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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20. 2022

묵은지철판볶음밥을 해달라고라

별건 아닌데 굳이 해 달라고 하는 건 또 뭐야

 주말에 대전에 다녀왔다. 부부모임이었는데, 우리만 아이가 있어 배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배려를 말해도, 밥을 먹을 때까지 배려를 얻을 순 없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고기집을 갔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착착 자기 기저귀도 버릴 수 있게 된 우리 똥강아지의, 온 가게 쓰레기통 탐색을 말리며, 우리는 글쎄, 고기가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잘 분간을 할 수는 없었다.


- 오늘은 어제 그 볶음밥 먹고 싶네용

- 뭐 어제 묵은지 볶음밥? 왜?

- 그냥요

- 어제 제대로 못먹어서요

- ...사진 보내봐 어제 꺼.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달래!

 퇴근길에 콩나물을 사와서 대쳐, 콩나물 무침을 만든다. 유기농 콩나물이 두 봉지에 2100원으로 값이 헐하게 샀다만은, 좀 두꺼운 게 아니라서 아쉽군. 콩나물국은 얇은 게 맛이 좋고 콩나물 무침은 살짝은 두꺼워야 맛이 좋지 않냐 싶긴 한데, 이런 식재료 선택을 가정집에서 일일이 하기엔 무리가 있다. 두 봉지 모두 넉넉히 대쳐, 마늘 넉넉히 빻아넣고 소금과 고춧가루, 들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석석 무친다.


 생들기름을 쓰기에 괜찮은 찬스다. 콩나물은 자기 향이 강한 식재료는 아니기 때문에 생들기름처럼 얌전한 맛을 지닌 녀석으로 버무려도 괜찮겠다. 내가 비염이 있어서 사실 냄새를 잘 못맡는 편인데, 이런 경우는 아쉽다. 생 들기름을 사놓고 왜 맛을 제대로 못보니. 좀 여유 있을 때 이 맛을 음미하면서 비싼 돈을 주고 산 값을 만끽해봤으면 싶다. 그래야 다음에 또 살지 말지도 정할 수 있을 것이고. 다행히도 콩나물 무침은 무척 맛이 좋다.

콩나물 무침에 넣을 마늘을 빻겠다고 달려든 눈썹괴물

 어제 간 식당의 특징은 볶음밥 위에 파절이와 콩나물 무침을 넣는다는 것인데, 거기야 반찬으로 대량으로 이들을 만들어두는 곳이고, 이거 하나를 위해 파절이를 새로 해야 하는 내 손은 번잡스럽기가 그지 없다. 콩나물 무침도 제법 번거로운데 파절이까지. 그럼 설거지 거리도 두배 세배로 늘어나고, 그런만큼 주방 노동도 길어진다는 말이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해달라는데 해야지.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도 밑반찬을 하는 성향이 아니고, 바깥양반은 더욱 안그렇다. 그래서 보통 우리집의 밥상은 메인메뉴와 김치 한두가지로 끝. 식비로나 주방노동으로나 비효율적인 상차림들이다. 하루 두끼 세끼를 같은 반찬으로 먹는 것이 2020년대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또 이런 낙일도 없으면 어찌 살겠나 하는 말엔, 대꾸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나마 올해 2학기부턴 내가 그 남은 반찬들을 도시락으로 싸가서 잘 소진하고 있다. 일전엔 얼린 밥이 맛이 없어져서 그것만 또 처분하기 위해 일부러 컵라면을 몇개나 먹었는지.  

 아마도 볶음밥이 어려워지는 일이란 좀처럼 없지 싶다. 김치 하나만 있으면, 그리고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햄만 있다면. 지난번에 김장을 하고 받아온 묵은지를 쫑쫑썰어 햄과 볶은 다음, 굴김치국물을 따라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김치볶음밥은 확실히 묵은지가 더 맛있긴 하지만 국물은 새 김치국물이 어울린다. 그래서 둘을 합쳐서 만드니, 음 괜찮아. 만족이다. 


 밥을 충분히 볶은 다음에 가운데에 착착 모아서 쌓아올리고, 계란을 살짝만 풀어서 주위에 두른다. 이게 일면 그 철판 컨셉의 완성이 된다고 할까. 


 사실 이런 음식을 보면 꼭 탐닉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깥양반 다운 식탐이라고 생각을 하는 나지만, 그것도 맞춰줄 수 있다면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 사이에 아이를 돌보느라 바깥양반은 나름 고생을 하고 있고, 나는 나대로 이제 상차림을 마무리한다. 대전에서 포장해 온 국밥을 데우고, 나물을...쌓아야지. 먼저 콩나물, 그 위에 파절이, 그 위에...


- 김이 없어.

- 아 김. 잠깐 잠깐. 애 좀 잡아.

- 응. 동백아아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밥은 나의 것은 아니었다. 양이 많다고 할 수는 없었던지, 아니면 야채 투성이라서, 생각보다 많이 배에 들어갔던지, 당연히도 아이를 또 챙기느라 바쁜 내 곁에서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착착, 식사를 열심히 하셨고, 나는, 아이로부터 조금 해방이 되고 나니 남은 밥이 별로 없네?


 하긴 뭐 늘 그렇긴 하지만 오늘 이 밥은 당신을 위한 거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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