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오로지 철저하게 준비된 자가 승리한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물 장르의 시초이면서 완결이라는 아이러니한 평을 받는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인 사적 제재를 정통 장르문학으로 옮긴 최초의 시도이면서 그 작품성이 워낙뛰어나다보니 후대에 그것을 넘어서는 작품이 나오질 않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민음사가 출간한 완역본 기준으로 5권, 총 200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이 방대한 대하드라마 속에서 에드몽 당테스 -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15년의 수감과 부친의 억울한 사망, 그리고 약혼자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원한을 네명의 적수에게 차례차례 되갚아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보여지는 복수는 그러나 광적으로 철저하고 긴 준비 끝에 이루어진다. 에드몽(작품에선 작가에 의해 내내 "백작"으로 지칭되지만 본문에선 이하 에드몽으로 쓴다.)은 자신의 정체는 철저히 감추는 한편 원수들의 약점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을 파둔다. 작가인 뒤마가 모티브로 삼은 이 복수극의 실제 사건이 결국 정체를 들킨 주인공의 피살로 끝나서 더욱 그런 것인지, 에드몽은 원수들이 조금도 눈치챌 수 없게, 그리고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우쳤을 때는 도무지 달아날 방법이 없도록 완벽한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한다. 비록 현실 문명국가의 법치사회에서 복수를 통한 사적제재는 금지되어 있지만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노라면 그 완벽하고 철저한 대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 복수는, 에드몽처럼.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제 추미애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징계요청과 더불어 직위해제 처분을 당했다. 바로 한달 전 국정감사 대정부질의에 기관장으로 출석하여 "정규 공무원인 검찰과 검찰총장은 정치인이 한시적으로 임명되어 직무를 수행하는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던 것과 사뭇 대조적인 결말이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늘 공무원"인 행정관료들의 반발은 우리 역대 민주정부마다 겪는 질곡이다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기나긴 사냥과 하극상을 내내 벌이던 그가 국회에서 삼권분립에 의한 권력견제를 부정하는 발언은 그 자체로 그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조국 사냥을 통하여 문재인 정권과의 정면 승부에 들어간 이상 정치권력으로서 윤석열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강구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드몽의 원수들이 모두 자신의 성공에 완전히 흠뻑 빠져들어있었던 것처럼 세월을 허송한 것이다.
현실정치는, 특히나 대한민국의 민주정은 격렬한 투쟁의 장이다. 문재인 정권은 "반성문 정권"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역대 한국 정치사에 가장 많이 준비를 하고 집권한 행정부다. 이를 테면 2012년 대선 패배 후 홍영표 의원이 출간한 <비망록>은 민주당 관점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인회 교수가 공저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정부 관점의, 문재인 대통령의 <1219 끝이 시작이다>와 <대한민국이 묻는다>는 청와대 관점에서의 국정에 대한 반성과 철학, 미래비전을 담고 있다.
특히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몰락에 기여하고 끝내 그를 서거로 몰아넣은 검찰 권력에 대한 통렬한 대통령의 반성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의 내막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철저하게 검찰개혁을 위하여 준비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검찰의 조직이 어떤 생리를 갖는지, 검찰총장은 어떤 인물이어야 하고, 검찰총장이 될 수 있는 고위검사는 어떻게 길러지는지, 종합적으로, 그런 검찰조직과 검찰총장으로 인하여 검찰개혁은 한 없이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까지. 끝내 문재인 대통령만해도 조국 전 장관과 일가를 희생하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조국 자신 역시 그러했고.
그러므로 조국 전 장관의 사임과 공수처법 통과로 일단락된 검찰개혁의 1막, 추미애 장관의 임명부터 윤석열의 직무정지로 갈음되는 이번 2막까지,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검찰개혁의 드라마를 알기 위해선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얼마나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짚어가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복수극은 그 과정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고, 내막을 모른채 결말만 감상하는 것은 지극히 말초적인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얼마나 얼마나 철저하게 검찰개혁이 계획되고 추진되는지도 조금씩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복수는 에드몽처럼, 그리고 에드몽의 복수처럼 지금 검찰개혁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애석한 것은 역사상 가장 철저히 대비하고 검찰개혁에 나선 문재인 정부에 비하여 윤석열 본인은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어리석인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이다. 이번의 법무부의 징계사유만 보더라도, 현재까지 밝혀진 윤석열 개인의 직무상의 비위가 너무나 명백하고, 그것이 부하 검사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되면 마치 고구마 줄기 뽑혀나오듯 검찰조직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 뻔하다. 투쟁에서 패배를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삶이 있어야 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는 원수의 몰락 뒤에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으로 에드몽이 심각한 고뇌와 번민을 겪는다. 현실에서는, 그 번민은 사상 최악의 검찰총장 윤석열 덕분에, 후임 총장의 몫이 될 것이다. 윤석열 다음 검찰총장은 아무것도 못하고 철저히 정부의 통제에 따르며 검찰개혁에 협조할 수 밖에 없다.
설마 윤석열의 검찰총장으로서의 행보까지 예상을 했겠느냐 싶겠지만, 철저히, 정말로 철저히 준비하고 추진되고 있는 검찰개혁이다. 최악의 경우를 모두 대비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문재인 대통령도, 조국 전 장관도, 그리고 추미애 장관도 모두 잘 알고 있다. 실패하면 절대로 안되니까. 절대로 실패할 수 없게 모든 준비를 하고 나서 이루어지는 일이다.