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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08. 2022

식당에서 사먹는 것처럼, 집에서 두루치기

 이것은 백종원 대표 탓이다.


 왜 하필 제주도를 가셔서, 왜 하필 두루치기를 드셔서, 우리 바깥양반에게 "아 두루치기 먹고 싶다"같은 말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왜.

 왜.

 왜!!!

 퇴근길에 앞다리살과 콩나물을 샀다. 오랜만에 사고 보니 정말 싸구나 콩나물은. 왜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는 집반찬인 줄을 알겠다. 두루치기엔 우선 콩나물이 들어가야 하지. 좀 더 굵은 콩나물이 좋을 것 같긴 한데, 급한대로 산 것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뭐 이정도만이라도 괜찮긴 할듯. 콩나물무침에 진심인 편은 아니고, 사실 콩나물 육수를 따로 쓸 데가 있어서 일부러 푸욱 익혔다. 두꺼운 콩나물이었다면 식감까지 잘 살아있었겠지만 두루치기에 올릴 콩나물 무친은 일단 여기까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만들어보니 괜찮아.

 다음으로 파. 파채야 뭐 어떻게 썰어도 파채인 게라. 파채 써는 칼은 굳이 설거지시킬 것 없이 그냥 얇게 후두둑 채를 쳤다. 여기에 조물조물 챔기름, 고춧가루, 식초 소금 설탕 약간씩. 식초 소금 설탕은 그대로 무채를 만드는데에도 들어간다. 무를 얇게 채 썰어서 조물조물. 


 요기까지. 딱 셋만 하기로 했다. 두루치기에 올라갈 고기집 반찬 서타일론 요정도면 딱. 그나저나 벌써 위생장갑을 몇번이나 갈아끼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앞다리살은 간장과 설탕, 쌈장 세가지로만 간단히 간을 했다. 뭐 설탕 먼저 간장 나중 이런 말도 있지만 여러번 하다보면 큰 차이는 없다. 새마을 식당 가도 생고기에 그냥 양념을 부어서 막 굽는 식이었던 것 같다. 


 오늘 저녁을 하면서 느낀 것이, 이제 결혼 5년차가 되어가는데, 내 요리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엔 두루치기를 맛있게 하질 못했다. 정말이지 그때 맛대가리 없이 만들어서 다 먹지도 않고 버린 두루치기가 여러번인데, 차츰 조리법에 대해 이해가 트이면서 오늘의 특집 메뉴, 두루치기전문점 스타일 두루치기, 완성. 

 바깥양반은 여전히 집에 콕 박혀 아이만 보는 일상에 매우 큰 갈증을 느낀다. 월화수목금금금 일+외출에 여가활동을 풀로 즐기던 삶에서,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만 박혀있다가 문화센터 메이트들과 하루에 몇시간 정도 외출하고 오는 것이 고작이니, 얼마나 심심하고 재미가 없을까말이지. 그래서 내가 매일같이 메뉴를 바꿔가며 밥을 해줘도, 집밥은 집밥, 외식은 외식이라는 감각인듯하다. 이렇게 차려줘도, 이게 외식인 건 아니니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 그게 본질적인 바깥양반과 나의 차이다. 밖에 나가야 숨이 트이는 사람이 있고 굳이 안그래도 되는 사람이 아웅다웅 살아간다. 


 내년이면 바깥양반은 복직을 하고, 아이도 어린이집을 가니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아이를 우리와 하루 종일 떼어놓는다는 것이 상상은 잘 가지 않지만, 그때가 되어서야, 바깥양반이 매일 매일 바깥에서의삶을 살게 될 때에야, 나의 이 집밥의 수고로움은 좀 덜어지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좀 더 간소히, 가볍게 먹어야겠다. 그때가 되면 아마 아이와 같이 먹는 밥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오늘은 집에 가서 아기가 먹을 카레를 만들...고민을 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프로주부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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