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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09. 2022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여수의 나진국밥을 아시나요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고기 삶기.


 나는, 콩나물을 그냥 삶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두루치기를 하기로 결심을 하던 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루치기를 하게 된 이유의 절반이, 이 사건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굴김치를 만들고 나는 학교에 가져가 도시락을 함께 먹는 선생님들과 나누어 먹었다. 급식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따로 먹는 그룹이 몇명 있고 나는 친한 사람 둘과 먹는다. 그런데,


"이거 네가 했어?"

"어. 보쌈도 만들어먹었지."

"왜 혼자만 먹어요 우리도 만들어줘요."

"뭐래 이 미친인간들이."


 한 사람은 동갑, 한 사람은 두 살 아래의 선생들이다. 10년 가까이 보다보니 뭐 두루두루 친한 사람들인데, 내가 요리를 해서 먹는 걸 알고 이런 식으로, 자기들에게도 보쌈을 만들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굴김치는 매일같이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 기색이 없었고, 이렇게 학교에 가져와서 나눠먹는 것을 보람으로 하고 있었는데 보쌈 고기까지 내놓으라니. 이런 방자한 놈들을 보았나. 

 

 그러나 나는 츤데레이므로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또, 내가 남의 수육 따위나 해주고 끝낼 성 싶은가, 하며, 나는, 얼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요리를 이 김에 하기로 했다. 


 그것은 맑고 칼칼한 콩나물 국물의 돼지국밥. 여수의 나진국밥 스타일을 해보는 것. 


 https://youtu.be/9M30E6sf90g


 나진국밥은 술 좋아하기로 유명한 성시경씨의 인생 맛집이라고 하는데, 처음 먹어보면 약간 뜬금없다 싶은 맛이다. 돼지고기 육수의 맛은 약하고, 얼큰 칼칼한 콩나물국의 향이 강하다. 그냥 콩나물국에 돼지고기를 담궜다고 해도 좋은 맛이라, 술을 좋아하고 콩나물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해장을 겸해 반길만한 맛이고, 제주도나 경상도의 돼지고기 육수를 생각하고 먹어보면 실망하는 맛. 다만 언제 가서 먹어보더라도 양도 많고 재료들의 신선도가 좋아서 만족은 할만한 맛이다. 


 아 이런 맛도 존재하는구나 하고 미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곳이랄까.


 나도 한번 다녀와봤다가 이따금 생각이 나서 바깥양반에게 얘기를 하곤 했는데, 마침 날씨도 쌀쌀해지니 이런 겨울날 집에서 만들어먹기 딱 좋은 요리다. 


 그러니까 나의 계획은 이랬다. 보쌈을 하자. 보쌈을 하는 김에 육수도 나오고 수육도 나올 테니 그걸로 나진국밥 스타일을 해본다. 콩나물이 필요하네? 두루치기 고! - 라고 하는 의식의 흐름.


 그래서, 콩나물을 일부러 푸욱 익혀가며 육수를 만들고, 거기에 앞다리 살을 두시간 가량 삶았다. 다 삶아진 앞다리 살은 다른 냄비에 옮겨 양념을 해서 약간 졸인 뒤, 아침에 도시락을 싸면서 일부는 콩나물 육수에 다시 넣었다. 그래서 다음날인 오늘, 나는 다시 냄비를 열었다.

 이런 비주얼. 한 술 먹어보니 아 너무 진하다. 원래 바라던 것은 나진국밥 스타일의 시원하고 맑은 국물인데, 앞다리살 한근을 삶고 나온 국물이라 기름을 떠냈어도 여전히 진한 돼지육수 맛이 나온다. 물을 넉넉히 붓고 고춧가루를 풀었다. 고춧가루에서 색과 향이 녹아나올만큼 한소끔 끓이면, 간단하고 간단하게도 오늘의 아침 메뉴는 완성.

 이미 만들어둔 콩나물무침을 국물까지 해서 국 위에 풀었다. 두꺼운 콩나물이 아닌데다가 푹 익히기까지 한 놈들이라 아삭거리는 식감은 없다. 그런데 식감을 살리는 것보다 내 입장에선, 콩나물이 자주 손대는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린내가 안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럭저럭 콩나물무침도 맛이 괜찮았고, 그래서 두개 국그릇에 토핑.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파를 토핑.


 여기까지 내가 쓴 조미료는 다음과 같다 : 챔기름, 소금, 고춧가루, 매널. 끝. 다른 어떤 조미료도 쓰지 않고 만들어진 국물에 대파, 콩나물, 돼지 앞다리살 뿐. 이렇게만 해도, 음식은 완성된다. 그것도 맛있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들깨가루를 사지 못했다는 것인데, 들깨가루가 국물을 텁텁하게 만드는 것도 있어서 못 넣은 게 아쉽진 않다. 부추무침을 넣을 걸 그랬나 싶긴 해. 다음에 해보면 되겠지 요즘 부추도 싼데.

 

 이쯤이면 됐다. 콩나물이 들어간 시원한 국물에 진하디 진한 돼지고기 육수, 거기에 고춧가루라니 이 겨울에, 이보다 따스하게 힘 나는 아침이 어디 있으랴. 다음엔, 고기는 목살로 콩나물은 굵은 놈으로, 그리고 부추에 들깨가루만 추가하면 완전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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