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공존 Oct 16. 2020

우후 뜨 블린!

실수 그리고 발견

실수로 반죽에 물을 부었더니...팬케익의 반전 변신

이라는 제목을 나는, 커피를 갈며 생각해보았다. 조회수가 두배로 뛰겠지. 다음 메인에도 올라갈 거고, 잘 하면 조회수 순위권에도 올라갈지 몰라. 이번달은 방문자 실적이 부진하거든.


 이런 생각은 일말의 현실성을 품고 있는 것이, 지금은 마침 브런치의 가장 큰 연중행사인 출판공모전이 있는 시기고, 여러 작가들이 좋은 글, 좋은 기획을 뽑아내기에 여념이 없는 시기다. 작가인 나로서나 플랫폼인 브런치로서나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이목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왕이면 글 하나 제목 하나 썸네일 하나, 메인에 선명하게 노출될 수 있도록 고민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나의 몫이란 말씀. 안그래도 나는 썸네일로 노출되는 사진을 고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레이아웃을 하고 제 멋대로 쓰는, 감사히도 번번이 내 글을 끌어올려주시는 에디터들에게는 영 마뜩찮은 글쟁이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과 편집도 나의 창작의 즐거움에 속하는 일이라 나는 지금의 서순과 제목이 가장 즐겁고 오롯하다. 첫번째 배치된 사진이 손질 중이거나 손질되기 전의 재료라서 도저히 썸네일로 노출되기에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그대로, 요리 중간 단계 어디쯤에 붙인다. 썸네일로 이목을 끌지 못하는 대신에 내가 고심해서 만들어낸 능청스러운 제목이 주인이 된다. 사진 역시 그것을 찍고 택하는, 나의 창작의 과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오늘처럼 또 다시 우후 뜨 블린! 아는 사람만 아는 제목을 슬쩍 가져다 붙인다.


 '블린'이라는 음식은 러시아식 크레페로서 굉장히 흔하게 쉽게 즐기는 가정식이다. 블라디보스톡에 바깥양반과 놀러갔다가 먹어봤는데, 편하게 브런치로 즐길만 했다. 만들기도 쉬워보이고. '우후 뜨 블린'은 "오! 블린!" 정도으 의미랄까, 크레페에 고기, 야채, 과자류 등 다양한 속재료와 토핑을 담아 올린 그 아기자기한 만듦새만큼이나 귀여운 가게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내가 블린을 하게 되었느냐하면,


"와플 다 먹었어?"

"응. 내일은 팬케익 해줘."

"응 잘했어. 근데 꽤 많지 않았나?"

"다 먹었징."


 바깥양반의 리퀘스트겠지 당연히. 월요일엔 와플을 했다. 효리누나와 윤아의 PPL에 낚여서 샀지만 그래도 살뜰히 잘 쓰고 있다. 설탕을 넉넉히 넣어 크리스피하게 만들었는데 바깥양반이 마음에 들었는지 양이 꽤 많은데 다 먹었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견과류를 빻아서 넣는데, 화요일에 만든 팬케익의 경우에도 그랬다. 버터 녹이고...우유 조금, 계란 한 알, 팬케익 믹스를 거품기로 막 휘저어서 반죽을 만들고 마지막에 견과류를 빻은 다음에 우수수 부었는데...어, 견과류 빻고 남은 가루들이 절구에 남아있다. 아깝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빈 상태로 물을 반컵 정도 부어 포크로 견과류 가루들을 득득 긁어서 반죽에 확 부었다.

 망했다. 계란 하나가 들어간 반죽에 물이 반컵이나 들어갔다. 물을 부어내려니 견과류가 둥둥 떠다녀 그것도 아깝고, 잘못했다간 반죽을 다 버릴 판이다. 이런 멍청이, 하며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반죽을 휘휘 저어 그대로 팬에 올렸다. 구우면서 말리면 되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쉬울리가 있나. 일단 반죽이 퍼져버렸다. 원래 자작하게 반죽이 되어서 팬에 올라가며 이내 익어 퍼지지 않고 위로 부풀어오르는데, 물이 들어가 죽처럼 된 케익 반죽이 그만 부침개처럼 팬 위에서 자유를 찾아 사방팔방 펼쳐졌다.  


 이래서는 계란지단 같은걸. 일단 아침밥을 차리면서 잠깐 지켜보다가 뒤집개를 꺼내서 뒤집어보려고 하는데, 어 잘 되지 않는다. 끝부분이 찢어져버렸다.


"오빠 밥 다 됐어?"

"응, 으응. 얼른 나와."

"아 늦었다 빨리 먹자."


 이 타이밍에 또 출근 시간은 다가온다.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돌돌 말아버렸다. 속으로는 내심, 국내 최초 팬롤케익이야! 하면서. 바깥양반 도시락 통에 담아주기 위해 자르면서 끝에를 조금 잘라먹어봤는데 으윽, 팬케익믹스가 생각보다 싱겁다. 원래는 앞뒤로 버터에 구워진 풍미로 먹는 건데 물이 들어가 눅진해진 반죽 상태로 돌돌 말아놨으니, 아무리 앞으로 뒤로 몇번 더 굴리면서 익혔더래도, 그게 썩 맛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다행히도 바깥양반은, 그날도 그 실패요리를 맛있게 먹긴 한 모양.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서 이틀 동안 심기일전을 해 계획을 다시 짜봤다. 이거 블린이네. 혼자 속으로 깨우쳤다. 퇴근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한 게 블린이 맞긴 하구나. 밀가루나 메밀가루에 물을 넉넉히 부어서 크페이프처럼 만드는 요리. 그럼 차라리 제대로 해볼 수도 있을 게다. 더 맛있게, 나도 더 재밌게.


 그래서 아침, 인덕션으론 김치찌개를 끓이며 다시 후라이팬을 잡았다. 물, 넉넉히. 계란 한 알. 버터는 녹이지 않았다. 우유도 넣지 않았다. 여기에 팬케익 믹스. 끝. 블린은 속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다. 그러니까 반죽은 단촐한 게 오히려 좋다. 자아...버터를 넉넉히 녹이고 반죽을 훅. 아 잘 된다. 전병처럼, 크레이프처럼 넓게펴지며 바삭하게 구워진다. 뒤집개로 휙 뒤집어서 남은 면을 익혀서 완성. 그리고 남은 반죽을 부었다. 금방 익고, 두장이면 딱 한명 점심꺼리다.

 속재료로 쓰기에 딱 좋은 게 마침 냉장고에서 발견되었다. 바깥양반이 사왔거나 아니면 바깥양반이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았을거인데 이거시 뭔고 하니 랍...스터 페이스트? 토스트에 한번 발라먹어봤는데 좀 짜고 랍스터내음이 난다. 넉넉히 톡톡 한쪽면에 모아서 뿌려준 뒤에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어 완성. 금새 두장이 만들어졌다.


 이왕이면 집에서 브런치로 먹었다면, 아 마침 내일이 주말이구나, 그럼 더 호화스럽게 속재료를 꾸밀 수 있는 요리일 터지만 바깥양반 도시락이니 오늘은 이정도면 되었다. 랍스터 페이스트로 단촐하게 만든 두장의 블린을 차곡차곡 통에 담았다. 그리고 나는 마침 싱크대 위에, 치우지 않고 두었던 비닐봉지를 발견해 펴서 그 안에 통을 넣었다.


"자, 오늘 도시락."

"응? 왜 비닐봉지야?"

"어제 네가 도시락가방 안가져왔잖아."

"아니...그래도...이 비닐...어제 그...양...평...해장국?"


 어제 양평해장국을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었다. 그렇다 나는, 큼지막하게 양평해장국 다섯글자가 매섭게 박힌 그 비닐봉지에, 바깥양반의 도시락통을 담아준 것이다. (마지막에 호러블한 BGM)

매거진의 이전글 굴 굴러가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