 치대야 하지만 나의 레시피를 완성하고 싶다. 길을 찾아가는 이 즐거움. 그리고, 내 상상력을 실현하는 그 스릴감.


 늦은 오후에 다시 볼을 꺼내 탁탁 버터를 잘랐다. 박력분을 붓고 한참을 치대고 치대다가 우유와 계란까지 부어 반죽을 하고 나서(약간의 우유계란물은 남겼다. 오븐에 넣기 전에 발라야 하니까.) 두 덩이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쪽 반죽에는 타로밀크티 분말. 다른 한쪽 반죽에는 녹차 분말. 스몰쿠킹 주제에 꿈도 크다. 이미 완성된 반죽에 다시 분말을 섞는 것이니 꽤나 힘이 들긴 하지만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각각의 반죽을 한참을 더 치대고 치대며 타로스콘 반죽과 녹차 스콘 반죽을 만들었다.


 스콘은 이래서 꽤나 재미가 있다. 발효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 내 성미에 맞다. 그리고 레시피도 간단한데 이것저것 장난을 칠 궁리를 많이 해볼 수 있다. 초콜렛을 칼로 다져서 반죽에 넣으면서, 다음엔 이 스콘 위에 마시멜로를 쿡쿡 꼽아서 구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바깥양반과 카페를 다니다 보면 당근 스콘도 있고 바질 스콘도 있고...재밌어!

 30분간 휴지 뒤에 전기오븐에 210도를 설정하고 30분간 굽는다. 금요일에 180도에 20분을 돌려보니 턱 없이 덜 익는다. 이유가 뭘까. 전기오븐이라 가스오븐보다 출력이 약한 걸까 아니면 예열을 한 10분 했어야 하나. 스콘이 꽤 두껍기도 하고, 그래서 안정적으로 시간과 온도를 설정하고 다시 자리로 와 게임방송을 보며 스콘이 익는 걸 기다렸다. 한 15분쯤 지나니, 고소한 버터 내음, 그리고 밀가루 반죽이 익어가면서 나는 풍미가 주방을 넘어 거실까지 전해진다. 온 집안을 채우는 따듯한 향기에 갑작스레 싸늘해진 가을밤이 아무렇지 않아질 만큼.


"오. 오!"

"왜?"

"기대해라."


 잘 익은 스콘을 보고 내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자 바깥양반이 한마디 던진다. 나는 신이 나서 핫초코를 덮힌 우유에 넣고 맹렬하게 휘저으면서 잼을 꺼내 작은 식기에 담았다. 뜨끈뜨끈, 갓 구워진 스콘을 조심스럽게 집어 접시에 올린다. 이번엔 기름까지 미리 발라놔서 톡톡 아래쪽을 들어내니 말끔하게 떨어져 나온다. 그렇게 바깥양반을 위한 토요일 저녁 밥상이 완성. 아직 남아있는 반죽은 차례로 구워서 다시 도시락으로 싸주기로 했다.


"바깥양반."

"뇸뇸...응?"

"맛있어?"

"뇸뇸...응 맛있어."

"매일 스콘 싸줄까?"

"응-. 괜찮아."

"아-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아-하하하하하하."


 다음엔 욕심을 줄여서, 타로 스콘 따로 녹차 스콘 따로 반죽을 해서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초콜렛과 마시멜로우도 가득. 위에 소보로도 살짝. 이런 게 다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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