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Dec 16. 2022

나는 별일 없이 싼다

하루하루 재미있다

 식당에 가면 이따금 감태를 내는 곳들이 있다. 사람들은 보기 드문 반찬거리이므로 또 얼른들 먹는다. 글쎄, 감태가 귀한지는 모르겠다. 태안반도 서민음식의 대명사 같은 겟국지가 서울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별미요 진미처럼 여겨지고, 말짱한 꽃게탕을 내놓고는 겟국지라고 우기는 판에 감태같이 어디서든 사다 먹을 수 있고 맛도 괜찮은 음식이 귀한 먹거리라니.


 그런고로 우리집 냉장고의 냉동칸에 감태가 몇해 동안이나 보관되고 있다. 엄마가 조미되지 않은 감태를 한 봉다리 주셨는데 그게 왠만큼 잘 소진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날김도 대강 구워서 꺼내놓으면 며칠이 걸려도 먹긴 먹는다. 감태도 꺼내만 놓으면 며칠 안에는 소진된다. 그런데 우리집은 밑반찬이 팔리긴 커녕 매일같이 걸지게 밥을 만들어먹으니, 식비는 식비대로 지출되고 냉동실이 쉬이 비워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감태를 영 안쓰는 것은 아니다. 감태가 워낙 향이 강한 놈이다 보니 식당에서도 감태를 꾸미 겸 향을 내기 위해 쓰는데 나도 종종, 파스타나 감바스, 리조또 등에 섞는 편. 바깥양반의 식성이 워낙에 하나 두고 진득히 오래 먹는 걸 못한다. 귀하게 자라신 양반이신지라. 반면 나는 손이 큰 엄마가 만들어둔 국이며 찌개며, 아 그것을 일주일 내내 먹던 나의 10대여. 한번은 꽃게탕을 나 홀로 일주일간이나 먹던 날도 있었지.


 하여튼 감태는 그렇게 쏠쏠하거나 똑부러지는 재료는 아니다만, 또 나름의 즐거움은 있달까. 겨울날 나는 또 다시 아침에 일어나, 전날밤 만들어놓은 고기 튀김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이 고기로 말하면..엄마가 포 떠진 돼지고기를 가서 해먹으라고 건냈다. 포 떠진 고기, 등심일까 안심일까. 이걸 어디 쓰냐 생각하다가 카레 가루에 양파즙을 대충해서 하루 재워놨었다. 이틑날 꺼내서, 저녁에 대강 튀겨서 밥을 차렸다. 그런데 한번 해놓으니 저녁 한끼로는 양이 많아서 다시 먹기로 하고 냉장고로.


 고기 튀김을 다시 또 먹기엔 물리기 마련이라 나는 이걸 처리할 방도로 김밥을 싸기로 했다. 집에, 뭐 따로 준비된 건 없다. 그냥 먹는 것보다야 나은 방도라, 고기를 오븐으로 데우며 감태를 꺼내고, 밥에 대강 참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한다. 

 

 평범한, 아무것도 아닌, 전날 남긴 음식으로, 대강 해치우려는 아침밥. 그러나 감태 정도만 추가하면 나름 괜찮은 메뉴가 된다. 뭐어 나야 아침에 출근을 하는 것이지만 바깥양반은 또 하루 종일 아이를 혼자 보기 위해 자다가 일어나서 거의 눈을 감은 채로 드시는 아침식사니까. 한장은 너무 얇다 두장. 그리고 가지런히 고기튀김을 올린다. 딱딱 모양에 맞게 포가 떠져있던 고기라 오히려 좋아.


 정말 아무것도 없이 대강하는 아침밥이다. 그런데도, 바깥양반은 눈을 부비고 일어나 오물오물 한 입 먹더니, 맛있다고 쏙쏙 다음 김밥을 먹는다.


"뭐야 김밥이 맛이 특이한데."

"아냐 재료 없어서 그냥 밥이랑 어제 그거 튀김으로 했어."

"아냐 뭔가 다른데. 아 감태인가?"

"응 김 꺼내기 귀찮아서."

"응 맛있네."


 그런 아침. 적당히 적당히 한 끼 대강 떼우는 것 같지만, 감태 하나에, 고기튀김 하나에, 또 먹는 사람 기분좋고 하는 사람 재미가 나는, 그런 아침. 나는 그래서 별일 없이 감태로 김밥을 쌌다. 다음엔 아침에 또 무엇을 하나. 하루 하루 재미는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